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시간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최근 평양발 뉴스 가운데 북한 전문가들의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김정은 총비서의 딸 김주애와 그의 어머니 이설주, 그리고 김 총비서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엮이는 이른바 권력 후계자 문제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한 외신은 김정은 총비서가 부인인 이설주에게 점수를 따고 김여정을 견제하기 위해 딸 김주애를 등장시켰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인 안찬일 박사와 함께 <평양발 권력 암투, 김영주-김정일 때와 이설주-김여정의 차이점과 공통점>이란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MC : 영국의 일간지 더타임스는 북한의 김정은 총비서가 김여정 부부장과 이설주 여사의 갈등 및 경쟁구도를 진정시키기 위해 딸 김주애를 등장시켰다고 최근 보도한 바 있습니다. 안 박사님, 동의하십니까?
안 찬 일: 네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북한은 말이 공화제이지 김 씨왕조가 70년이 넘도록 권력을 독점한 일종의 입헌군주제 아니겠습니까?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 체계인 3권분립을 배제하고, 족벌세습으로 권력을 주고 받는 나라에서 권력 다툼은 나이와 성별, 세대와 씨족을 초월합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갑자기 딸 김주애의 손목을 잡고 나타났을 때 세상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벌써 4대 세습을 준비하는가? 아니면 그 김씨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구만? 뭐 이런거였는데 이번에 영국의 더타임스가 비교적 잘 분석해 보도했습니다.
MC : 그럼, 아직 소식을 접하지 못한 청취자들을 위해 김정은 총비서가 처음으로 딸 김주애를 데리고 등장했던 당시 상황을 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안 찬 일: 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해 11월, 12살 난 딸 김주애의 손을 잡고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참관하기 위해 나타났습니다. 이런 광경은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북한에서 3대 세습이 이어져 오고 있지만 이렇게 어린 딸을 데리고 나타나니 그 장면을 본 북한 인민들과 세상 사람들이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김주애는 바로 지난 2013년 미국의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 총비서가 그에게 자랑한 바로 그 딸이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2009년에 결혼했으니 아마 그 당시 한 두 살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만 김정은 총비서의 딸 사랑은 좀 유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자신들이 세상과 등지고 살아온 과거의 트라우마를 현재의 자식들에게 그대로 넘겨주지 않겠다는 심리상태로도 분석할 수 있습니다.
MC : 그래서 당시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아, 벌써 김정은 총비서가 후계자를 공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 찬 일: 네, 제가 김 총비서 배속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는 한 그 결론은 내기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북한이 심심찮게 7000년 집권이니 8000년 집권이니 주절거리고 있는 걸 보면 차후 권력도 세습으로 이어지리란 사실은 명명백백합니다. 그러나 세습의 냄새는 될 지언정 김주애 얼굴 공개 하나로 차기 지도자가 김주애란 것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총비서의 건강과 현재 북한의 체제위기로 볼 때 차기 권력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MC: 그렇군요. 그럼 이번에는 오늘의 핵심 주제인 '김정일과 김영주' 때와 그리고 작금의 '이설주-김여정'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암투의 배경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먼저 각각 이 두 사람들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봐야 할까요?
안 찬 일: 아, 네 김영주와 김정일은 삼촌 조카 사이입니다. 김일성은 딸은 없는 3형제, 즉 김일성, 김철주, 김영주 등인데 김철주가 일제 시기 죽는 바람에 김일성의 동생 사랑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일본 헌병에게 협력한 동생 김영주의 핸디캡을 가려주고자 일찍이 해방 후 모스크바로 보내 유학을 시켰고, 반종파 투쟁이 끝난 1958년 그를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제일 힘이 센 조직부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당시 노동당 조직담당 부위원장은 그 당시까지 김일성에게 적극 협력하는 갑산파의 거두 박금철이었습니다. 김영주는 갑산파가 숙청된 1967년 일약 노동당 조직비서에 올라 명실공히 당의 2인자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김영주는 조카 김정일이 범접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세습의 도전에 직면했다는 점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김주애는 아직 코흘리개라면 코흘리개 아니겠습니까? 감히 후계자라고 말도 꺼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일약 그에게 “존귀하신”이런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즉 당보에 존귀하신 용어가 붙여진 것은 전무후무한 큰 사건이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김영주-김정일 때와는 다른 형태의 권력세습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MC :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궁금한 것은, 김영주-김정일 후계자 대결에서 왜 김영주는 패배자가 되었습니까?
안 찬 일: 네,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일찍이 권력의 맛을 들인 김정일이 잽싸게 치고 올라온 것, 그리고 둘째로 이른바 항일빨치산 그룹인 오진우와 오백룡 최현 등이 김정일을 적극 밀어주었습니다. 자신들의 노후와 저들 역시 자녀들의 세습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의 권력세습은 김 씨 왕조 뿐만 아니라 이른바 백두산줄기, 만경대 가문 모두의 집체작인 셈입니다. 그러니 오늘 북한이란 나라가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건 당연한 귀결입니다. 양두구육, 즉 양고기 간판을 내걸고 개고기를 판다고, 말로는 사회주의를 하면서 실제로는 봉건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겁니다. 오진우의 아들 오일정 노동당 부장, 최현의 아들 최용해 상임위원장 등이 바로 그 세습정치의 주역들입니다. 그리고 최근 책을 내 북한의 어두운 구석을 재조명한 오혜선 태영호 의원의 부인은 바로 오백룡 대장의 집안입니다.
MC : 아, 그게 그렇게 되는 거군요. 그런데, 김정은 총비서가 부인 이설주의 압박에 못이겨 김주애를 등장시켰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그 압박이란 게 뭘까요?
안 찬 일: 네, 현재 김여정의 무소불위 행동은 도를 넘어선 지 오랩니다. 그는 정치외교는 물론 노동당의 인사 문제와 대남사업, 또 의전까지 다 제맘대로 휘두르고 있습니다. 꼭 1970년대 초반 김정일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설주가 공식행사에 한 번 나가려 해도 김여정의 눈치를 볼 정도입니다. 명색이 북한의 영부인인데 저 시누이한테 꼼짝달싹 못하는 이설주가 그냥 가만있을 리 만무하지요. 결국 남편 김 총비서의 옆구릴 찔러 김주애를 등장시켜 저 설치는 '평양판 강 청'을 좀 누르라고 했을 것입니다. 물론 김여정을 당장 몰아낸다는 의미보다 강한 견제로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것입니다. 과거 김성애가 가만있다가 김정일에게 당하고, 또 고영희는 너무 설치다가 화병에 일찍 죽었으니 이설주에게 이 두 여인네들의 행동은 반면교사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MC :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마칠 시간이 다 됐습니다. 끝으로, 김정은 총비서 체제는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요?
안 찬 일: 그렇게 오래갈 수는 없다고 봅니다. 북한 인민들 대부분이 3대까지는 참았지만 4대 세습은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고 욱욱하고 있습니다. 과거 봉건정치 모두 자기 모순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세습을 꿈꾸지 말고 북한을 바꾸는 일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MC : 네, 안찬일의 주간진단,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안 박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안 찬 일: 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끝>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