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연호입니다. '모바일 북한', 오늘은 '이관집과 손전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탈북자들의 대북 송금을 다뤘었는데요, 오늘은 이관집을 통한 북한 내부의 송금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전문가들은 이관집이 북한과 중국 대방들 간의 송금방식을 본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금이 실제로 움직이는 대신에 신용을 토대로 통신으로 송금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고, 이런 송금방식은 이관집이 2000년대 초반 북한에서 생겨나기 전에 이미 북한과 중국 사이에서 이뤄졌다는 겁니다. 공식 은행을 통하지 않고 송금이 이뤄진다는 점도 같습니다.
북한에 장마당이 활성화되고 장사 규모가 커지면서 송금 수요도 덩달아 커졌습니다. 시장에서 물건이 돌면 당연히 돈도 같이 돌아야겠죠. 그런데 큰 돈을 인편으로 보내는 건 불편하고 위험합니다.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돈전달을 맡기더라도 가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강도를 만날 수도 있고, 검문소에서 빼앗길 수도 있고, 실수로 잃어버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관집에 송금을 부탁하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평성에 사는 사람이 가까운 이관집에 가서 원산으로 송금해 달라고 하면, 평성 이관집이 원산 이관집에 전화로 송금 액수와 송금인, 수취인의 정보를 전달합니다. 수취인은 송금인이 알려준 원산 이관집을 찾아가 돈을 받으면 되죠. 송금인은 수취인과 전화로 돈을 제대로 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화통화만 잘 연결되면 몇 시간 안에 송금이 끝납니다. 북한에 손전화가 많이 보급되면서 이런 송금방식은 일반 주민들도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관집을 이용하면 수수료로 송금액의1% 정도 떼어줘야 한다고 하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장마당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그만큼 돈도 제대로 돌지 못하겠죠. 이관집에서 송금 수수료를 덜 떼면 송금인한테는 좋겠지만, 이관집 입장에서는 송금 규모와 회수가 줄어든 만큼 수수료를 올려 받아야 수입 감소를 만회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은 누가 더 아쉬운 상황에 있는지가 관건이겠네요.
북한 은행도 송금 업무를 취급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은행을 믿지 않기 때문에 소용없습니다. 맡긴 돈을 찾으러 가면 이런저런 핑계로 제대로 돈을 내주지 않으니까요. 뇌물을 고이면 돈을 받을 수 있겠지만 내 돈 돌려받으려고 뇌물을 고인다는 건 말이 안되죠.
북한 당국도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고, 은행에 돈이 들어와야 경제운영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나름 애는 쓰고 있습니다. 이자율을 올려주고 주민들이 은행에 맡긴 돈을 제대로 찾을 수 있게 해주라고 중앙에서 지시를 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행들이 잃어버린 신용을 되찾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은행에 큰 돈을 맡겨도 출처를 조사당하지 않고 빼앗길 염려가 없다는 믿음이 생겨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관집은 신속하고 편리할 뿐만 아니라 신용을 지키고 비밀까지 보장해 주는 금융기관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장마당 경제의 한 축을 이관집이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이렇게 북한 은행이 제 역할을 못하니까, 대출업무도 이관집에서 하고 있습니다. 사금융 시장이 발달하고 있는 건데요, 장사 밑천이 필요한 사람들은 높은 이자를 주고 이관집에서 돈을 빌리고 있습니다.
큰 돈을 송금할 때는 이관집을 이용하는 게 편하지만, 작은 액수는 전화돈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주민들의 이동이 크게 제한받고 있어서, 가족과 친지들의 경조사에 참석하기가 어려워졌는데요, 생일이나 결혼식 축하금을 전화돈으로 보내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몇 십 달러 정도만 보낼 때는 전화돈이 빠르고 편리하겠죠. 이관집에 찾아갈 필요도 없으니까요. 통신기술 발달로 북한의 송금시장도 점차 세분화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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