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취약한 북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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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독재 체제 하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살 수밖에 없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은 취약계층, 즉 노인이나 어린이, 그리고 아픈 사람들입니다. 김정은 정권 아래에서 후기 공산주의, 후기 산업사회 왕조적 정치 행태를 보이고 있는 북한은 더 심합니다. 특히 북한의 경우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성분이 좋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지도부에 의한 극심한 탄압과 차별 때문에 취약 계층의 인권, 식량, 보건, 인간안보 상황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시골처럼 오지에 사는 아픈 아이들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식량과 영양이 부족한데다 적절한 의료 시설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태어나서 19살까지 김일성의 북한과 상황이 많이 비슷하던 동유럽 공산주의 나라 로므니아(루마니아)에서 살았습니다. 외부 세계가 로므니아의 수도인 부꾸레쉬띠 (부카레스트)나 북한의 평양과 같은 공산주의 독재 국가의 수도에 사는 주민들의 생활을 어느 정도 알 수는 있어도, 시골에서 사는 아이들의 고통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도 어린 시절 로므니아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면서 온 국민이 어렵게 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특히 시골에 사는 아픈 아이들에 대한 생각을 하진 못했습니다. 1989년 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로므니아 독재자와 그의 아내가 사형을 당하고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무너진 다음에야 비로서 시골 아이들의 참상을 직접 목격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당시 저는 부꾸레쉬띠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때 개방된 지 몇 개월된 로므니아에는 많은 외국 복지 단체들이 들어와 불쌍한 사람들을 돕곤 했습니다. 저는 영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통역으로 영국 적십자 의사들과 간호사들과 함께 로므니아의 시골을 돌아 다닌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 2주는 저에게 아주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공산 독재 시절 로므니아의 많은 시골 의료원에서 주사 바늘을 제대로 소독하지 않아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독재 체제가 무너진 다음 시골 의료원은 외국 원조 단체로부터 많은 약품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시골 의사들은 외국어로 된 설명서를 읽을 수 없어 약품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저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또 다른 충격적 경험은 시골에 있는 여러 소아 정신 의료원과 지능 장애아동 재활원 방문이었습니다.

그 곳 아이들의 상황이 너무나 나빴습니다. 적절한 음식, 옷이나 약품이 없는데다 공간도 너무나 좁았습니다. 한 침대에서 아이들이 두 명이나 세 명이 잠을 자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치료를 받아 어느 정도 재활이 가능한 지능 장애 아이들과 회복이 불가능한 아이들과 같은 병실에 있는 것도 허다했습니다. 1980년대 말까지 로므니아의 공산주의 독재 정부는 독재자를 숭배하는 데 많은 돈을 쓰면서도 회복이 가능한 지능 장애 아이들의 진료비를 지불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그런 시골 의료원에는 의사가 없는데다 간호사도 서너명 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재활센터 간호원들은 직무에 충실함으로써 최선을 다 하려고 했지만, 공산주의 독재 정부는 그들을 도와 주지 않았습니다. 공산 독재정권은 정신병이 있는 아이들과 지능 장애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도 않고 그들의 고통을 아무도 모르게 시골에 있는 의료원에 가두고 숨겼습니다.

공산주의 독재체제가 무너진 지 31년 후, 로므니아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개혁을 이끌어나가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아직까지 공산주의 독재 유산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로므니아가 13년 전 유럽연합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 독재 유산 때문에 시골의 후진 지역의 회복이 아직까지 쉽진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공산주의 독재 체제의 유산 탓입니다. 로므니아 독재자인 차우체스쿠 시대에 온 국민이 어렵게 살면서도 정부의 보도와 통계는 항상 긍정적이며, 로므니아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계속 향상되고 있다는 거짓 정보만 전달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 간부들은 독재자에게 높은 신생아 사망율을 그대로 보고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1990년 전에는 조산후 신생아의 몸무게가 1킬로그램 이하일 경우 병원에서 2주 기다리다가 출생 신고를 하곤 했습니다. 2주가 지난 후 신생아가 살 것 같으면 출생 신고를 하고 2주내에 신생아가 사망하면 출생신고를 안한 상태에서 사망 신고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공산당 간부들은 실제로 너무나 높은 신생아 사망률을 왜곡시키곤 했습니다.

요즘 언론에서 북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주된 뉴스입니다. 정작 관심을 받아야 할 북한의 아이들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옛날 차우체스쿠 시대 로므니아처럼 시골에 사는 아이들의 상황과 비슷하거나 혹시 평양이 아닌 오지에 있는 시골 병원에는 정신병이 있는 아이들과 지능 장애 아이들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누워있는 것은 아닐까요? 남북한의 화해, 평화, 통일을 앞두고 북한을 회복시키고 개발하기 위해 그러한 부분까지도 고려해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