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최근 북한의 집권당인 노동당은 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8000년 집권의지를 언급했습니다. 그것은 현재 3대 세습을 800대 세습으로 이어간다는 말로 해석되는데요. 오늘 이 시간에는 한국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인 안찬일 박사와 함께 “북한 노동당의 8000년 집권은 일장춘몽, 80년도 어렵다”라는 주제를 갖고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MC : 안찬일 박사님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잘 지냈습니다.
MC : 북한 노동당의 8000년 집권 발언, 어떤 내용인가요?
안찬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8일 1면 기사에서 “2022년은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더욱 힘 있게 다그쳐 나가는 데서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운 해”라고 주장하면서 이어 “총비서(김정은) 동지께서 새 시대 당 건설 방향을 천명하신 것은 전당 강화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감으로써 당의 근 80년 집권사를 800년, 8000년으로 이어 나갈 수 있는 진로를 명시한 것”이라며 “역사적 사변”이라고 자화자찬했습니다.
MC : 그런데 북한 노동당이 장기집권을 역설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죠?
안찬일: 네, 그렇습니다. 북한 노동당은 김정은 등장 초기 노동당 1000년 집권을 거론하다가 또 7000년 집권까지 비약한 적은 있지만 이번에 다시 8000년으로 껑충 뛰어올라 영구집권을 강조한 것은 곧 맞이할 김정은의 생일인 1월 8일을 공식화하려는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즉 북한은 올해 핵무력화를 공식화 한데 이어 화성 17형 ICBM을 발사하고, 김정은의 딸을 공개하며 핵·미사일로 김씨 왕조의 미래가 담보될 것임을 시사했고 이 분위기를 살려 내년 김정은 생일인 1월 8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선포하고, 4대 세습에 이어 영구 세습을 이어 갈 준비를 하겠다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MC : 돌이켜 보면 북한 노동당은 김정은 체제 이전부터 왕조문화를 언급하면서 세습정치의 정당화를 꾸준히 촉진해 왔다는데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안찬일: 널리 알려진 대로 북한은 공화국을 표방하지만 세습 왕조 국가입니다. 김정일은 그래도 삼촌 김영주와 왕 자리를 놓고 경쟁했지만, 김정은은 김정일 와병 탓에 왕세자로 급조됐습니다. 동서고금 모든 왕조의 최대 관심사는 왕실의 영속입니다. 가장 오래된 왕조는 일본 왕실인데, 기원전 711년 태어난 진무(神武)로부터 126대 현 나루히토 일왕까지 이어진다는 게 일본의 주장입니다. 이것을 ‘만세일계’(萬世一系)라 표현하고 있죠. 무려 2700년에 가까운 장기집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각제 정치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실권이 없는 일본 왕실은 김씨 왕조의 모델은 아닐 것입니다.
MC : 북한 정권은 왕조정치의 롤모델을 찾는 가운데 태국의 왕정체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얘기인가요?
안찬일: 네, 2016년 10월 13일 태국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숨지자 북한은 즉시 김정은 명의의 조전(弔電)을 보냈습니다.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북한은 덩샤오핑·카스트로 등 사회주의 지도자나 김대중·노무현·정몽헌 등 입맛에 맞는 한국 인사들의 부고에만 선택적으로 최고지도자 조전을 발송해 왔습니다. 태국은 북한과 수교하긴 했지만 매년 미국과 연합훈련을 하는 미국의 우방입니다. 미 국무장관을 지낸 올브라이트의 회고록에 이 의외의 조전에 대한 단서가 있습니다.
올브라이트는 2000년 10월 방북 당시 김정일과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했는데,. 올브라이트가 경제 개방 의사를 묻자 김정일은 “중국식 개방에는 관심이 없다”며 “왕권이 강력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경제도 발전시킨 태국 모델에 깊은 관심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올브라이트는 김정일의 관심을 끈 게 태국의 경제인지 강력한 왕권인지 궁금하다고 썼지만, 당연히 왕권정치일 것입니다.
MC : 태국의 비교적 안정된 왕권정치는 당연히 평양 세습정권의 최대 관심사가 될 수 있다고 보는데요. 현재 왕권정치 국가들 가운데 장기집권 중인 사례를 좀 짚어 주시죠.
안찬일: 네, 태국의 푸미폰 국왕은 재위 기간이 70년 126일로 역대 3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위는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로 72년 110일, 2위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70년 214일입니다. 46년 집권한 김일성은 82세, 17년 집권한 김정일은 69세에 모두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습니다. 가족력이 이런데도 38세로 11년째 집권 중인 김정은은 고도비만에다 술·담배를 달고 사는 ‘종합병원’이란 별명이 붙은 지도자입니다. 북한의 <만수무강연구소>가 아무리 애를 써도 김정은 총비서의 장수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한편 총리 명의이긴 했지만 북한은 지난 2015년 3월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가 사망했을 때도 조전을 보냈습니다. 리콴유가 31년 통치한 뒤 ‘대타’ 고촉통을 거쳐 아들 리셴룽이 3대 총리를 맡고 있는 싱가포르 모델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2018년 미·북 정상회담 장소가 싱가포르로 정해진 데에도 이런 호감이 작용했을지 모릅니다.
MC : 북한의 김씨 왕조는 올해로 77년째입니다. 김정은 체제의 8000년 집권 발언을 과연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안찬일: 네,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부자가 3대를 못간다”는 명언도 있지만 북한의 김씨 왕조가 3대를 넘긴다면 그건 이 세상에 진리가 실종되고 정의가 사망했다는 말입니다. 북한 당국자들은 과거 조선왕조 500년에서 장기집권의 비결을 찾으려 애 쓰지만, 그 당시 조선의 봉건정치와 오늘의 21세기 인류문명을 똑똑히 비교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북한 주민들 2,550만 명 중 핸드폰 사용자는 무려 700만 명을 육박하고 있습니다. 거의 세 사람 중 1명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이들은 엔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불구자 핸드폰’을 쥐고 있지만 나름 소통의 혁명을 다그치고 있습니다.
이들의 눈과 귀를 가리며 봉건정치의 장기집권을 꿈꾸고 있는 김정은 체제는 말 그대로 일장춘몽에 사로잡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MC : 하지만 김씨 정권이 장기집권을 강행하려 한다면 대대적인 숙청과 같은 부작용이 일어나지는 않을까요?
안찬일: 바로 그 점이 우려됩니다. 3대 세습까지 오는 동안 북한의 정치는 실종되고 인민생활은 일제 말기로 되돌아갔는데, 이제 다시 4대, 5대로 간다면 북한에 살아남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태평양에 동상을 세울 수 없듯, 인민대중이 사라진 나라에 무슨 정권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김정은 체제는 세기말적인 세습정치를 하루빨리 접을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3대 세습까지 역사가 허락한 것도 감지덕지해야 할 것입니다. 부디 북한판 ‘자스민혁명’이 평양에서 폭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MC : 안찬일 박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안찬일: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