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 빛나는 마침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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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아무리 마음을 잡아도 정든 사람과 헤어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더 큰 꿈을 펼치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죠.

우리 모두 자라면서 정든 학교와 선생님 곁을 떠나는 경험을 하죠. 고등 중학교까지 적어도 3번은 거치지만 헤어짐이 익숙해지진 않습니다. 그런데 졸업식장에서 왜 웃으면서도 자꾸 눈물이 날까요.

탈북 청소년들이 다니는 여명학교의 졸업식장, 지난 시간에 이어 그 현장 <여기는 서울>에 담아봅니다.

[현장음]저는 3학년 2반 담임교사 이세영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3학년 2반 학생들아. 이제 학교를 떠날 시간이 되었어요. 끝까지 학교생활 잘한 학생들 모두 모두 고마워요. 우리 민아, 1년 동안 학급에서 반장 하느라 너무 고생 많았어요. 민아의 대학 합격 소식이 내가 대학 들어간 것처럼 느껴져서 너무 기뻤어요. 우리 소영이,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마음은 여리다는 걸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앞으로 훌륭한 간호사가 되기를 기도할게요. 우리 수연이, 20주년 행사에서 댄스 할 때, 스포츠 리그에서 야구할 때, 이어달리기 할 때, 우리 수연이의 날렵하고 멋진 모습을 잊지 못할 거예요.

졸업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는 담임 선생님의 음성 편지는 학생들의 울음 단추가 돼버렸습니다.

탈북민 자녀와 탈북 청소년들이 공부하는 여명학교는 일반 남한 학교에 비해 학생 수가 적은데요. 올해 졸업하는 고등학교과정 졸업생은 총 2개반에서 13명씩, 모두 26명의 학생입니다.

모든 선생님이 학교의 학생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담임 선생님이 각별합니다. 13명의 아이들 하나하나의 이름과 특징을 들려주니 잘 모르는 사람들도 졸업생들이 학창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지 절로 그려집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다들 웃다가 울기를 반복하는데요. 감동이 전해지는 그 순간, 잠시 들어보시죠.

[현장음]건우, 스포츠 리그에서 사람이 이렇게 잘 뛸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준 그 한 사람이에요. 졸업 후 군대 가고 취업하고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세현이, 약해 보이지만 운동할 때 영어 발표할 때 자신 있게 해내는 우리 세연이. 그 새로운 모습에 감동 받았어요. 은주야, 많이 아파서 학교에서 자주 볼 수 없었지만 늘 은주를 그리워했어요. 대학에 가서 멋진 패션 디자이너가 되길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빠오베이 향아, 애교스럽게 늘 나한테 빠오뻬이라고 해주는 말에 늘 마음이 따뜻했어요. 사랑을 먼저 표현해 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유성아, 자신의 끼를 자유롭게 표현하며 살아가는 우리 유성이. 앞으로 두려움 없이 잘 살 수 있을 거예요. 사랑하는 우리 반 3학년 2반 빠오뻬이. 졸업식 축하하고 정말 많이 축복합니다. 사랑해요.

졸업식장 뒤에서 또 밖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청년들이 여럿 있습니다. 울고 있는 선생님을 걱정하는 친구도 있고 교실 안에 있으면 울 것 같아서 나왔다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중 한 청년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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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의 졸업식 축하무대 /RFA PHOTO

[인터뷰-이광현]저는 2023년 졸업생이고 현재 동국대학교에서 철학이랑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과 복수 전공하고 있는 이광현입니다. 일반적으로 자기 삶이 바쁘고 하니까 학교를 찾아오고 선생님들을 찾아뵙는 게 굉장히 어려울 수도 있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특수한 환경에서 자라고 공부했잖아요. 대학교 (진학) 준비할 때 큰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시고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게 도와주신 선생님들이 계시는 보금자리 같은 곳이어서 다시 찾아뵙게 되었어요.

광현 씨는 졸업 후 오랜만에 찾아온 학교가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늘 힘이 되어주던 선생님들의 모습은 변함이 없고 졸업 가운을 입고 졸업식장에 앉아 있는 후배들의 모습은 2년 전 자신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인터뷰-이광현]저도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으로서 그 시기, 저희가 겪었던 고민들 그리고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만나게 된다는 설렘들. 학교에서 보낸 시간들에 대한 감사함… 그런 것들이 있어서인지 저희가 졸업식 할 때는 항상 학생들이 울고 선생님들도 울고 했었거든요. 오늘 비슷한 모습을 보면서 저희가 졸업할 때가 다시 한번 상기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너무 좋고요. 학교에 와서 이렇게 친구들을 만나고 선생님들 다시 만나는 게 너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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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 씨는 먼저 졸업한 선배로서 후배 졸업생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는데요.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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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반 담임교사 소감 발표 / RFA PHOTO

[인터뷰-이광현]일단 첫 번째, 기죽지 말라는 말을 항상 해주고 싶고요. 그리고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공부하는 거 좋아하고 본인의 학과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면 대학 생활이 그렇게 빡빡하고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대학교 생활이 두렵기도 하겠지만 설레는 일이 더 많고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얘기도 해주고 싶습니다. 이제 새 출발을 하기 때문에 친구들한테 훨씬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한 발자국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공부를 포기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한국 사회에 대한 적응이 두렵고 어려움도 겪었을 텐데 잘 이겨내 줘서 너무 감사하고 축하한다는 얘기도 해주고 싶습니다.

광현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졸업식은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여러 후원 기관과 재단에서 제공한 생활비 지원과 장학금 지원에 대한 시상식이 진행되는데요. 총 12명의 학생이 수상을 했습니다. 부상도 있습니다. 생활지원비로는 50만 원, 달러로 350 달러 정도가 지원되고 장학금으로는 1,400달러에서 최대 2,000달러까지 지원됩니다. 학생들의 새로운 출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입니다.

졸업생, 3학년 2반 김민아 학생이 전하는 이야기, 직접 들어보시죠.

[현장음-졸업생 김민아]저는 2022년 2월에 한국에 와서 여명 학교에 입학했는데 어느덧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저는 여명학교에 오기 전에 공부에 관심도 없고 잘하지도 못했던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명 학교에서 제 삶을 변화시켰고 꿈을 찾게 해 주고 저는 수능에도 도전하게 됐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공부를 이어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선생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격려를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생 멘토링 선생님들도 저에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학업에 자신감이 없던 저를 끝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쉽게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의 수많은 상처를 위로해 주신 상담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사랑과 지원 덕분에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그 사랑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졸업생들이 똑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한국의 교육을 따라가는 것이 벅찼지만 지지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포기하지 않고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됐다는 말이었는데요. 선생님들은 앞으로도 이들의 ‘안전지대’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노래로 전하는데요.

[현장음-선생님들 축하 무대]작은 연못에서 시작된 길. 바다로 바다로 갈 수 있음 좋겠네. 어쩌면 그 험한 길에 지칠지 몰라. 걸어도 걸어도 더딘 발걸음에. 너 가는 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말을 해줘. 숨기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도 언젠가 흰수염고래처럼 헤엄쳐. 두려움 없이 이 넓은 세상 살아 갈 수 있길. 그런 사람이길. 더 상처 받지마. 이젠 울지마. 웃어봐. 너 가는 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말을 해줘 숨기지마 넌 혼자가 아니야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노랫말이 졸업생들에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졸업생들을 위해 여명학교 선생님들이 준비한 노래를 전하며 인사드립니다. 빛나는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가는 모든 졸업생들을 응원하며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