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6.25 남침전쟁 72주년 “북한은 전쟁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진정으로 반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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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홍알벗 입니다. 올해로 한반도에서 북한의 남침에 의해 동족상잔의 6.25전쟁이 발발한 지 72주년이 됩니다. 지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은 아무런 선전포고도 없이 육해공군을 총동원한 불법 남침을 감행하여 한반도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전쟁은 무려 3년이나 계속되면서 민간인, 군인을 통털어 30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고 한반도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참혹한 전쟁은 북한에서는 '북침전쟁'으로 한국에서는 '남침전쟁'으로 서로 상반되게 불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근래 북한의 젊은이들 속에서 남침전쟁의 실체가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6.25 남침전쟁 72주년, 북한은 전쟁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진정으로 반성하라"라는 제목으로 한국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이신 안찬일 박사와 이야기 나눕니다.

MC : 안찬일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한 주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잘 지냈습니다.

MC: 지난 72년 동안 남북한 간에 누가 한반도 전쟁의 도발자인가를 놓고 기나긴 논쟁의 시간을 끌어왔는데요. 자, 이제 그 지루한 논쟁을 끝낼 때도 된 것 아닌가요? 안 박사님! 이전 소련의 자료공개로 북한이 남침전쟁의 도발자란 여러 증거가 나왔지요?

안찬일: 그렇습니다. 1991년 소련공산당이 해체되고 그 뒤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 를 맺으면서 많은 남침전쟁 자료들이 한국 학자들에게 넘어갔습니다. 또 <후루시쵸프 회고록>에서도 이미 김일성의 남침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김일성은 1949년 3 월 5일, 그러니까 북한 정권 수립 6개월 만에 모스크바로 스탈린을 찾아가 남조선해 방전쟁을 허가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중국 대륙의 공산화와 남조선 정부의 불안정을 들며 순식간에 한반도를 공산화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것입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북조선 군대가 남조선 군대에 비해 결정적인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일언지하로 거절했습니다. 스탈린은 미군이 아직도 한국에 주둔하고 있고 미국과 소련 사이에 38도선 분할에 대한 합의를 상기하며, 만약에 남조선이 먼저 공 격하면 그때 반격하라고 타일렀습니다.

MC: 그러니까 스탈린은 초기 김일성의 선제공격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웠군요?

안찬일: 네, 그러자 김일성은 다시 1950년 1월 17일 평양주재 스티코브 대사에게 전쟁을 3일 안에 끝낼 수 있는 이른바 '옹진작전'을 허락만 해주면 몇일 안에 서울을 점령할 수 있는 <전쟁안>울 만들어 모스크바로 보냈습니다. 이에 대한 스탈린의 회신 이 1950년 1월 30일 평양으로 왔는데 여기서 스탈린은 "김일성 수상의 불만은 이해 하나 북한의 지도자는 한국에 대해 치밀한 준비를 해야지 그렇게 함부로 모험을 해서 는 안 된다"고 타일렀습니다. 다시 김일성은 1950년 4월 직접 모스크바로 달려가 스 탈린을 만났습니다. 이때는 외무상인 박헌영도 함께 갔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김일 성 정권의 남침전쟁이 수락되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는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의 부 추김도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국은 이른바 '대만해방'을 미루고 북한을 도와주기 로 약속했다고 후에 중국 지도자들이 실토하였습니다. 마오쩌둥은 병력은 언제든 중 국이 보장할테니 전투기 등 군사무기와 장비는 소련이 대라고 스탈린에게 촉구하여 약속을 받아냈던 것입니다.

MC: 그런데 김일성의 남침전쟁 야욕에는 그의 개인적 욕망도 크게 작용했다고 하는데 그 내막은 어떤 것입니까?

안찬일: 사실 오늘날 북한에서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은 엄청나게 침소봉대되었 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은 김일성이 항일전쟁을 승리에로 이끌고 개선하였다는 것입니 다. 그러나 김일성은 항일유격대로는 활동했지만 1945년 8월 9일 소련군이 일본군에 게 선전포고한 이후 한반도 해방전쟁에는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스탈린은 블라디보스 톡 근교 브야츠크 밀영에 있는 극동군 88여단의 조선인 부대에 대해 일본군과의 싸움 에 혼란을 준다며 조선인들의 전쟁참가를 불허했던 것입니다. 다만 북한군의 초대 총 참모장이 된 강건과 지병학 등 몇몇 유능한 자들만 참전하게 허락하였고, 이에 대한 김일성의 불만은 대단했습니다. 결국 김일성은 8.15 해방 한 달 뒤인 1945년 9월 19일에야 소련군함 브가쵸브함을 타고 다른 항일빨치산 동료들인 오진우와 백학림, 박성철 등과 함께 몰래 원산항으로 귀국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에게는 한이 되었고 그래서 남침 전쟁을 일으켜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고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처럼 되려는 '영웅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MC: 이런 가운데 북한은 계속해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어서 안타까운데 말이죠. 현재 북한은 45개 이상의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하는 데 어느 정도 신뢰해야 할까요?

안찬일: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과 일본 등 국가별로 정보기관들의 북한의 핵무 기 개발에 대한 통계는 좀 차이가 있지만 수 십개 이상이라는 데는 대체로 합의가 이 루어져 있습니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핵무기는 전략핵무기와 전술핵무기로 양분 되는데 100kt 이상이면 전략핵무기, 100kt 이하일 경우 전술핵무기로 부르고 있습니 다. 북한이 아직 전략핵무기를 개발했다고 믿기는 어렵고, 적어도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들 전술핵무기는 충분히 만들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북한은 군대를 5군 체제로 개편했는데, 육, 해, 공군 외에 전략군과 특수작전군이 있습니다. 전략군이 바로 핵무 기를 보유하고 있는 부대입니다. 또 올해 들어와 벌써 수 십발의 '소나기 미사일' 발 사를 감행한 군이 바로 북한군 전략군입니다.

MC: 그런데 미국과 한국은 북한의 핵무기 사용에 대한 방어능력을 충분히 갖추 고 있다고 보는데, 실례로 사드 배치가 그것 아닙니까? 북한은 오판할 경우 자칫 북 한마저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찬일: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경제가 실패하여 인민들이 굶어죽는데 한 쪽에 핵 무기나 숨겨놓고 전쟁을 꿈꾼다면 그런 집단은 자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이 정 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이판사판 핵무기로 공멸의 길을 가자는 것 아닙니 까? 미국도 그렇고, 한국의 윤석열 정부는 결코 북한의 핵무장화를 지켜만 보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은 당장 6.25남침전쟁에 대해 사과하고 핵무기 개발을 멈춰야 합니다. 그러면 한국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겠다는데 왜 자멸의 길을 가겠다는 것인지 참 이 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전 소련이 핵무기가 없어 공산당이 자멸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역사 앞에 진실하지 못한 정권은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르고야 맙니다. 김정은 정권은 이 점을 하루라도 빨리 깨우치기 바랍니다. 한국이 세계 군사력 6위인 반면 북한은 15위 안에도 못 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MC : 네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안 박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안찬일: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지금까지 진행에 홍알벗이었습니다. 저희는 다음주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진행 홍알벗, 안찬일 / 에디터 이진서 / 웹담당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