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북, 주체혁명은 재고품, 세습혁명은 신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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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시간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혁명’이라고 하면, 보통 프랑스대혁명이나 러시아혁명, 또는 동학혁명 같은 말들이 떠오르는데요, 북한은 작은 활동에도 혁명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북한 당국이 어떨 때 이 ‘혁명’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는 지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박사와 함께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MC : 안찬일 박사님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안 찬 일 : 네 안녕하십니까! 잘 지냈습니다.

MC : 먼저 이 '혁명'이란 말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혁명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안 찬 일 : 네, 정치사회학에서 혁명이란, 단순히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교체를 넘어서 이념적 변화로 인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사회 시스템에 있어서 급격하면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는 체제전복을 의미하며, 주로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혁명개념입니다. 물론 5.16처럼 군인들에 의한 군사혁명도 있죠. 정치적인 의미 이외에 기술이나 과학에서 근본적이고도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질 경우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 체제를 아예 갈아엎는 체제전복 행위인 혁명과는 달리, 기존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제도변화를 추구하는 경우는 개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혁명과 개혁의 차이점의 대표적인 예로, 사회주의 이론에서 혁명적 사회주의는 폭력혁명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립하려고 하지만, 개혁적 사회주의(개량주의)인 사회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제도는 유지하면서 선거를 통하여 집권하려고 하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정치학에서 혁명은 체제전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유교에서의 역성혁명의 개념은 왕조의 교체에 불과하므로 정치학적인 혁명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MC : 북한의 언론보도에서, 그리고 또 선전문구에서 '혁명'이란 말을 자주 들을 수가 있는데요, 북한은 어떤 경우에 이 혁명 이란 말을 많이 쓰나요?

안 찬 일 : 북한은 말로는 사회주의를 부르짖고 있지만 실제 정치의 목적은 봉건주의 아닙니까. 즉 세습체제로 소수집단이 영구집권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은 북한의 혁명은 '주체혁명'이 아니라 '세습혁명'인 셈입니다. 북한은 1955년 12월, 처음으로 '주체'를 강조한 이후 약 20여 년간 주체사상을 통치이데올로기로 잘 활용하였습니다. 그 당시 북한은 천리마운동 등 강제적 '동원화'가 수반되었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인민생활이 향상되는 나름내로 과도기적 혁명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우리는 북한 정권이 들어서고 1960년대 말까지의 북한 사회의 변혁을 사회주의 혁명, 심지어 주체혁명으로 보아야 한다는데 그다지 반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MC : 그렇다면 북한 노동당이 말하는 '주체혁명'은 언제 막을 내렸다고 봐야 할까요?

안 찬 일 : 당연히 세습체제의 태동기, 즉 1970년대 초반에 북한 사회의 진화가 멈춘 시점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1974년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화한 이후에도 당분간 주체사상은 여전히 북한 노동당의 통치이데올로기였습니다. 그러나 김정일 이전의 주체사상과 김정일 이후의 주체사상은 본질에서 다른 것입니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주체혁명'위업, 그것은 이미 북한에서 사오십 년 전에 끝난 일입니다. 김정일 시대부터 북한에 주체혁명위업은 없고 오직 '세습혁명'만 줄기차게 진행되었습니다. 마치 김정은 시대에 이르러 이제 세습혁명은 북한체제 존재의 이유이자 목적으로 굳혀진 것 같습니다.

MC : 그런가하면, 최근 '김일성 주석의 유년시절 배움의 천리길 100주년'을 맞으며 다시 김주애와 연계시키는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이것을 박사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안 찬 일 : 네, 지난 16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혁명의 명맥을 잇는 핏줄기"를 강조하면서 '계속 혁명'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노동신문은 이날 김일성의 이른바 '배움의 천리길' 100주년을 맞아 1면에 게재한 글에서 "혁명은 첫걸음을 떼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운 뜻을 변치 않고 천 걸음, 만 걸음으로 이어가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배움의 천리길'은 김일성이 11살 때인 1923년 1월 조국을 배우겠다면서 중국 만주 팔도구(현 연길 지역)에서 평양 만경대 생가까지 걸었다는 노정으로, 대표적인 김일성 우상화 작업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다시 만경대에서 팔도구까지 되돌아가는 노정을 '광복의 천리길'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당시 김일성의 11살은 신통하게 오늘 현재 북한 4대 세습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는 김정은 이설주의 딸 김주애의 나이와 똑같습니다.

MC : 북한은, 고인인 김일성 주석 조상까지 이용해 세습혁명의 이론화, 체계화에 집착하고 있다는 말씀이신데요.

안 찬 일. 네, 맞습니다. 노동신문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어리신 아드님을 천리길에 내세우시면서 김형직(김일성의 아버지) 선생께서는 강반석 어머님께 '내가 싸우다 뜻을 못 이루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싸우다 못다 하면 손자가 싸워서라도 우리는 기어이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뜻깊은 말씀을 했다"며 "여기에는 위대한 계승의 철학, 첫걸음의 참뜻이 있다"고 선전했습니다. '혁명의 핏줄기'와 '계속혁명'은 북한에서 김씨 세습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개념으로 김정은이 후계자 시절에도 북한 관영매체에 등장했던 표현입니다.

노동신문은 "우리 혁명은 무엇을 위하여, 누구에게 의거하여 수행하여야 하며 대를 이어가야 할 핏줄기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준 이 천리길이 있어 조선혁명은 오늘에 이르는 기나긴 행로에서 단 한 번의 탈선도 모르며 승리만을 아로새겨온 가장 영광스러운 위업으로 빛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MC : 북한의 탈선과 배신은 사람이 저지른 일이지, 일반 인민대중이 그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안 찬 일 : 네, 그렇습니다. 북한 인민들은 70여 년 동안 정말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가오지도 않는 지상락원의 미래를 그리며 온갖 고생을 다 했습니다. 혁명의 진로에서 탈선하여 세습의 봉건정치로 북한을 저 모양, 저 꼴로 만든 당사자들은 김 씨 왕조입니다. 김씨 왕조가 세습혁명을 시작한 1974년 바로 그 순간 북한에서 혁명은 사라지고 수구와 세습의 세상이 열렸습니다. 그때부터 통치자들의 머릿속에는 북한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의 향상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권력의 재생산에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탈선사고가 또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김일성의 배움의 천리길을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 어두운 시절 배우고, 독립하고자 천리길을 걸은 사람은 100명, 1,000명도 훨씬 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북한 정권은 유독 김일성만이 배우고자 했다고, 나아가 김일성만이 항일했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김일성이 배움의 천리길을 떠나 먼 길을 걸으며 다진 맹세가 오늘 북한 사회와 같은 인간생지옥 건설이었을까요? 또 그가 일제와 싸우며 죽음의 사선을 헤쳐나오며 이루고자 했던 나라가 오늘 북한처럼 일제식민지 시대보다 못한 저개발국가였을까요. 지금 이순간에도 북한 도처에서 인민들이 한 줌의 쌀이 없어 굶어 죽는 비극이 빈발하고 있는 이 상황을 김정은 총비서는 왜 외면하고 있단 말입니까? 세습은 망국의 지름길이며 파멸의 전주곡입니다.

MC : 어느덧 마칠 시간이 다 됐습니다. 안찬일 박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 찬 일 :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