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북한, 오죽하면 ‘허풍방지법’까지 만들어야 할까?

0:00 / 0:00

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지난 달 28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북한에서 농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허위보고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허풍방지법을 통해 수확량 허위보고를 근절하겠다는 강한 입장을 최근 밝혔다’라고 보고했다고 정보위원회 여야 간사들이 밝혔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허풍방지법’이 무엇인지 한국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인 안찬일 박사와 함께 알아 보겠습니다.

MC: 안찬일 박사님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잘 지냈습니다.

MC: 북한의 새로운 '허풍방지법' 제정의 배경은 뭔가요?

안찬일: 네, 북한은 최근 농업생산 허풍방지법을 제정하였는데, 김정은 총비서는 2021년 식량계획 관련 '허풍'을 경고하면서 당과 정권기관, 농업부문에서 허풍을 근절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갈수록 증가하는 농민들의 국가수매에 대한 불평불만과 간부들의 기만행위를 막아보겠다는 의지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의 협동농장들에서 생산한 식량 양을 노골적으로 속이면서 노동당의 강제수탈을 반대하는 북한 인민들의 반항을 법률적으로 막아보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MC: 그런데, 말씀하신 '국가수매'는 무엇을 가리키는 건가요?

안찬일: 국가수매란 북한의 농민들이 생산한 식량을 이른바 '국가수매'란 명목으로 빼앗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물론 정권 운영과 군인들, 도시와 공업지대 노동자들을 위해 일정 양의 식량을 바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문제는 1970년대까지 그 양이 제도화되어 있었으나 그 후 식량사정이 악화되면서 농민들이 먹을 것 마저 남기지 않고 대량 강제 수매한다는 것입니다. 직접 농사를 지은 농민들이 굶어죽는 판에 다른 사람들 먹인다고 빼앗아가는게 말이 됩니까? 대표적으로 황해도 곡창 지대에서 몇 년 전 대량아사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군부대와 노동당이 농사지은 쌀을 모두 빼앗아갔기 때문에 발생한 참사입니다. 국가수매 명목 외에 쩍하면 '애국미헌납운동' '군부대 돕기' '평양시 5만세대 건설자돕기' 등으로 수탈이 이어지기 때문에 농민들의 쌀독은 5월이면 모두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MC: 그러니까 식량생산 허위보고의 관습화가 이번 '허풍방지법' 제정의 결정적인 동기가 됐다는 말씀이신가요?

안찬일: 그렇습니다. 북한 노동당이 최근 당 정치국회의까지 소집하며 일군들의 허위보고를 질타했는데, 노동당이 남 탓할 사정은 아니라고 봅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과거 농사부문의 '허풍'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지난해 초 8차 당 대회 후 이례적으로 한 달 만에 열린 당 전원회의에서도 그랬습니다. 김 총비서는 이 때 "5개년 계획의 첫 해부터 알곡 생산목표를 주관적으로 높이 세워놓아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계획 단계에서부터 관료주의와 허풍을 피할 수 없게 했다"며, "농업무문에서 허풍"을 없앨 것을 지시한 바 있습니다.

MC: 지난 해 김정은 총비서의 질책 내용과 이번에 새로 제정된 허풍방지법의 차이점은 뭔가요?

안찬일: 당시 허풍이 식량생산 계획과 관련된 과장 보고라면, 최근 중점을 두고 있는 허풍은 생산 실적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데. 허풍을 치는 자들 중에는 일반 농민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개는 현장 간부들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8일 사설에서 "일군들은 허풍이 당과 인민을 속이고 당 정책 집행에 도전하는 행위로 된다는 것을 깊이 명심하고 영농실적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보고하는 기풍을 세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 역시 "예상 수확고와 실 수확고 판정을 과학적으로 엄밀히 하여 알곡 생산량과 수매량을 정확히 장악하며 허풍을 치는 현상이 절대로 나타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MC: 그런데, 간부들의 식량 생산량 보고 내용이 뭐가 어떻게 잘못됐다는 건가요?

안찬일: 네, 북한은 지금 식량전쟁 중입니다. 지역 별로 식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인민들의 폭동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입니다. 그러니 지방 간부들은 "표창도, 훈장도 중요하지 않으니, 생산량을 줄여 보고하고 일단 농민들의 먹는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궁여지책이지만 일단 간부들이 제정신 차렸다는 측면에서는 환영할 일입니다. 문제는 이런 것을 김정은이 알아차렸는데, 김정은은 아래 간부들의 속셈을 암행어사식 감찰로 보고 받고 또 야단법석을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에 황해남도 당위원회 박성철 책임비서와 역시 황해남도 인민위원회 김영철 위원장이 평양에까지 불려 올라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고 하니 허풍이 북한 전 사회에 만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MC: 그렇다면 앞으로 북한의 허풍 보고가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요?

안찬일: 오늘날 대북제재와 코로나19, 국경폐쇄에 따른 무역단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 곡물가격 상승 등 복합위기에 처한 북한은 자구책으로 식량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농촌지역의 식량 생산에 대한 국가 수매 비율을 대폭 올리고 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2년 전 8차 당 대회에서 "앞으로 2~3년 해마다 국가 의무수매 계획을 2019년 수준으로 정하고 전망적으로 수매량을 늘리라"고 지시한 바 있습니다.

북한에서 2019년은 대풍이라고 불릴 정도로 작황이 좋았는데, 이 때의 수매량을 기준으로 제시한 셈이니 국가의 수매량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국가가 농촌에서 싼 가격으로 강제로 사들이는 식량 비율을 높임에 따라, 농민들이 자율적으로 처분할 수 있던 범위의 식량도 갈수록 감소하는 셈입니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농촌에서 싼 가격으로 수매한 식량을 도시 인민들에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공급함으로써 물가 안정을 꾀하는 것이지만, 사실상 식량을 빼앗기는 농민들 입장에서는 국가 수매에 대한 불평불만이 날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 총비서는 지난 2012년 집권 후 농민들의 자율적인 식량 처분권을 줄곧 확대해왔으나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의 복합 위기에 직면해 핵 고도화 전략과 함께 경제 재집권화의 방향으로 정책기조를 선회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농사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북한의 식량 자체 해결은 요원합니다.

MC: 미국 농무부 등 전세계 여러 기관의 자료를 보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북한은 외부의 식량 지원을 거부하고 있잖습니까?

안찬일: 맞습니다. 북한 당국은 외부 식량이 많이 들어오면 먹는 문제가 크게 풀리겠지만 덩달아 개혁과 개방의 파도가 밀려오는 데 따른 두렴움으로 외부지원을 가로막고 있어 안타까움이 큽니다. 김정은 총비서부터 먼저 앞장서 허풍을 떨쳐버려야 할 것입니다.

MC;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안찬일 박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안찬일: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진행: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