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올 10월 17일과 18일 로마 교황청을 공식 방문할 예정입니다. 한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평양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초청을 제안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교황 방북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이었습니다. 역사 기록을 보면 교황들이 공산주의 독재국가를 방문하면서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이 인권 유린국을 방문하면서 그 독재국가들의 열악한 인권을 거론하지 않으면 그러한 독재정권들을 정당화할 위험성이 높습니다. 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경우 지난 2014년 한국을 방문했는데, 그 당시 김씨 일가에 의한 북한의 반인륜 범죄와 같은 열악한 인권 유린을 전혀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도 북한인권을 거론하지 않았는데 평양에서 할 수 있을까요?
북한의 인권유린, 특히 종교 자유권의 침해는 심각합니다. 여러 종교자유 옹호 단체들과 인권보호 단체들에 의하면 북한은 전 세계에서 기독교 탄압이 가장 심한 국가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오픈 도어스,' 한국어로 '열린 문'과 같은 단체에 의하면 세계 제 1위 종교 탄압국인 북한은 다른 종교보다 특히 기독교 신자들을 심하게 탄압합니다.
'오픈 도어스'에 따르면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는 12만여 명중 기독교 신자는 4분의1이나 3분의1, 즉3만명에서 4만명 정도가 됩니다. 그렇게 많은 지하교회 신자들이 정치범 관리소에 수감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북, 중 국경지대에서부터 북한 내부까지 기독교와의 접촉은 늘고 있습니다.
1950년 북한 통계에 의하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1945년 북한의 916만명 주민들 중 약 22.2%나 종교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북한에 천도교 신자 150만명, 불교 신자 37만5천명, 개신교 신자 20만명, 천주교 신자 5만7천 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은 이른바 '공산주의의 아버지'인 레닌과 그 밖에 다른 공산주의 독재자들처럼 '종교는 아편'이라고 비난하며 북한의 종교인, 특히 개신교 신자들을 탄압했습니다. 김일성 정권 하에서 40만여 명의 종교 신자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정치범 관리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개신교 목사 900명과 30만여 명의 신자들은 강제로 자신의 종교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처형 당했습니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고문과 생명에 대한 압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종교를 포기하지 않은 천도교 신자 12만명, 불교 신자 3만5천명, 260명의 신부, 수녀와 수도사 등 천주교 신자 5만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29년 전, 1989년 동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국민들의 시위로 무너졌습니다. 동유럽 나라들을 반세기 가까이 탄압한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며 자유를 되찾는 과정에서뽈스까 출신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7년 가까이 천주교의 지도자 겸 정신적 지도자였던 84세의 교황 요한 바오로 2 세는 2005년 4월 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첫 해외여행의 목적지는 바로 모국 뽈스까였습니다. 1979년 교황이 뽈스까를 방문할 때 수백만 명이 교황을 보러 나왔습니다. 그 순간은 동유럽의 어둡고 희망이 없었던 당시 분위기와 많이 달랐습니다.
로므니아와 같은 공산주의 독재 국가에서 군중들은 강제로 독재자를 숭배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교황이 뽈스까를 방문할 때 볼스까 사람들은 그를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순수한 영웅으로 여겼습니다. 교황은 뽈스까 국민들에게 예수님과 믿음, 종교 이야기를 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종교는 뽈스까 사람들의 국민성을 구성하는 요소였기 때문에, 뽈스까 사람들은 교황의 설교를 들으며 국민성을 다시 되찾게 되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영향으로 조선소에서 일하던 레흐 바웬사 씨와 다른 뽈스까 노동자들은 자유노조를 설립해 80년대 후반까지 반공산주의 운동을 힘차게 추진해 뽈스까의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뽈스까에 이어 다른 동유럽 민족들도 무혈 혁명을 통해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1989년 말 공산주의 독재와 인권 유린이 가장 심하던 로므니아에서는 유혈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독재 체제를 와해시켰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00개국을 넘게 방문했습니다. 교황은 자신의 모국이자 공산주의 국가인 뽈스까 뿐만 아니라 피델 까스뜨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집권했던 꾸바까지 방문했습니다. 교황은 독재자들을 직접 만나며 그 나라 국민들에게 인권과 종교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계 인권을 선전하며 과거 천주교와 충돌한 종교들과 화해하려는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유태인 회당과 이슬람교 사원을 처음으로 방문한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였습니다. 그래서 세계여론은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화해의 교황'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2009년 2월 세상을 떠난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은 2005년 4월 서울에 있는 명동성당 앞에 모인 수천 명 앞에서 교황의 추모 미사를 지내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과 1989년 한국을 두 번 방문했을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교황이 김 추기경의 손을 잡고 "김 추기경과 나만이 알고 나누는 말"이라며 "나는 한국을, 특히 북한을 늘 마음에 두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3년 전 꾸바를 방문했습니다. 교황 방문이 꾸바에서 진행되고 있는 긍정적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하게 되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처럼 평화, 화해, 개혁, 개방, 인권상황 개선과 경제발전 추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지, 아니면 2014년 한국을 방문할 때처럼 북한 인권유린에 대해 침묵하는 유화 정책을 쓸 것인지 세계가 주목할 것입니다. 천주교 교황과 같은 세계 종교지도자가 북한을 방문하면서 사악한 종교 탄압, 정치범으로 수감되어 있는 기독교 신자, 기독교 목사를 포함한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한국 주민에 대해 침묵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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