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 진단’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북한 정권은 오늘날 북한 여성들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큰 남녀평등권을 누리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그러나 북한에서 살아본 탈북민들은 북한이야말로 녀성들에겐 가장 참혹한 인간생지옥이라고 안찬일 박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을 통해 밝혔습니다. 안 박사는 왜 그럴까?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정치로 말미암아 경제가 통째로 무너지다보니 여성들이 모두 노동현장에 투입되고, 가사노동이 중첩되면서 모든 고난의 멍에가 여성들 어께위에 짊어지워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공장 기업소는 멈추고 남자들은 졸지에 모두 실업자가 되어서 가족들 먹여 살리는 일이 여성들에게 강제로 떠맡겨졌다고 했습니다. 해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진정한 여성해방은 북한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런 제목으로 안찬일 박사와 이야기 나눕니다.
안찬일 박사님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잘 지냈습니다.
질문 1: 북한의 선전화면만 보면 북한 여성들은 비교적 남녀평등권을 잘 누리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안 박사님의 서두에 주장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원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떻습니까?
안찬일: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래는 <여성은 꽃이라네>입니다. 아름다운 꽃 하면 우리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는 아름다움의 절정이지만 북한 사회에서는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여성은 꽃으로서 혁명에 이바지한다는 것으로 혁명의 한 쪽 수레바퀴를 밀고 나가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의 청년들은 이 노래를 <여성은 바퀴라네> 이렇게 개사해서 부르며 노동당의 남녀평등정책을 비웃고 있습니다.
질문 2: 마침 3월 8일은 국제부녀절로 북한에서도 기념하고 있는 것 같은데 국제부녀절의 의미를 좀 더 알아보고 대담을 이어갈까요?
안찬일: 네, 북한의 국제부녀절(3월 8일)은 여성들의 명절로 일컬어지는 날로서, 1925년에 '국제부인데이'이자 '국제무산부인데이'로 한반도에 상륙했습니다. 남한에서는 해방 후 좌익운동의 하나로 치부되며 사라졌다가 1985년에 '세계여성의 날'로 부활했고, 북한에서는 해방 후부터 오늘날까지 여성을 위한 명절로 쭈욱 기념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 창립 이후 여성의 해방이 완성됐다고 주장하는 북한에서는 여성의 권익과 해방보다 가정과 사회에 기여한 여성의 이야기가 주로 만들어졌습니다. 『로동신문』을 비롯한 북한의 언론매체가 꽃을 사가는 남성들의 모습을 보도하는 것도 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내에게 꽃다발을 선물하고, 아내 대신 남편이 아침밥을 짓는 풍습은 '고난의 행군' 이후 대도시 중심으로 형성됐습니다. 사실 고난의 행군 이전만 해도 북한에선 가부장적 질서가 팽배해 남성들이 부엌에 들어가는 일은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부엌을 여성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여성을 가정의 테두리로 한정한 모습은 여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해방과 투쟁에 기원을 둔 국제부녀절의 성격과 멀어 보이는 일 아니겠습니까?
질문 3: 그렇군요. 그런데 북한은 건국 초기 남녀평등권 법령도 순발력 있게 만들었다는데 그 상황에 대한 설명도 필요합니다.
안찬일: 그렇습니다. 북한 당국은 "1946년 7월 30일 남녀평등권법령 공포로 조선여성들은 극적인 운명전환을 맞이하여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았고 이 땅에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 마지않는 '여성들의 천국'이 펼쳐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토지개혁' 다음으로 나온 개혁조치이니 상당히 혁명적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초기 남녀평등권법령은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주고 문맹퇴치 운동의 앞장에 세워주는 등아닌게 아니라 극적인 사회전환을 가져오는 듯했습니다. 북한의 여성들이 북한식 의회인 인민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으니 진짜 남녀평등이 이루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북한의 남녀평등권은 ‘남녀로동평등권’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김일성의 6.25남침 전쟁으로 수많은 북한의 남성들이 전쟁터에 나가 전사하면서 후방의 노동력은 여성들이 몫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개인농이었던 영농이 농업협동화로 전환하면서 여성들의 중로동은 도를 넘어섰습니다. 바로 이때부터 생겨난 말이 여성들이 직접 밭을 가는 여성보잡이, 여성트랙터 운전수 등 남성들이 해야 할 일을 여성들도 똑같이 하는 남녀불평등 시대가 개막되었습니다.
질문 4: 현재 3만 4000명 탈북민들이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데 그 중 여성이 칠팔십프로라고 하는데요. 여기서도 여성들의 무거운 사회적 짐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안찬일: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면서 간들간들하던 북한의 사회주의는 완전히 허리가 부러졌습니다. 사실상 사회주의가 폭삭 주저앉은 것입니다. 식량배급소는 문을 닫고 '의식주'란 말은 '식의주'로 순서가 바뀌고 당장 입에 풀칠하는 일이 전쟁으로 뒤바뀌었습니다. 공장 기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남성들은 집에서 놀고먹는 강아지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어렵디어려운 생활전선은 바로 여성들의 어깨로 옮겨졌습니다. 하여 너도 나도 장사에 나서고 이동판매에 뛰어들었지만 장마당 경제가 그렇게 쉽게 세팅되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3만 4,000명 탈북민 중 여성의 비율이 훨씬 높은 것은 바로 여성들이 장사에 뛰어들면서 빚도 지고, 장사가 망하면서 결국 돈을 벌고자 압록강, 두만강을 건넜기 때문입니다.
중국 땅에서 누가 기다려 줍니까? 타국 땅은 또 인권의 사각지대였습니다. 인간 브로커들은 탈북해온 여성들을 마치 노예처럼 팔기도 했습니다. “나라 없는 민족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는 옛 속담도 있지만 북한의 꽃 같은 처녀들이 중국의 남성들에게 팔려 갈 때 그들은 누구를 원망했겠습니까. 중국 땅에서 비록 쌀밥을 세끼 배부르게 먹었지만 그들에게 인권은 없었습니다. 나라를 찾아주고 남녀평등권을 안겨주었다는 김일성 김정일과 노동당은 그 여성들의 운명을 구제할 아무런 힘도, 노력도 없었습니다.
질문 5: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군요. 앞으로 북한 여성들의 인권개선과 여권 향상에 대한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안찬일: 네 먼저 정치개혁과 경제개혁이 선행될 때 북한 여성들의 인권개선과 여권 신장이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북한 경제는 시장경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고난의 행군 뒤 장마당 경제 안착 과정에서 북한의 여성들은 참으로 많은 고통을 잘 이겨냈습니다. 오늘 그나마 북한 인민들의 생활이 유지되는 건 모두 여성들의 간고분투 덕분이라고 말해야 정확한 것입니다.
노동당은 적어도 경제에 대해서만은 여성들에게 시장경제권을 이양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 안착된 장마당 경제에서 여성 상인들을 기업인으로 키워주고 그들이 저변에서 시장경제가 뿌리내리도록 만들어 주면 식의주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체제개혁 없는 남녀평등권은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북한 개혁에서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준다면 얼마든지 북한에도 탈출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안찬일: 네 감사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MUSIC
지금까지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기자 이현기,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