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 진단'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요즘 북한 젊은이들에게는 하나의 작은 낙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중국 영화 <장진호>를 관람하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라고 안찬일 박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안 박사는 장진호는 중국 정부가 지금껏 만든 그 어떤 영화보다 많은 돈을 투자하여 만든 전쟁 영화 대작으로 물론 지난 1950년 11월 말에서 12월 초까지 약 보름 동안에 걸쳐 진행된 장진호 전투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은 나름대로 성과를 올린 건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많은 과장이 있다는 것 또한 역사의 진실이라고 말하고 따라서 그동안 항상 날조된 역사교육을 받으며 살아온 북한의 젊은이들은 외국영화 1편에 열광할 것이 아니라 우선 그 영화가 지닌 진실성부터 알아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해서 오늘 이 시간에는 "중국 영화 '장진호', 북한 청년들 올바른 역사 인식 갖고 관람해야!" 이런 제목으로 안찬일 박사와 이야기 나눕니다.
안찬일 박사님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잘 지냈습니다.
질문 1: 북한에서는 젊은이들이 한국 영화와 드라마 등 한류열풍을 비롯하여 외국영화와 노래에 상당이 열광한다는데, 마침 요즘 중국 영화 <장진호>가 개봉되어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특히 북한 젊은이들은 전쟁 영화를 최고로 좋아한다는데 맞는 말인가요?
안찬일: 그렇습니다. 북한에서 만든 영화들은 워낙 돈을 안 들여 만든 영화이다 보니 초라하기 짝이 없고, 따라서 북한 청년들은 외국 영화, 거기서도 전쟁 영화라면 무조건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 웅장한 스케일은 물론 진실성도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 중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장진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중국은 지난해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해 장진호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마치 미국의 카메론 감독이 수억 달러를 들여 <타이타닉호> 영화를 만들어 전 세계를 열광시켰던 것처럼 이 영화를 통해 큰 히트를 치려고 잡도리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항상 초라한 북한 영화만 관람해온 북한의 청년들이 얼마나 열광하면서 극장으로 모여들겠습니까.
질문 2: 그런데 이번 장진호 영화도 조금 과장되었다는 평가가 있는데 어떻습니까?
안찬일: 맞습니다. 물론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그야말로 예술영화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자신들의 전공에 집착하다 보니 마치 세계 최강 미국군을 물리쳤다는데 너무 몰두하고 있습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미 제10군단 예하 미 제1해병사단이 장진호 북쪽으로 진출하던 중공군 제9병단 예하 7개 사단과 충돌하여 2주간에 걸쳐 전개한 철수 작전 전투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장진호 전투는 동부전선의 미 제10군단 예하 미 제1해병사단이 서부전선 부대와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 장진호 북쪽으로 진출하던 중공군 제9병단 예하 7개 사단 규모가 포위망을 형성한 장진호 계곡을 벗어나기 위해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2주간에 걸쳐 전개한 철수 작전입니다.
중공군의 한반도 진입 목적과 병력 규모를 11월 초까지도 경시했던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 원수가 선제공격을 단행하기로 결심함에 따라 동부지역을 담당한 미 제10군단 알몬드(Edward M. Almond)소장은 국경선을 목표로 한 북진을 재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1월 1일 미 제10군단장은 국군 제1군단을 우측, 미 제7사단을 중앙, 미 제1해병사단을 좌측으로 하여 국경선으로 진격하는 공격 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이 무렵 중국군은 미 제10군단 정면에 제9병단을 투입하고 있었는데 제9병단은 예하에 제20군단과 제27군단, 제26군단을 두고 있었습니다.
질문 3: 장진호 전투는 결국 중국 인민지원군이 북한 지역에서 치룬 가장 큰 전투라고 보여지는데, 왜 중국은 자신들이 이긴 전투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는지요?
안찬일: 1950년 11월 27일 중공군이 유담리의 미 해병대를 공격하며 전투가 개시된 장진호 전투는 중공군의 대규모 개입으로 장진호 지역의 전황이 급변하자 미 제10군단장은 11월 30일 하갈우리에서 작전 회의를 열고 기존의 북진계획을 재검토하였습니다. 회의에서 알몬드 소장은 장진호 부근의 모든 부대를 함흥∼흥남의 작전기지로 이동한다는 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유담리에 대한 중공군의 공격에 미 제1해병사단의 제5연대와 제7연대가 각각 이를 격파하고 12월 4일 하갈우리에 진입함으로써 유담리 포위망 돌파작전은 일단락되었습니다. 한편 장진호 동쪽에서 고립된 미 제7사단은 구출이 지연되자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해 하갈우리로 이동하였습니다.
하갈우리에 대한 공격은 중공군 제58사단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는데, 중공군 제60사단은 이미 고토리까지 남하하여 하갈우리에 이르는 보급로를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 제1해병사단의 분전으로 12월 7일 고토리로 모든 병력을 집결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이어 진흥리를 통과한 미 제1해병사단은 12월 11일 함흥지역에 모두 진입함으로써 장진호 전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장진호 전투는 여러 측면에서 전선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즉 중공군은 장진호 부근 전투에서 전투 손실 뿐 아니라 비전투손실도 상당히 입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더 이상의 군사작전 수행이 불가능하여 중공군 제9병단 지휘부는 3개월에 걸쳐 부대를 재편성하기 위해 후방으로 철수하였습니다. 반면에 미 제1해병사단은 중공군의 강력한 포위망을 돌파하여 함흥지역으로 철수하는 데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공군 제9병단이 서부전선의 제13병단을 증원할 수 있는 역량을 소멸시킴으로써 서부지역 전선의 미 제8군이 위기를 모면하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질문 4: 아 그렇군요. 물론 미군은 장진호 전투에서 제2차 대전 이후 벌어진 전투에서 최고의 손실을 입은 것 또한 사실이지만 결코 중국 영화 장진호전투가 시사하는 것처럼 참패당한 건 아니군요. 그러니까 북한의 젊은이들이 일방적으로 열광하는 건 분명 잘못된 것 같습니다. 어떠신지요??
안찬일: 옳습니다. 장진호 전투 하나만 놓고 6.25 한국전쟁사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6.25 전쟁은 북한 정권이 일으킨 남침 전쟁입니다. 김일성의 남침 전쟁 도발이 없었다면 애당초 장진호에서 중국군과 미군이 전투를 벌일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만약 중국 인민지원군이 북한에 진주하지 않았다면 그때 대한민국은 북한 지역도 자유민주 국가로 통일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은 이 점에 대해 분명한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헐벗고 굶주리는 북한, 핵무기 개발에 전념하며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 결국 이 참담한 결과를 창출하고자 중국 인민지원군이 장진호에서 피 흘리며 싸웠나요? 정의는 지킬만한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는 누군가 말했습니다. 오늘 북한의 젊은이들은 바로 이 점을 인식하고 장진호 전투 영화를 관람해야 할 것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진주성을 점령한 것이 승리한 전쟁입니까? 그것은 침략행위에 다름 아니지 않나요? 단지 흥밋거리에 집착하다 보면 역사인식을 망각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언제든 제2, 제3의 장진호 전투가 일어나게 만들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안찬일: 네 감사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MUSIC
지금까지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기자 이현기;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