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절박한 삶(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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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아무리 먼 나라라도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데 유일하게 갈 수 없는 나라, 바로 북한입니다. 그래서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은 가깝고도 먼 나라죠.

방송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북한과 북한 사람들을 접하게 되지만 평범한 일반 사람들의 모습,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또 남한에 사는 탈북민들이 3만 5천 명이 넘고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고 알고는 있지만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아직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최근 남한에서 다섯 명의 탈북 여성들의 삶을 담은 책이 한 권 출판됐는데요. 저자들은 '수다'를 떨 듯 진솔하고 편안하게 전하고 싶었다는데 책 제목은 조금 무겁습니다. '절박한 삶'…

이 책을 만든 사람들, <여기는 서울>에서 만나봤습니다.

인서트1: 반갑습니다. 저는 서울 시립대학교 자유 융합대학부에서 글쓰기와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는 곽상인 교수라고 합니다. 전주람 선생님께서 인터뷰 자료를 갖고 오셨는데 그걸 제가 소설처럼 각색한 역할을 했습니다. / 저는 서울 시립대학교 교육 대학원, 심리상담 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 서울 가정 법원에서 심리 상담하고 이번에 책을 처음 썼습니다. 제가 사회과학자이고 글쓰는 능력은 많지 않지만 교수님 많이 도와줘서 좋은 책을 내게 됐습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북한에서 탈북해서 온 백장원 입니다. 지금은 남북 문화 통합 센터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습니다.

책은 전주람 작가가 인터뷰 대상인 5명의 탈북 여성들과 자연스럽게 얘기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정리됐는데요. 탈북 여성들이 전하는 사연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그려지고 책장은 어렵지 않게 술술 넘어갑니다.

하지만 '절박한 삶'의 시작은 연구 논문이었습니다. 심리학자인 전주람 작가는 2014년 탈북민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고 그 결과는 2016년 논문으로 학회지에 실렸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책으로 출판됐죠. 뒤늦게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은 이유는 뭘까요? 전주람 작가의 말입니다.

인서트2: 뭔가 생계형 연구자로 계속 뭔가 해야 했기에 우연히 북한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됐고 연구 결과를 내야 해서 탈북한 여성들 5분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고요. 2016년에 학회지에 개재를 하고 계속 연구를 하면서 이것이 학계에 머무는 글보다 좀 더 대중적으로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하게 돼서 계획을 전략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출판하게 됐습니다.

'생계형 연구자'라고 자신을 지칭한 전주람 작가는 북한과 탈북민이라는 연구 주제를 놓고 인터뷰하던 첫날을 책 속에서 진솔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인서트 3: (전주람) 상담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긴 했지만 인터뷰를 하는 사람으로 뭐를 물어봐야 하고 어떤 식으로 답을 끌어내야 될지에 대해서 굉장히 긴장이 많이 되더라고요. 생각보다..

인터뷰 대상자보다 더 긴장하고 뭘 물어봐야 할지 몰랐던 바로 그때를 시작으로 약 30명의 대상자를 깊게 만나고 난 뒤에 낸 결론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얘기는 '귀한 자료라는 것'. 이 귀한 이야기에 대한 책임감은 책 출판으로 귀결된 것이죠.

인서트4: (전주람) 만나보면서 외모는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그 안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부분은 다른 부분이 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고요. 우리는 정치, 경제에 대해선 많이 이해하지만 일상생활이나 깊이 있는 어떤 부분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겠구나, 그래서 일상생활이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 남한 사람들 그리고 북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절박한 삶'이라는 제목도 사연이 있습니다. 처음에 작가들이 원했던 제목은 북한 아지매들의 수다. 그러나 책에 등장하는 5명 여성의 생에 대한 의지를 상징하는 제목으로 낙찰됐습니다.

인서트 5: (전주람) 앞에서 박새하고 떠돌이 생활하는 절박한 저의 모습을 시작으로 이분들의 절박한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절박함으로 끝나지 않고 뭔가 어떤 희망이나 이분들이 갖고 있는 자원을 끌어서 활용해서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는 걸 보여드리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곽상인) 보통 연구자들이라고 하면, 특히 북한 연구자들이 쓴 책은 서가에 꽂혀있는 책으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들만의 연구로서 연구계 안에서 통용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대중적으로 접근하려면 제목 자체도 수다가 좋을 것 같았습니다. 절박하고 절실함이 생의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는 가장 상징적인 단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몇 차례에 걸쳐 수정해서 결정됐죠.

5명의 탈북 여성들의 이야기는 닮은 듯 다릅니다. 탈북과정에서 딸과 생이별을 한 뒤 일 년을 자리에서 못 일어난 사연도 있고 중국에서 북송된 뒤, 교화소에서 죽지 못해 살아난 사연도 있습니다.

두만강을 건너다 미끄러져 익사하기 직전에도 머리에 마른 오징어를 놓지 않았다는 대목에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합니다.

인서트6: (책 내용 중) 그때 두만강을 잠깐 넘다가 미끄러져서 딱 죽을 뻔 했죠. 옷은 머리 위에 이고, 오징어! 마른 오징어도 머리 위에 이고. 내가 마른 오징어를 좋아하거든요.

책 속에선 이야기를 하는 당사자도 이야기를 듣는 전주람 작가도 웃음을 터뜨립니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마른 오징어를 챙긴 이유… 백장원 선생이 설명해 주네요.

인서트7: (백장원) 북한에선 오징어가 귀해요. 산간 지대가 많잖아요. 바다 근처에만 있으니까 오징어가 또 엄청 비싸고. 그래서 제가 그 책을 보면서, 저도 똑같았거든요. 오징어 한 마리 먹자면 쌀하고 맞바꿔 먹어야 할 정도로 귀했거든요. 오징어가 자기한테 생겼다면 그걸 남한테 주기도 아깝고 팔기도 아까우니까 중국에 가서 나라도 먹고 하겠다고… 저는 충분히 이해되더라고요.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어코 마른 오징어를 챙겨야만 했던 건 어리석음이 아니라 타고난 생활력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인서트8: (책 내용 중) 오징어가 문제는 아니지. 옷 젖을까 팬티가 위로 오고.. 교회도 안다니면서 하나님 찾게 되고… 무사히 강을 건너와 구사일생으로 살았는데.. 그때 내가 마음 속에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죠. 한 마디로 말해서 부모, 자식 간의 사랑! 남편에 대한 사랑이 힘이 됐던 거에요.

이야기의 당사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강에서 살아나오게 했다고 말하고 곽상인 교수는 삶에 대한 의지를 읽었습니다.

인서트9: 그 강을 건넜을 때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 받을 수 있는 것이 오징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생사의 고비를 넘어가는 순간에서 어딘가에서 총이 날아올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내가 유일하게 비빌 언덕이 오징어였고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오징어였지 않나. 그래서 굉장히 삶에 대한 열정, 의지 이런 모든 것이 포함된 것이 상징적인 기호가 오징어가 아니었나 해석됩니다.

-Closing-

다섯 명의 탈북 여성들은 각자 다른 생을 살았지만 같은 사람의 얘기처럼 느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또 강하지만 부러지지 않는 유연함도 느껴집니다. 전 작가는 이것을 우리가 살아가는 필요한 자원, 다른 말로 내공이라고 표현하는데요.

탈북 여성들의 삶을 엮은 책 '절박한 삶',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