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도자는 지난 9월8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하면서 대운하 건설 계획을 제안했습니다. 이 대운하는 북한 서해 항구 도시 남포와 동해 함흥을 연결할 예정입니다. 이러한 계획은 사실 새로운 소식이 아닙니다. 북한 당국은 1981년 남포갑문 공사를 시작해 5년동안 남포, 미림, 봉화, 성천, 순천 5개 갑문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러나 대운하 프로젝트는 비용이 많이 들고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이 계획을 결국 포기했습니다.
물론 구쏘련 (구소련) 시대 때부터 대운하 건설 역사를 보면 끔찍한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공산주의 독재 당국은 대운하의 경제적 실용성을 중요시 여기지 않고, 대운하 공사를 계기로 ‘민중의 적,’ 즉 독재 정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숙청, 체포하고 동원과 강제노동을 통해 몰살시켰습니다.
소련의 경우 ‘붉은 황제’ 스딸린(스탈린) 시대에 독재 정권을 반대하던 노동자, 농민, 지식인, 군인 등을 숙청하면서 ‘굴라크’로 알려진 노동교화소에 감금하고 강제노동과 굶주림, 고문을 통해 몰살시켰습니다. 강제노동을 이용하는 공사장이 크면 클수록 더욱더 많은 사람들을 몰살시킬 수 있기 때문에 스딸린도 대운하 건설 계획을 활용했습니다.
그래서 구쏘련은 북극해의 일부인 백해와 발트해를 잇는 대운하를 건설했습니다. 1931년부터 1933년까지 한 공사로 완공된 이 대운하의 길이는 227킬로미터입니다. 이 백해-발트해 운하 (White Sea-Baltic Canal)의 경제적인 실용성은 1930년대부터 현재까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대운하를 건설한 목표는 경제적 실용성을 따지기 보다는 스딸린을 반대하던 사람들을 강제노동을 통해 처벌, 처형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대운하 건설에는 강제수용소에 수용됐던 126,000명 정치범들이 동원돼 수천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냉전 시대 이후 구쏘련의 기밀 해제된 서류에 의하면 12,000여명에서 25,000명이 대운하를 건설하다 사망했습니다.
구쏘련이 대운하 건설을 통해 정치범들을 몰살시킨켰던 경험을 교훈 삼아 다른 공산주의 독재 국가들도 이 방법을 이용해 인민들을 처벌하고 착취하고 살인했습니다. 예를들면 로므니아(루마니아) 공산당 대표단은 1948년 구쏘련을 방문해 스딸린과의 정상회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로므니아 공산당 대표단은 스딸린에게 로므니아와 벌가리아를 잇는 다뉴브강을 건너는 다리 공사 허락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스딸린이 그러한 다뉴브 대교 프로젝트 규모가 너무 작아 대신 흑해와 구불구불한 다뉴브강을 직선으로 연결시키는 대운하를 건설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스딸린의 입장에선 그러한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벌이면 많은 반체제인사들을 강제노동에 동원하고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로므니아 공산당 당국에 의해 1949년 다뉴브강-다뉴브강운하(Canalul Dunăre-Marea Neagră)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당시 로므니아 인민공화국 국가 총주석이던 게오르게 게오르기우 데즈(Gheorghe Gheorgiu-Dej)가 대운하 건설장을 완전 정치범 교화소처럼 만들어 정치인, 지식인과 공산당을 반대하던 다른 계급의 사람들을 동원시켰고 강제노동을 통해 이들을 처벌하고 죽였습니다. 초기에 ‘체르나보더’(Cernavodă) 교화소에서 115명의 정치범들이 과로, 식량부족과 의료 시설과 약물, 치료 부족으로 사망했습니다. 1955년 공사를 중단할 때까지는 수백명이 더 희생되었습니다. 20년후 김일성 전 국가주석과 가까운 친분 관계를 맺었던 로므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1975년 95.6 킬로미터의 다뉴브강-흑해 대운하 공사를 벌여 1984년5월26일 준공식을 가졌습니다. 9년동안 대운하 공사 과정에서 수많은 정치범들, 죄수들과 군인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모두 다 공산주의 독재 강제노동과 탄압에 의한 희생자들이었습니다.
로므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구는 1971년 평양을 처음 방문해 북한식 독재자 신격화, 주체 사상, 1인 독재에 반했습니다. 그 이후 로므니아를 북한과 비슷한 공산주의 독재 국가로 변화시키려 했습니다.
차우셰스쿠는 김일성의 제자였지만 김일성도 차우셰스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김일성 대학 출신 로므니아 외교관이었던 로므니아 인사에 의하면 1970년대와 1980년대 사이 평양과 부꾸레쉬띠 (부카레스트)에서 차우셰스쿠-김일성 정상회담 때 김일성은 차우셰스쿠의 다뉴브강-흑해 대운하 공사장을 교훈삼아 반체제인사들을 몰살시킬수 있는 남포-함흥 대운하 건설 계획을 언급했습니다.
2022년 현재 북한 인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1930년대 스딸린 시대처럼 정치범들, 군인들, 또 인민들의 강제노동을 통해 건설할 대운하가 아닙니다. 올해 19번이나 미사일 발사를 해온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고 경제 개혁, 개방과 발전, 노동권을 포함한 인권 개선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제사회의 제재도 완화되고, 도로, 철도 시설과 북한 인민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을 겁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