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작은 파리’ 파괴와 우상숭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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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 때 로므니아(루마니아) 공산주의 독재자와 김일성 전 국가주석은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1971년6월 로므니아 독재자의 첫번째 북한 방문은 로므니아의 운명을 바꿔 놓았습니다. 북한 사회과학출판사 저자 박태호는 1987년에 발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외관계사' 2권90페이지를 보면 로므니아 독재자 니꼴라에 챠우쉐쓰꾸의 첫번째 방북과 김일성과의 정상회담에 관한 이러한 말이 나옵니다. '회담에서 로므니아 측은 우리 당의 현명한 영도밑에 우리 인민은 자주, 자립, 자위의 혁명로선을 관철하여 나라를 짧은 기간에 완전한 정치적 자주권과 튼튼한 자립적 민족경제와 강력한 방위력과 찬란한 민족문화를 가진 사회주의공업국가로 전변시킨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사실 문제가 많습니다. 로므니아 독재자가 북한식 '자주, 자립, 자위'에 반했다고 하면 김일성, 김씨 일가, 북한 노동당 식 독재자 숭배에 반했다는 뜻입니다. 로므니아 주민들은 이러한 김일성 독재정권 영향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1971 년 북한을 처음 방문한 로므니아의 독재자 챠우쉐쓰꾸는 평양의 건축과 웅장한 도로를 접하며 감탄했고, 그로부터 13년후 로므니아 수도인 부꾸레슈티를 평양처럼 수만명의 군중이 모여 지도자를 숭배할 수 있는 도시로 바꾸려 했습니다. 또 로므니아의 수도 한복판에 20년에 걸친 로므니아 공산국가의 "신계몽주의를" 상징하는 새로운 행정 센터를 건설하고자 했습니다. 말이 행정센터이지 이 건물은 독재자 챠우쉐쓰꾸와 공산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챠우쉐쓰꾸가 로므니아의 주도권을 잡기 전인, 1965년 이전만해도 부꾸레슈띠는 동유럽의 "작은 파리"로 불릴 만큼 세련된 도시였습니다. 20 세기 전반까지 만해도 부꾸레슈띠는 자랑할 만한 유럽식으로 디자인된 우아한 도로와 광장이 즐비한 도시였습니다. 당시 부꾸레슈띠에는 14 세기 지어진 궁전과 정교회 성당, 수백년 된 교회, 호텔, 그리고 전통적이지만 역동적인 시장 등 유명한 관광지가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기념물은 중세 교회와 수도원이었습니다. 당시 부꾸레슈띠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은 교회의 첨탑을 보면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도시 부꾸레슈띠는 챠우쉐쓰꾸가 집권한 이후 삭막한 도시로 변했습니다. 과대 망상증에 시달리던 챠우쉐쓰꾸는 자신의 시대를 길이 남기기 위해 과거의 전통적인 건축을 모두 파괴시키려고 했습니다. 1980년대 들어서 챠우쉐쓰꾸는 부꾸레슈띠 중심부의 5분의 1이나 되는 지역을 불도저를 동원해 밀어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서깊은 교회, 수도원, 묘소, 기념물, 박물관, 극장, 병원, 그리고 옛날 가옥들이 대거 파괴됐습니다. 당시 전통가옥은 10,000채나 파괴되었으며 그 때문에 40,000여명이 집을 잃고 길가로 내몰렸습니다.

그 당시 봄으로 기억되는데 어느날 저의 부모님은 우리 고향의 가장 매력적인 동네도 철거 대상이라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으로 동네 구경을 가자고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저에겐 "작은 파리"로 불리던 부꾸레슈띠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때였습니다. 사진기라도 있었으면 사진이라도 찍어놨을텐데 지금도 아쉽습니다. 그 날 밤 동네 전체는 불도저로 파괴됐습니다. 몇백년 간의 역사와 문화가 한 독재자의 과대 망상증으로 인해 불과 몇시간만에 없어진 셈입니다.

독재자의 절대 권력은 부꾸레슈띠 중심부에 거대한 대통령 궁전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리고 독재자는 그 궁전을 '인민관'으로 붙였습니다. 당시 독재자의 행정 센터와 '인민관'을 건축하기 위하여 무려 100,000여명이 동원됐습니다. 그러나 1989 년 12월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뒤 챠우쉐쓰꾸 행정센터도 종말을 맞게되었습니다. 오늘날 행정센터의 서쪽에서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동쪽 부분도 새롭게 단장 중 입니다. 지금은 챠우쉐쓰꾸 시대 때 만들어진 건물들도 부꾸레슈띠의 정체성의 일부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챠우쉐쓰꾸 개인 숭배를 위해 만들어진 '인민관'은 지금 로므니아 국회의사당 건물로 변했습니다. 현재 독재자와 그의 아내를 기념하는 건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남아 있는 것은 단지 일반적인 묘지에 위치한 십자가 모양으로 된 비석이 있는 평범한 무덤뿐입니다.

부꾸레슈띠는 챠우쉐쓰꾸 독재시절잔인한 파괴로 인해 순수하고 매력적인 모습을 영원히 잃었습니다. 부꾸레슈띠의 옛날을 그리워하는 수많은 로므니아의 건축가, 예술 사학자와 시민들은 막대한 문화유산 파괴에 따른 고통을 아직도 느끼고 있습니다.

로므니아 독재자 차우쉐쓰꾸와 김일성의 가까운 우정으로 비롯된 차우쉐스꾸의 지시에 의해 로므니아 수도 부꾸레쉬띠가 파괴된 것을 생각하면 북한의 금수산태양궁전,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 마식령 스키장 등이 떠오릅니다. 이런 대규모 건설사업에 북한 당국자들은 수 많은 북한 주민들을 동원시키고 이들의 편의나 생활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면 무척 안타깝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