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루마니아 독재자의 마지막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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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회장

북한의 경제는 기본적으로 독재정치와 중앙계획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전 미국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국장이던 빅터 차 (Victor Cha) 교수는 2013년에 펴낸 ‘불가능한 국가: 북한의 과거와 미래’ (“The Impossible State: North Korea’s Past, and Future”)라는 책에서 북한 경제를 망친 김일성의 5가지 잘못된 지시에 대해 언급합니다. 첫째, 불필요하며 비효율적 중공업 강제 개발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상 측면에서 경제를 합리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셋째, 해외 시장에서 대규모 외채를 빌렸기 때문입니다. 넷째, 김일성 신격화를 건설하기 위해서만 여러 커다란 경제 계획에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지원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경제 및 정치 개혁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므니아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1971년 북한을 처음으로 방문해 김일성 신격화와 북한 독재에 첫눈에 반한 나머지 로므니아를 북한과 비슷한 독재국가로 만들려 했습니다. 그래서 경제적 면에서 김일성과 비슷한 다섯 가지 잘못된 지시를 내렸습니다. 김일성은 북한의 외채를 불이행했지만, 차우세스쿠는 로므니아의 빚을 전액 갚았습니다. 로므니아 국민의 복지, 식량 안보, 에너지 안보, 보건 안보로 희생된 대가를 치렀습니다. 35년전인 1989년에 동구라파의 모든 공산주의 정권들이 붕괴했습니다. 그러나 1989년12월 유혈적 방공산주의 혁명은 로므니아 뿐이었습니다. 기본적 이유는 독재 정권에 의한 정치탄압과 인권유린이 심하면 심할수록 좌절하는 주민들이 평화로운 수단을 통해서 정권을 교체하지 못하고 싸우고 피를 흘리는 변화를 일으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차우셰스쿠 정권은 유혈 사태를 피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독재자의 잘못된 지시에 의해 국민의 평화적 시위는 유혈적 혁명으로 변했습니다. 결과는 1,300명 무고한 주민들과 군인들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부상을 입고 독재자와 그의 아내는 군사재판에 의해 처형을 당했습니다.

차우셰스쿠의 마지막 잘못된 지시, 마지막 실수를 살펴보면, 1989년 12월 14일, 공산주의 독재 정권에 의한 개혁교회 목사를 퇴거시키라는 명령을 반대하던 개혁교회 교구민 30-40명이 로므니아 서부 도시 티미쇼아라에 있는 목사의 집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었습니다. 시위대는 평화적이고 무해한 주민들이었습니다. 티미쇼아라는 도시는 비교적 더 개방적인 사회주의 국가 유고슬라비아와의 국경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로므니아 말로 ‘탈쵸크’ (“Talcioc”), 쓰르비아 (세르비아) 말로 ‘오치카 피아츠’ (“Ocika Piaț”)로 알려진 로므니아의 주요 장마당이 티미쇼라에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로므니아 도시 티미쇼아라는 중국 밀수입이 많이 들어오는 중국 단동 압록강 건녀편에 있는 북한 신의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티미쇼아라에서 소규모의 평화로운 시위가 일어나 차우셰스쿠는 장마당을 닫으라는 지시를 했습니다. 이에 조미료, 담배, 커피, 라디오, 수입 청바지와 운동화, 서구 음반과 음악 테이프, 실 등 공식 상거래에서 구할 수 없는 생필품과 기타 물품을 장마당에서 구입하던 사람들은 분노했습니다. 1989년 12월 티미쇼아라 장마당을 닫으라는 지시는 차우셰스쿠의 첫째 실수였습니다.

둘째, 그는 티미쇼아라 거리에서 땅크 (탱크)와 무기, 총아로가 탄약을 든 군인, 전투 깃발을 들고 군사 행진을 조직했습니다. 티미쇼아라 시민들에게 이는 차우셰스쿠가 그들을 위협하고 협박하려는 모욕이자 신호였습니다. 결과는 민중의 분노가 혁명으로 재점화되었습니다.

세 번째 실수는 국민에 대한 학살이었습니다. 차우셰스쿠는 시위하던 주민과 협상하려 하지 않고 대신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죽고 사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차우셰스쿠 정권 하에 24년 동안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삶을 파괴했습니다. 그는 그들을 굶겨 죽였습니다. 그는 그들을 억압했습니다. 그는 모든 인권을 박탈했습니다. 오직 차우셰스쿠는 자신의 개인 숭배를 강화하기 위한 파산 경제를 건설하기 위해 주민들의 삶을 희생시켰습니다. 독재자가 주민들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한 순간부터 주민들의 정상적 생활, 자유와 희망을 되찾으려는 수단으로 공산주의 독재 정권을 유혈혁명을 통해 무너뜨리는 방법 밖에 없다는 현실을 깨닫았습니다.

만약 차우셰스쿠가 로므니아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여 국가를 개혁하고 인권을 개선하고, 자유투표를 허가하고, 생필품 구매와 해외여행을 허용했다면 살아남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못했고, 끝까지 독재통치, 인권유린, 정치탄압, 자신의 신격화를 위해 주민들을 굶기는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차우셰스쿠의 몰락은 역사가 끝날 때까지 전 세계 독재자들에게 교훈이 될 것입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