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린(?) 북한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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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1973년 8월 스웨리예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 위치한 크레디트반켄 은행에서 인질 사건이 있었습니다. ‘스톡홀름 신드롬,’ 즉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개념은 그 사건으로부터 유래했습니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인질이 납치범에게 동조하며 납치범을 옹호하는 현상입니다. 즉 가해자에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보호하려는 심리 현상입니다. 가정폭력이 벌어졌을 때 피해자가 가해자인 배우자를 옹호하는 경우도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50년 전 얀에릭 올손(Jan-Erik Olsson)이라는 은행 강도는 공범자들과 함께 스웨리예에서 가장 큰 은행인 크레디트반켄 은행에 침입하여 3명의 여자와 1명의 남자를 6일 동안 은행의 대금고에 인질로 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스웨리예 법무부 장관과의 협상에서 여러 가지 요구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올손은 4명의 인질들에게 작은 공간에 페쇄 공포감을 주면서도 친절과 호의를 베풀어 인질들을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사로잡았습니다.

이러한 심리 전술 때문에 4명의 인질들은 경찰과 협상하고 있는 동안 오히려 납치범들을 경찰로부터 보호하려 했습니다. 스웨리예 경찰이 결국 은행 대금고에 인질로 잡혀 있는 4명을 구하기 위해 은행에 최루탄을 발사했습니다. 경찰은 인질들을 보고 먼저 나오라고 요구했지만, 인질들은 납치범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를 거부했습니다. 납치범들은 체포되어 나중에 재판을 받았지만, 인질들이 돈을 모금하여 재판받고 있는 납치범들을 지원하려 했습니다.

압박, 긴장, 폐쇄를 겪는 인질들은 납치범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러한 심리적 현상을 바로 ‘스톡홀름 증후군’이라 합니다. 1948년 이후, 지난 75년 동안 김씨 일가 정권에 의해 통제, 탄압, 처벌과 아사를 겪어 온 북한 주민들도 ‘스톡홀름 중후군’에 걸린것일까요?

2014년 2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 내 정치범관리소, 교화소, 구류장, 집결소, 감옥 등 단기 구금시설에서 자행되는 비인간적 범죄와 다른 인권침해가 비인간적 반인륜 범죄에 해당됩니다. 사실 김씨 일가와 고위 간부들을 제외하고 수감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북한 주민들이 김씨 일가의 인질로 볼 수 있습니다. 김씨 일가의 최후의 목표는 정권 유지입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김씨 일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인질로 잡혀 있는 북한 주민들을 탄압하고 착취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민들은 김씨 일가 정권을 숭배하며 최고 지도자를 찬양합니다. 김씨 일가의 목표는 김정은을 찬양하면서 권력세습과정을 정당화하고 김정은의 우상숭배를 꾀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실질적 지도자는 1948년 건국된 후 지난 75년 동안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조선로동당 최고비서, 단 세 명 뿐입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 ‘태양절’ 뿐만 아니라, 1976년 2월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을 정식 공휴일로 정했고 1995년 2 월 53회 생일을 맞아 ‘민족 최대의 명절’로 지정하면서 생일인 2월16일과 그 다음날인 17일을 휴일로 정했습니다. 모든 북한 인민들이 동원돼 의무적으로 축하 행사에 참여해야 합니다. 평양시 청년 학생들은 김일성 광장과 시내 곳곳에서 무도회를 열고 조선소년단은 평양체육관에서 전국연합단체대회를 가집니다. 또한 북한의 각 기관과 인민들은 이날 아침 김일성, 김정일 석고상이나 초상화 앞에 김일성화, 김정일화 등을 바치고 충성을 맹세하며 기관별로 예술 공연과 체육 경기를 합니다.

북한 정권에 의한 통제, 탄압과 처벌은 세계 현대 역사상에 전례 없는 일입니다. 또한 김씨 일가 신격화도 세계 현대 역사상에 전례 없습니다. 피해자인 북한 인민들이 가해자를 찬양하는 것은 ‘스톡홀름 증후군’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북한 인민들은 언제즘 ‘스톡홀름 증후군’을 극복하고 정신을 차릴 수 있을지 의문을 가져 봅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