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루마니아 독재 붕괴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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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동구라파, 즉 동유럽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무너진 지 30주년을 기념하는 해입니다. 1989년 이전에 개혁과 개방을 어느 정도로 실험한 마쟈르(헝가리), 체스꼬슬로벤스꼬(체코슬로바키아)나 뽈스까(폴랜드)는 무혈 혁명을 통해, 피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독재가 가장 심했던 로므니아(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끝까지 독재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유혈 혁명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수천 여명의 로므니아 젊은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로므니아와 남북한의 역사를 비교해 보면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로므니아도 남북한처럼 몇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항상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침략을 당했습니다. 로므니아도 한국처럼 삼국시대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몰도바"라는 지방은 로므니아와의 통일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남북한의 역사와 공통점이 많은 로므니아의 역사를 고려하면, 한국적 ‘한’과 비슷한 개념의 ‘도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는 커녕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차 대전 직후 소련은 엄청난 군사력으로 로므니아를 짓밟은 뒤 공산주의 국가로 변모시켰습니다. 로므니아 공산주의자들은 스탈린의 명령을 받아 로므니아의 전통적인 가치관, 문화와 역사를 잔인하게 짓밟아 없앴습니다. 그들은 로므니아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교도소와 강제 노동수용소에 보내서 소위 엘리트 계층, 즉 지식인들을 없애려 했습니다.

1965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주도권을 잡은 뒤 로므니아의 공산당 위원장이 되었습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차우셰스쿠는 당시 나이 47세였습니다. 1967년 그는 대통령이란 직책을 만들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집권 초기에 그는 중국 공산당과 가까운 관계를 맺었으며, 또 로므니아를 어느 정도 외부세계에 개방하면서 소련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1971년 차우셰스쿠는 북한을 방문해서 김일성 전 국가주석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북한의 개인 숭배, 평양의 건축, 웅장한 도로를 접하며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차우셰스쿠는 로므니아 수도인 부꾸레쉬띠(부카레스트)를 평양처럼 대중들이 모여 지도자를 숭배할 수 있는 도시로 바꾸려 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로므니아에서 대규모로 중공업을 일으키고자 했습니다. 로므니아를 강제로 산업화 시키면서 독재자 신격화를 위해 새로운 도시들을 건설하는 데 자금이 많이 들었습니다. 차우셰스쿠는 필요한 외화를 외국 은행으로부터 빌렸습니다. 또한 외채를 갚기 위해 로므니아 주민들을 굶기고 착취했습니다. 이 두 가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연히 로므니아 국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70년대와 80 년대에 로므니아 정부는 외국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많이 빌려 중공업에 투자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수도 부꾸레쉬띠에 커다란 건물을 짓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바람에 날이 가면 갈수록 더 많은 외자가 필요했습니다. 외채를 갚기 위해 로므니아는 농산물과 식료품을 해외에 수출해야 했고, 외국산 소비제 수입을 끊어버렸습니다. 그 여파로 일반 서민들은 어쩔 수 없이 빵, 우유, 식용유나 계란과 같은 기본 식료품을 사려고 일주일에 몇번식 새벽부터 가게 앞에서 줄을 서야했습니다. 정부가 절약한다며 전기 공급을 중단해 정전이 잦아지자 사람들은 석유를 사용하는 조명기구를 쓰기도 했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석유 조명기구를 책상에 올려 놓고 숙제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력난 때문에 로므니아의 하나 밖에 없는 TV 방송국도 저녁 2시간 동안만 방송했습니다. .

마쟈르(헝가리), 뽈스까(폴랜드), 체스꼬슬로벤스꼬(체코슬로바키아)와 벌가리아(불가리아)의 다른 동구권 나라들의 공산 체제와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진 뒤 공산독재 체제의 희생자였던 로므니아 국민들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1989년 12월 21일에 로므니아에서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으며,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는 군사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했습니다. 당시 유혈 혁명을 통해 로므니아 사람들은 자유를 얻었지만, 그것은 로므니아 정치, 경제, 사회의 발전의 첫 걸음일 뿐이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가 와해된 후 로므니아의 시련, 실패와 성공 사례가 두번이나 권력 세습을 이룬 북한 김씨 일가 독제 체제에 앞으로 독재는 영원할 수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