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공산독재체제를 무너뜨린 헝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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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당시 공산주의 독재를 무너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북한에서 냉전시대 때 '웽그리아,' 냉전시대 이후 '마쟈르'로 알려진 나라입니다. 한국에서 '마쟈르'는 '헝가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헝가리 언어는 우랄알타이 어족과 어원으로 같은 언어 계통인 터키어와 핀란드어와 함께 한국어와는 동족 언어입니다. 조선중앙통신사가 발간한 '조선중앙년감'을 포함한 북한 발행물은 헝가리 공산주의 독재의 붕괴 이유와 관련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그 역사를 단순하게 이렇게 묘사합니다. '1949년 8월 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으며 1989년 10월 사회주의가 붕괴된후 나라이름을 마쟈르 공화국으로 고쳤다.'

올해 2021년은 헝가리 사람들이 일으킨 반공산주의 자유화 혁명 65주년을 기념하는 해입니다. 제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헝가리, 북한에서 '뽈스까'라 불리는 폴란드, '체스꼬슬로벤스꼬'라 불리는 체코슬로바키아, '로므니아'라 불리는 루마니아, '벌가리아'로 알려진 불가리아 등 동유럽 나라들은 소련의 군화발에 짓밟혀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 버렸습니다.

헝가리 사람들은 1956년 10월 소련이 임명한 독재자들과 억압적인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고 반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스탈린이 사망한 후 1956년 2월 니키타 후루시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스탈린 격하 발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소련의 위성 국가였던 동구라파 나라에 살던 사람들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56년 10월 23일, 20만 여명의 헝가리 시민들은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뻬슈뜨 (부다페스트) 시내에 모여 소련 점령과 공산주의 독재를 무너뜨리자고 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오후 6시까지 학생회, 작가협회까지 20만 여명이 반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혁명은 헝가리 전국으로 펴져 1956년 10월말까지 개혁주의자 '임레 나기'가 주도한 혁명세력이 집권했습니다. 임레 나기 정부는 자유 투표를 추진하고 소련이 주도한 바르샤바 조약 기구로부터 탈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65년전 1956년 11월 4일 소련은 육군, 낙하산, 기갑 17 사단을 헝가리에 투입했습니다. 소련군과 전투중 헝가리 시민들 수천 여명이 희생되었고 2만5천명이 구속됐습니다. 혁명의 지도자이던 임레 나기까지 포함해 350여명 반공산주의 혁명가들은 소련 군대에게 붙잡혀 사형을 당했습니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은 동유럽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헝가리, 폴란드나 루마니아, 동유럽 곳곳에서 반체제인사들이 1989년까지 공산주의와 전체주의, 인권 유린과 정치 탄압을 계속 반대했습니다.

결국 1989년말 동구라파 나라들은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무너뜨려 자유, 개혁과 개방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1989년 공산주의 독재가 붕괴된 과정에 있어서도 1956년에 유혈 반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킨 헝가리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89년 8월19일 동구라파에서 '유럽 소풍'이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은 인류의 역사를 바꿔 놓았습니다. 그 사건은 헝가리의 국경 도시 소프론에서 일어났습니다. 소프론이라는 도시는 헝가리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던 오스트리아의 국경 가까이 있습니다.

1989년 개혁과 개방의 바람이 헝가리를 포함한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 사이에 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989년 6월 27일 당시 공산 국가이던 헝가리의 외무장관 귤라 호르느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오스트리아의 외무장관 알로이스 모크는 회담을 하고 마쟈르(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즉 공산주의 독재와 자유 민주주의를 가른 두 나라 국경에 있는 철조망 한 조각을 두나라 간 화해와 우정의 상징으로 잘라내었습니다.

그 회담에 이어 1989년 8월 19일 헝가리 도시 소프론에 접한 오스트리아 국경은 3시간 동안 개방되었습니다. 그것은 '구라파 소풍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날은 공산주의 독재국가이던 헝가리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던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국경검문소가 3시간동안 개방되면서 국경을 자유로이 건너가며 같이 소풍을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구라파의 분단을 극복하려는 '구라파 소풍'의 소식을 듣고 공산권 국가이던 동독 사람들은 이 소풍을 자유세계로 탈출하는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600명이 넘는 동독 사람들은 같은 공산권 국가이던 헝가리와의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와 마쟈르 국경검문소가 3시간동안 개방되는 '구라파 소풍' 당시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던 서독으로 망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89년 8월 19일 헝가리 도시 소프론에서 있었던 소풍으로 시작된 과정이 1989년 10월 동독과 서독, 공산주의 독재 세계와 자유민주주의 세계를 분단시킨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1989년10월과 11월 불과 두 달 사이, 독일은 분단 40년만에 통일의 기쁨을 맛보았으며 다른 동구라파 공산주의 나라들도 자유와 민주주의로 향하는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북한 당국에 의한 검열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왜곡된 세계사와 국사 밖에 배울수 없어, 공산주의 독재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헝가리의 역할에 대해 아는 북한 주민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6년 헝가리 혁명 희생자를 추모하고, 1989년 헝가리에 있었던 '구라파 소풍'을 기념하고, 동구라파 해방의 출발지점이었던 32년전 이루어진 '구라파 소풍'처럼 남북한 사람들도 그러한 '자유의 소풍'을 가질 날을 기대해 봅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