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 진단’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몇 일 전 2월 8일은 북한의 건군절입니다. 1948년 2월 8일에 첫 건군 열병식을 가졌으니 75주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건군절의 역사는 순탄하지 않다고 안찬일 박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안 박사는 북한의 건군절은 중간에 한 번 다른 날로 바뀌었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항일유격대의 창건일인 4월 25일로 뒤바뀌었다가 다시 또 한 번 바뀌었습니다. 모두 개인숭배와 우상화 정치의 산물에 현실이 왜곡되고 굴절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해서 오늘 이 시간에는 “북한 2.8 건군절의 굴절 역사” 이런 제목으로 안찬일 박사와 이야기 나눕니다.
안찬일 박사님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안찬일:네. 안녕하십니까! 잘 지냈습니다.
질문 1:나라마다 군대가 있고 그 군대는 건군절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우 10월 1일이 국군의 날입니다. 문제는 북한군은 1948년 2월 8일에 창군 되었다면 정권보다 7개월 먼저 창건되었다는데 맞습니까?
안찬일:네, 북한의 해방정국에서 공산당은 건당, 건국, 건군의 기치를 내들었는데 공산당 다음으로 정부가 아닌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이 자체가 매우 불순한 것입니다. 초기부터 무력통일을 기획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바로 그 북한군이 2년 뒤 남침 전쟁을 도발하지 않았습니까. 북한의 해방정국은 소련군정 시대였습니다. 김일성은 그 하수인에 불과했습니다. 오늘 북한은 당도, 군대도 모두 김일성이 만들었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북한의 해방정국 정치 일정은 모두 소련군의 군정 당국이 모스크바의 소비에트화 방침에 따라 차근차근 진행한 것입니다.
질문 2:김일성은 귀국 시에도, 귀국 직후에도 소련 군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는데 그게 사실인지요?
안찬일:그렇습니다. 소련군정 당국은 8.15 해방 후 김일성 일행의 귀국을 당분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다가 소련군이 1945년 8월 24일 평양에 진주한 후 조만식 선생 등 민족주의자들이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자 김일성 등을 데려가 공산정권을 세우려고 1945년 9월 19일 소련군함 브가쵸브호에 태워 원산으로 귀국시켰습니다. 소련에서 귀국한 김일성 일행은 원산에서 추석을 쇠고 이틀 후 열차 편으로 평양으로 올라왔습니다. 당시 소련군정 당국은 김일성 일행 중 최현을 함경북도, 김일을 평안북도 신의주 등 각지 소련군 경무사령부 부책임자로 임명하였는데 김일성은 소련군 대위 출신으로 평양 경무사령부 부책임자였습니다.
질문 3:그렇군요. 소련군정 당국은 일찌감치 군대 창설을 계획하고 평양 근교에 보안간부훈련소 등을 만들었다는데 그건 어떤 교육기관이었는지요?
안찬일:보안간부훈련소는 오늘 북한의 종합군관학교인 강건종합군관학교의 전신으로 북한군 창설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안간부훈련소를 세운 북한은 여기에 소련군 고문단과 88여단 출신, 예로 북한에서 부주석을 지낸 박성철 등을 교관으로 내세워 입교생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켰습니다. 박성철과 류경수 등은 이미 소련군 88여단에서 약 4년여 군사교육을 받은 이들로 군사교육 기관의 교관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이들 모두는 학교 졸업 후 임관하여 1948년 2월 8일 북한군 창설 시 초급 지휘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질문 4:분명한 것은 북한군은 1948년 2월 8일에 창설된 것이 맞는데, 북한은 1978년 별안간 건군절을 4월 25일로 바꿔 버렸는데 어떤 사연입니까?
안찬일:당시 북한군의 책임자인 인민무력부장은 오진우였습니다. 그는 눈만 뜨면 어떻게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점수를 딸까 그런 생각만 하는 정치군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궁리해낸 것이 북한군 창건일을 소급 적용하여 1932년 4월 25일 항일유격대 창설일로 끌어올려 버리고 그걸 건군절이라고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북한 군인으로 직접 그 역사의 날조를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북한군의 영화촬영소인 2.8영화촬영소는 4.25영화촬영소로, 2.8체육단은 4.25체육단으로 모두 간판을 바꿔달게 되었습니다. 아니 군대 역사가 길다고 훌륭한 군대가 될 수 있습니까?
따져보면 1932년 항일유격대 창건도 많이 조작된 것은 사실입니다. 당시 중국 공산당의 방침에 따라 무장투쟁으로 전환하던 시기에 김일성은 약 25명의 청년들을 모아 안도현에서 무장부대를 만들고 그것을 요란하게 항일유격대의 창건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문 5:그렇게 북한군은 굴절의 역사를 보내오다 언제 또 2.8건군절로 원대복귀하였는지요.
안찬일:원대복귀는 김정은 총비서의 작품입니다. 아무래도 "우리의 개인숭배가 도를 지나친 것 같아" 뭐 이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북한은 지난 2018년 1월 22일 '건군절' 변경을 선포했는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서를 통해 2월 8일을 건군절로 지정하고, 기존 건군절인 4월 25일은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로 이름을 바꿔 부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원래 건군절의 복원입니다. 1978년에 항일유격대 조직일인 1932년 4월 25일로 바뀌기 전까지는 건군절이 인민군 창설일인 1948년 2월 8일이었으니 무려 40년 만의 원대복귀인 셈입니다.
질문 6:김정은 총비서는 왜 건군절의 원대복귀를 주장했을까요?
안찬일:재지정 조짐은 '김정은호(號)' 출범 3년째인 2015년부터 보였습니다. 우선 김정은 총비서는 선대와의 차별화를 꾀하려 했다는 분석을 들 수 있습니다. 집권 초기 김일성과 김정일의 후광에 크게 의존했던 김정은이 시간이 경과할수록 변화되는 주민 지지도를 바탕으로 선대와의 차별화를 모색해 왔다고 진단할 수 있는데 건군절 복원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또 '당(黨)' 중심의 정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군(軍)의 위상과 역할을 강조했는데 '선군후당(先軍後黨)' 통치 이념 하에서 군부 권력이 지나치게 커졌고 군이 통치하는 나라는 정상 국가가 아니라는 게 김정은 총비서 판단이었습니다. 2016년 36년 만에 당대회를 열어 당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건군절까지 바꿔 당 창건(1945년)이 군 창건(1948년)을 시간상으로도 앞서도록 만든 게 이런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이었을 공산이 큽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들자면 북한군 군인들 모두가 2.8절에 대한 깊은 향수를 되살려 줌으로써 김 총비서에 대한 충성심을 자극하려는 의도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안찬일: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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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기자 이현기,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