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K-Pop 즉 한국의 대중가요, K-Food 한국의 음식, K-Beauty 한국의 미용 제품 등 한국의 대중문화와 관련된 단어 앞에는 대한민국의 영어 국가 이름 앞 글자 ‘K’가 붙곤 합니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K-문화는 북한에도 영향을 미치는데요. 탈북민들은 이런 경향은 최근의 일이 아니라 80년대부터 북한 주민에 전파됐다고 합니다. 북한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남한의 통일부는 한 달에 한번, 새로운 주제로 탈북 전문가와 함께 다양한 북한 얘기를 전하는 ‘북스토리’를 열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1일, 서울 청담동에서 열린 2024년 세 번째 ‘북스토리’ 행사에 다녀왔는데요, 이번 주제는 ‘K-문화의 힘’이었습니다. 그 현장, 지난 시간에 이어 <여기는 서울>에서 담아봅니다.
(현장음)지금부터 제 2부 토크 콘서트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오늘 정말 귀중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정은찬 통일교육원 교수님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큰 박수로~~
북스토리는 1부 강연과 2부 토크콘서트로 진행됩니다. 토크콘서트에는 탈북민 전문가가 함께하는데요. 오늘 ‘K문화의 힘’이라는 주제로 북한의 이야기를 전해줄 분은 정은찬 교수입니다.
정 교수는 2003년 한국에 와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요, 탈북민으로는 처음으로 2012년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원 교수로 임용됐습니다. 채용 과정이 공개 채용으로 이뤄졌기에 정 교수도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시험과 면접을 보고 통과해야 했는데요, 한 마디로 쉽지 않다는 얘기죠. 정 교수도 두 번의 낙방을 경험하고 세번째 도전에서 선발됐습니다.
특히 남북 경제 분야를 잘 아는 정 교수는 북한 경제, 사회, 문화의 실상을 들려주는데요. 경제와 K-문화가 어떻게 연관이 됐다는 걸까요? 그 이야기는 휴대폰 그러니까 손전화기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현장음-정은찬 교수)북한 주민들이 좋은 휴대폰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라든가 휴대폰에 대한 여러 가지 간절함은 한국과 유사하다고 볼 수가 있는데요. 북한 내에서는 휴대폰을 통해서 외부 세계를 알거나 어떤 정치적인 소통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에 있기 때문에 휴대폰이 한쪽으로는 소통의 창구이기도 하지만 또 한쪽으로는 통제를 받을 수 있는 하나의 요인도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이 통제 속에서도 손전화기를 통해서 모선(연결선)만 별도로 구입하면 USB에 탑재된 한국 드라마 같은 것들을 비공식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측면에서 비공식적으로 외부 정보를 접하고 남한 드라마를 나는 몇 편 봤다고 어깨에 힘 들어가게 자랑을 할 수 있는 하나의 기기가 되기도 합니다.
정 교수는 북한 손전화기가 타치폰을 포함해 4가지 유형이 있다고 설명 하는데요, 기능에 따라 가격이 비싸지고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도 높지만 한국과 북한의 손 전화기는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바로 통제의 문제인데요.
(현장음-정은찬 교수)문제는 휴대폰 사용에 대한 통제가 굉장히 많이 되기 때문에 국내(북한)에서만 가능하고 대부분 도청되고 자유로운 소통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 문화는 어떻게 북한으로 유입된 걸까요?
정 교수는 남북의 경계를 넘는 K-문화의 힘을 외부 정보에 대한 ‘열망’ 때문이라고 말하는데요, 자신의 20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답니다. 여러분도 함께 들어보시죠.
(현장음-정은찬 교수) K-문화가 처음에 조금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이 외부 정보에 대한 북한 주민들도 열망이 있기 때문에 통제가 계속해서 되어오는 속에서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은 더 급속하게 확산되고… 시대를 넘어서 이어져 왔던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니던 시기는 80년대 중후반이었고 그때는 남조선 노래라고 했어요. 한국 노래를 누가 몇 곡을, 통기타 치면서 들키지 않고 부르냐 하는 것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잘 나가는 대학생, 어깨에 힘 들어가는 대학생의 표준이었습니다. 그런데 들키면 큰일나요. 왜냐하면 퇴학당하거나 재래식 화장실을 6개월 동안 청소해야 되거든요.

