며칠전 한국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인 '6.25 국군포로가족회'와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자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에 북한이 자의적으로 국군포로를 구금했다는 판단을 내려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습니다. 한국 국군포로의 생사를 확인하는 등 국군포로와 관련된 조사를 통해 진실을 폭로하려는 한국 단체 '납북자가족모임'과 '피랍탈북인권연대'는 몇년 전 한만택 씨라는 국군포로에 관해 조사했습니다. 한만택 씨는 한국 전쟁 때부터 북한에 계속 구금되어 있으며 함경북도에 위치한 무산광산에서 젊은 나이 때부터 고령까지 강제노동을 했습니다. 한만택 씨는 2004년에 탈북하려다 중국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강제북송을 당했습니다. 한국 대북인권보호단체들에 의하면 한만택 씨는 2009년 북한 정치범 관리소에 수감되었다 사망했습니다.
전쟁 중 군복을 입은 상태에서 포로로 잡힌 군인들은 국제인도법, 즉1949년 체결된 제네바 협정에 따라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1949년 제네바 협정에 따르면 포로를 억류한 국가나 단체는 그를 인도적으로 대우할 의무가 있으며 당연히 고문을 해서는 안되고 포로를 선전 목적으로 이용해서도 안됩니다.
이번 한국 인권단체가 유엔 측에 요구한 것은 북한 당국이 한국전쟁 때 제네바 협정을 위반해 자의적으로 한만택 씨를 구금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북한 당국이 한만택 씨를 포함한 국군포로를 송환하지 않고 계속 구금한 것은 제네바 협정을 포함한 국제인도법과 1953년7월 27일 한국전 정전협정 위반입니다.
2014년 2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에 의하면 한국전쟁 후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고 아직까지 북한에 억류돼 있는 한국 국군포로들이 약 500명 정도입니다. 한국 정부에 의한 국군포로 조사의 역사는 이렇습니다. 11년 전 한국 국방부 국군포로대책위원회와 통일부는 윁남(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1966년 9월 9일 사이공(현 호찌민)에서 실종됐던 당시 23세이던 안학수 하사를 납북자로 인정했습니다. 따라서 '윁남전 국군 포로 1호'인 안학수 하사는 남북한 전쟁 이후 첫 국군 포로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안 하사는 윁남전 때 포로로 잡혀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을 거쳐 강제 납북되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관영 매체를 통해 사실과 달리 안 하사를 월북자로 소개하고, 윁남에서 붙잡힌 그를 공산주의 선전을 위해 이용했습니다. 1970년대 중반 한국에서 잡힌 남파 간첩의 진술에 따르면 1975년 안학수 하사가 북한을 탈출하려다 총살을 당했다고 합니다. 같은 진술에 따르면 안 하사는 온몸에 상처가 있었고 그런 상처는 안 하사가 당한 고문의 결과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윁남에서 포로로 잡힌 안 하사와 같은 경우 북한 당국이 중국에서 그를 강제로 납치해, 고문하고 선전 목적으로 이용하며 결국 암살했다는 것은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의 명백한 위반이었습니다.
1953년7월27일 남북한 정전 협정후 1954년까지 진행된 포로 교환에서 국군포로 8343명이 한국으로 송환되었습니다. 그 당시 북한은 "나머지는 모두 북에 전향했고, 따라서 국군 포로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994년 조창호 소위가 탈북한 이후 총 80명의 국군 포로가 한국으로 탈북했습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전향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국군 포로 사안을 중요하게 거론하는 한국 대북 인권 단체인 '물망초'에 따르면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80명 중 27명이 아직까지 살아 있습니다. 국군포로들에 의하면 북한에서 그들의 인권은 수십년 동안 심하게 유린되었습니다. 그들이 평생동안 심한 차별을 당하면서 북한 아오지탄광, 무산탄광과 같은 곳에서 강제노동을 하면서 지옥과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탄광에서 폐병에 걸려 사망한 국군 포로들도 많았습니다.
2007년 미국 국방부는 '한국전쟁 포로들의 소련 이동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국군 포로들이 쏘련 (소련)으로 끌려간 장소와 당시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한국전쟁 때 붙잡힌 미군 포로들이 아직까지 로씨야 (러시아)에 생존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미국과 로씨야가 협력해 작성한 것이었습니다.
1992년 이 보고서 작성을 도운 전 북한 내무성 간부 겸 군총정치국장이던 탈북자에 따르면 수천 명의 국군포로들이 쏘련의 침엽수림 지역에 있는 수백여 개 수용소로 이송되었습니다. 냉전 시대 때 붉은 공산제국이던 쏘련이 제2차 대전 때 독일, 이딸리아 (이탈리아), 마쟈르 (헝가리), 로므니아 (루마니아) 전쟁포로들, 한국 정쟁 때 국군포로들, 윁남전 미국 포로들을 대상으로, 이들이 사망할 때까지 몇 십년 동안 침엽수림 지역 한가운데 있는 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을 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혀 새로운 소식이 아닙니다. 국제인도법에 따르면 전쟁이 끝난 후 적군 포로들을 송환해야 하지만, 쏘련은 항상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남북한 민족의 화해, 대화와 경제협력이 이뤄지려면 북한이 과거와의 화해를 우선해야 합니다. 북한은 국제인도법과 정전협정을 위반하면서 5만명 국군포로들을 송환하지 않았고 이들은 북한에서 '적대계층'으로 분류돼 평생을 강제노동자로 보내야 했습니다. 고령까지 북한에서 노예로 살던 국군포로들의 인생은 전례없는 비극입니다. 북한이21세기 문명 사회에 합류해 국제사회와 한국으로부터 인도적 지원과 개발 지원을 받으려면 현재 살아 있는 국군포로들을 한국으로 송환해야 합니다. 그들이 한국에 있는 가족과 상봉해야 남북한 화해의 희망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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