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독재와 감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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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독재국가들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하고 통제하고 탄압합니다. 저는 냉전시대 때 북한과 독재 스타일이 가장 비슷하던 로므니아(루마니아)에서 태어나 19년동안 공산주의 독재 하에서 살았습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로므니아 공산당 총비서는 1971년 북한을 처음으로 방문했을때, 북한식 독재자 신격화와 북한 독재 스타일에 첫눈에 반한 나머지 로므니아를 북한과 비슷한 독재국가로 바꾸려 했습니다. 그래서 온 나라를 강한 탄압과 통제를 통해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로므니아 공산주의 독재체제하에 살면서 가장 답답했던 것은 가족외에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학교 친구나 이웃사람, 심지어는 길 건너편에 사는 할머니마저도 비밀 경찰의 밀고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부모는 제게 가족 외에는 누구도 믿지 말라 늘 당부했습니다. 외국 라디오 방송을 듣거나 가족끼리 정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공산 체제를 비판하게 되는데, 그 때에도 누군가 문앞에 있는지 확인부터 해야 했습니다. 당시 교회에 다닐 수는 있었지만 들키면 누군가 학교 선생님께 고발할 수도 있어 교회에 들어갈 때는 아무도 얼굴을 못 알아보게 모자를 쓰곤 했습니다. 그런 심리는 공산주의 독재체제 하에 살아 본 적이 있는 사람만 느낄 수 있습니다. 조국인 로므니아를 떠난 지 오래 됐어도 저는 지금도 전화 받을 때 무의식적으로 누군가 엿듣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로므니아에서 공산주의 질서와 독재자의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 기둥은 밀고자와 비밀 경찰이었습니다. 누구든 로므니아의 공산주의 체제나 "위대하신 지도자" 차우체스쿠의 원수로 고발되면 어두운 지하실에서 악명 높은 비밀 경찰로부터 구타 당하고 고문을 받았습니다. 아마 당시 고문에 못이겨 희생된 사람이 족히 수천명은 될 것입니다. 제 어릴적 경험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70 년대 후반 언어학자이신 저의 어머님은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 언어학 회의에 참가해달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어쩐일인지 어머님은 당국에 여권을 신청했지만 여권이 발급되지 않아 프랑스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 때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된 후 씁쓸했습니다. 어린나이였던 저는 어머님이 프랑스에 초청받아 간다니 너무 흥분해 동네 친구들에게 얘기했는데 그걸 누군가 비밀 경찰에 고자질했던 겁니다. 이 밀고자는 샘이 났는지, 아니면 지식인 혐오증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비밀경찰에 내 어머니가 프랑스로 망명할 것이란 얘기를 퍼뜨려 어머님의 프랑스행을 막았던 것입니다.

요즘 로므니아 정부의 관련 기관에 신청하면 과거 비밀 경찰의 행적과 기록을 열람할 수 있어 원하기만 하면 43 년전 제 어머님을 고발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사실 어머니와 상의해 관련 기록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한창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그 옛날 밀고자가 누군지 신경 쓰고 싶지도 않고, 그럴 시간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 가족 가운데 누군가 비밀 경찰의 고문에 희생된 사람이 있었다면 사정은 달랐을 겁니다.

2010년말 세상을 떠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약 18년 전 미국을 방문하면서 북한의 상황은 과거 로므니아 공산주의 독재체제보다 10배는 더 심할 것이라 했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출범할 때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구라파 스위스에서 중학교 때 유학한 적이 있는 김정은은 북한을 바꿔 놓으려는 의지가 있을 수 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 하에도 지난 10년 가까이 김일성과 김정일 정권 때처럼 지도부와 노동당이 강압과 통제, 탄압을 통해 주민들을 통치해 왔습니다. 공산주의 독재가 무너진1989년 로므니아의 인구는 2천3백만명이었습니다. 악명높았던 '세쿠리타네'라 불리던 비밀경찰 요원수는 만4천명이었습니다. 오늘날 북한의 인구는 약 2천5백만명입니다. 인구가 비슷하면서도 북한의 보안 요원수는 1989년 로므니아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북한 국가보위성 5만명, 사회안전부 21만명, 보위사령부는 1만명, 모두27만명이나 됩니다. 온 주민들이 일제시대 때 '애국반'과 유사한 인민반에 참여하면서 실제로 밀고자가 되고 있습니다. 북한 건국 73년 후, 조선노동당 창건 72년후, 3세대의 권력세습을 이룬 김씨 일가는 아직까지 '공포정치'와 '공포정책'을 통해 북한 주민들을 통치하고 있고, 2021년 북한은 인류 역사상 전례없는 감시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강압적, 폭력적 독재체재가 영원할 순 없다는 건 로므니아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