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호의 모바일 북한] 북한의 표준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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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모바일 북한’김연호입니다. 오늘의 주제는‘북한의 표준약국’입니다.

얼마전 북한 관영매체에서 평양 모란봉구역의약품관리소 종합약국이 소개됐습니다. 북한 시, 군에 들어서고 있는 표준약국의 본보기로 세워졌다고 하는데요, 24시간 봉사체계로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이 약국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로 모란봉구역에 세워졌는데, 주민 밀도가 높고 교통이 좋은 곳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약국의 사진도 함께 실렸는데 2층으로 된 꽤 큰 건물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건물 정면에 ‘약국24h’로 쓰여진 간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보통 24/7이라고 표시합니다.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이라는 뜻으로 밤이든 주말이든 항상 문을 여는 상점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시간을 뜻하는 영어 알파벳 h를 집어넣어서‘24h’라는 표현을 평양의 본보기 약국 간판에 보이게 했습니다. 북한 주민들보다는 외국인들을 의식한 간판으로 보입니다. 혈액순환을 돕는다는 혈궁불로정을 영어로 설명한 광고판이 약국 안에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모란봉구역의약품관리소 종합약국은 판매구역과 기초검사구역, 상담 및 처방구역, 약품분석구역, 보관구역, 제조구역으로 구성돼 있다고 하는데, 미국과 한국의 약국에 비해 더 많은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약국이 따로 있기 보다는 큰 상점 안에 약국이 들어가 있는 형태가 많은데요, 기초 의약품은 매대에서 손님이 직접 골라서 계산하면 되고,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한 약은 약사에게 받아야 합니다. 처방약은 약국에서 제조하지 않고 제약회사에서 공급받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백신과 독감 예방주사도 신청하면 약사가 놓아줍니다.

반면에 모란봉구역의약품관리소 종합약국은 기초검사와 약품분석, 한국에서 한약으로 불리는 고려약 제조 기능까지 겸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이 약국은 구역병원, 동진료소들과 환자들에 관한 정보를 실시간 공유해서 약품 봉사를 신속정확하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란봉 구역 주민들의 건강상태와 개인정보가 입력된 주민건강관리체계도 확립돼 있어서 주민들에게 제때에 약품봉사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의료기관과 약국이 전산망으로 연결돼 있고 주민들의 개인 건강정보가 이 전산망에 입력돼 있다는 겁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체계가 확립돼 있습니다. 의사가 전산망으로 약국에 처방전을 보내면 환자는 약국에서 약을 받을 수 있는데요, 약이 준비되면 와서 가져가라는 통보문을 환자에게 보내줍니다. 인터넷으로 약국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그동안 주문했던 처방약 목록을 지능형 손전화에서 볼 수 있고, 필요한 약은 손전화로 주문해서 배달받을 수 있습니다. 약값 결제도 손전화로 간단하게 끝냅니다. 반면 북한의 표준약국은 환자들의 편의를 위한 정보화는 아직 시작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여러 부문에서 정보화를 추진해 온 만큼 정보화된 표준약국이 들어서고 있다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문제는 의약품 공급이 이 체계를 뒷받침하고 있느냐겠지요. 평양 모란봉구역은 본보기로 가능할지라도 전국의 시, 군 표준약국의 사정은 또다른 문제입니다.

모란봉구역의약품관리소 종합약국 판매원은 말로만 듣던 표준약국을 보고싶어 찾아온 사람들도 많다고 전했는데요, 북한에서 표준약국 체계가 여전히 초기단계에 있음을 확인해주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지난 2022년 5월 코로나 사태 와중에 평양 시내 약국을 시찰하던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표준약국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2년이 지난 건데요, 표준약국을 통해서 의료품 판매의 정확성과 편리성, 안전성을 보장한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사실 이건 그만큼 북한의 의약품 보급체계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는지 방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라는 초유의 위기를 겪고 나서야 표준약국 체계가 제시됐는데, 여전히 어느 시, 군에서 약국이 건설되고 있다는 보도가 대부분입니다. 약국 건물을 세운 다음의 일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