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지방경제를 살리겠다며 분주한 모습입니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 총비서가 한 지방의 식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연설을 했는데요. 거기서 선대 수령인, 또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을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간에는 ‘김일성 주석을 마구 끌어내리는 김정은 총비서’라는 주제를 갖고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안찬일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MC :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 등 이른바 선대 수령들은 아직도 북한 주민들에게는 무오류, 전지전능한 지도자로 각인돼 있죠. 그런데 얼마 전 김정은 총비서가 김일성 주석을 대놓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데요. 안 박사님 어떻게 된 건가요?
안찬일: 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몇일전인 지난 20일, 10개월 만에 착공된 평안남도 성천군 지방공업공장을 방문해 올해 경제 부문 역점사업으로 추진해 온 '지방발전 20X10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 자리에서 김 총비서는 선대인 김일성 주석의 지방공업정책이 "뚜렷한 목표와 단계별 계획, 기준, 방법론이 없어 제대로 관철되지 못했다"라고 강도높게 비난한 것입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1일 "'지방발전 20X10정책' 성천군 지방공업공장 준공식이 지난 20일 성대히 진행됐다"라면서 "지방발전 정책 첫해 과업이 빛나게 완결돼 전국의 20개 시·군들에 수십 개의 현대적인 지방공업공장들이 훌륭하게 일떠섰다"고 과장된 보도를 늘여 놓았습니다.
MC : 여기서 20 곱하기 10, 그러니까 20승 10정책이 무엇인지 청취자들의 이해를 위해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안찬일: 네, 그러시죠. 북한의 '지방발전 20×10 정책'은 올해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제시된 정책으로 매년 20개 군에 현대적인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해 10년 안에 전국 인민들의 초보적인 물질문화 생활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키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중 평안남도 성천군의 식료공장은 지난 2월 처음으로 착공한 공장이며, 착공 당시에도 김 총비서가 현장을 찾았던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 경제는 기본적인 중공업이나 여타 공업이 모두 발전을 멈추다 못해 문닫아버린 상태이니 자력갱생의 지방경제를 살려 인민들의 먹고 입는 문제를 풀어 보겠다는 것이죠.
MC : 아, 그렇군요. 그런데 여기서 김정은 총비서가 선대 수령이자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는 것이죠?
안찬일: 네, 이날 김 총비서는 준공식에 참석해 연설을 통해 "창성연석회의로부터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방공업 정책이 관철되지 못하였는가"라면서 "그 중요한 원인은 지방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이 뚜렷한 목표와 단계별 계획, 명확한 기준과 과학적인 방법론이 없이 진행돼 온 데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언제까지 몇 개의 시·군에 어떤 공장들을 어떤 수준에서 건설한다는 똑똑한 목표와 기준이 없이 지방 자체로 제각기 진행돼 공장 수를 늘이는 데만 집착하는 폐단들을 막을 수 없었다"면서 "지역 주민들의 생활에 꼭 필요한 공장은 없고 불필요한 공장은 생겨나는 비정상적인 후과까지 초래됐다"라고 비난했습니다.
MC : 그런데 이미 북한의 경제적 환경과 기반시설 자체가 모두 무너졌다고 봐야 하는거 아닌가요? 이런 상황에서 지방공장을 다시 돌리겠다는건 무리가 아닐까요?
안찬일: 맞습니다. 도대체 중앙경제가 죽은 나라에서 지방경제가 어떻게 살아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김정은 총비서도 그 참상은 인정하면서도 그 책임이 마치 선대 수령들이 잘못해서 그렇다는 건데, 김정은의 연설 내용 좀더 분석해 볼까요? 이날 김정은 총비서는 "창성연석회의 이후 지방공업공장 건설이 계속 확대돼 1980년에는 공장 수가 거의 4,000개로 늘었지만, 건물 상태와 기술 수준은 둘째치고라도 해당 지역의 경제 지리적 조건과 지역의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 이용할할 수 있게 꾸려진 공장은 불과 몇 개 되지 않았다"면서 "실지 인민들이 응당한 덕을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1980년이면 노동당 제6차 대회가 열린 해이며 김정일 위원장이 공식 후계자로 등장해 북한을 통치하던 시기입니다. 이때 벌써 북한 사회주의 경제는 비참한 상태로 붕괴 가도를 치닫던 때인데 그 책임을 김일성 주석 등에게 떠밀고 있는 것입니다.
MC : 조금 전 언급하신 '창성연석회의'는 뭔가요?
안찬일: 네, 창성연석회의는 1962년 8월 7일과 8일 김 주석의 주재로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열린 지방당 및 경제일꾼 연석회의입니다. 김 주석은 매년 이때면 창성별장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군 하는데 여기로 전국의 지방간부들을 불러 지방경제 발전 회의를 소집한 것입니다. 김 주석은 이 회의에서 '군(郡)의 역할을 강화하며 지방공업과 농촌경리를 더욱 발전시켜 인민 생활을 훨씬 높이자'고 강조했습니다. 이때부터 북한은 창성군을 지방경제 발전의 본보기로 내세웠는데, 김정일 위원장은 1964년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하며 졸업논문을 "군(郡)의 역할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작성해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MC : 한편, 적지 않은 북한 전문가들은 1960년대 김 주석이 창성발전 모델을 내놓을 때까지만 해도 북한의 지방경제가 잘 돌아갔다고 하는데 실상은 어땠습니까?
안찬일: 네, 틀린 말 아닙니다. 그때 북한 경제력은 한국에 비해 4배가 앞서 있었습니다. 일제가 남긴 중화학 공업시설을 잘 이용하고 수풍발전소의 전력도 보탬이 되고 특히 지방경제 건설로 시, 군 단위 별로 자급자족이 어느 정도 보장되다보니 인민들이 먹고 살만했습니다. 시, 군마다 식료공장이 건설되어 된장, 간장에 식용유까지 생산해 냈는데 사실 그때까지 북한의 주요 산들은 많은 나무 열매와 과실들을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MC : 산이 살아있을 때는 지방경제가 잘 돌아갔는데, 벌거숭이 산만 남아 있는지금은 어려워졌다는 현실을 김정은 총비서만 모르고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안찬일: 김정은 총비서는 이날 1964년 채택된 '사회주의 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도 관철되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이 또한 "우리 농촌이 좀처럼 추서지 못하고 있는 것도 지방공업이 조락된 원인과 본질상 다를 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2021년 12월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새 시대 농촌혁명강령'에 대해선 "이 정책이 제시된 후 나라의 농업을 확고한 상승단계에 올려세우고 사회주의 농촌의 비약적 발전을 위한 투쟁이 전 국가적인 사업으로 힘 있게 전개되어 짧은 기간에 의미 있는 성과들이 달성되고 있다"면서 자신의 정책을 자화자찬했습니다. 이어 "우리는 빈말 공부질만 하던 잘못된 관행을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지금 우리가 추진하는 사업들은 지난 시기 창성연석회의와 농촌 테제에서 제시된 과업 집행에서 허풍을 치고도 무난하던 때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라고 흥분했습니다.
MC : 결국 김정은 총비서는 아직 자신의 리더십으로 북한의 경제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군요.
안찬일: 그렇습니다. 중국처럼 개혁과 개방을 못하고 주야장창 자력갱생이나 외치는데 어떻게 경제가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먼저 김정은 총비서의 생각을 바꾸던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내려 오는게 북한 지방경제 발전의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MC : 네, 안찬일의 즈간진단,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안 박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안찬일: 네,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MC: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김진국,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