처벌을 받아도 북한 청년들 사이에서 한국 문화는 더 확산됐다는데요. 90년대 초 소련이 붕괴되면서 유학생들이 북한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답니다. 외국 영화는 물론 한국 영상물까지 갖고 들어온 거죠. 이때까지만 해도 간부급 자녀들이나 유학파 사이에서만 한국 문화가 유통됐지만 90년대 후반부터 한국 문화는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도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장마당이 도입됐기 때문입니다.
(현장음-정은찬 교수)경제난 이후 2천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는 상설 시장이 도입되고 시장에서 암거래로 한국 드라마가 이제 불법 복제물로 CD에 탑재되어서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걸 일명 북한 주민들 속에서는 은어로 '아랫동네 알판'이라고 불렀고 최근에는 USB에 (한국 영상물을) 탑재하는데 이것도 누가 몇 기가의 USB를 가지고 있느냐, 이게 또 어깨에 힘 들어가는 표준이거든요. 대부분 4기가(GB) 정도되고 모선으로 연결해서 휴대전화로 보는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도 있고 내부적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것도 있고, K-문화의 힘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계속 확산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최근 입국한 탈북민은 실시간으로 한국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하는데요,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K-문화의 인기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정은찬 교수는 북한 정권의 통제가 심할수록 그 인기가 더 높아진다고 말합니다.
(현장음-정은찬 교수)원래 사람의 심리가 통제하면 더 궁금해지잖아요. 또 다른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징계받았다 하면 '저게 뭐길래 그러냐' 이렇게 궁금해집니다. 일단은 차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몰랐던 남한 사회가 이런 사회야?' 하고 그 차이를 느낄 수 있고 두 번째는 중독성이 엄청납니다. 그래서 북한의 단속하는 사회통제 기관에 종사하는 간부들도 절대로 중독되지 말아야 되는 두 가지 중 하나가 한국 드라마 보는 거예요. 두 번째가 중국 국경선을 넘어서 왔다 갔다 하면 사경제 활동하면서 밀수하는 겁니다. 이걸 북한에서는 '강타기 한다'고 그러거든요. 이게 중독되지 말아야 하는 두 가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드라마를 한 번은 보고, 일단은 그것을 모방해요.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보고 그다음에 모방하고, 모방하다 보면 동경하게 되고, 동경하다 보면 비교하게 되고, 비교하다 보면 북한 체제의 불공정한 시스템을 깨닫게 되고, 깨닫게 되면 남한하고 통일됐으면 좋겠다는 통일 의식이 고취되고… 이렇게 변화가 있는 거죠. 여러 가지 연예인 호칭으로부터 시작해서 오빠야, 자기야… 부르게 되는 것이고요. 요즘 김정은 위원장이 오빠 경기를 일으킨다는 거 아세요? 절대로 오빠라고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2023년 1월에 평양 문화어보호법이 나왔고요. 혈육이 아닌 남녀 간에 오빠라고 부르면 무조건 징계 받아요. 자기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그런데 가만가만 다 부릅니다.
평양문화어보호법은 북한 역대 최악의 법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김정은 특유의 문화보수주의 사상, 나아가 본인의 사고방식이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저항하지 않더라도 제거되어야 한다는 전체주의 통치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평양문화어보호법 이전에 2021년부터 청년교양보장법이, 2020년부터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사회통제 수단이 되었는데요. 2020년이면 코로나 비루스로 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가 봉쇄된 것과 마찬가지였던 때였습니다.
-Closing Music-
그런 시기에 북한 주민들을 문화적으로 통제하는 게 시급한 일이었을까요? 정 교수는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K-문화의 위력은 남북의 경계를 넘는 정도가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삶 깊숙이 자리 잡았다는 겁니다.
북한 경제와 K-문화, 처음엔 연관성이 없어 보였던 이 두 가지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행사장엔 20대 청년들도 꽤 많이 참석했는데요. 그들의 이야기는 다음 주에 전해드리겠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