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1980년 초부터 200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 그리고 20세기에 태어난 마지막 세대 Z세대를 더해 MZ세대라 부릅니다. 개인의 행복을 우선시하고 소유보다는 공유, 경험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입니다. 타치폰과 개인사회관계망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세대이죠.
이 MZ세대가 한국 사회의 세대 변화를 주도하면서 주목받고 있는데요. 한국의 MZ세대와 비슷한 시기에 성장한 ‘장마당 세대’도 마찬가집니다. 비교적 자유분방한 행동을 보이며 한국을 비롯해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데도 거리낌이 없으니까요.
한국의 MZ세대와 북한의 장마당 세대로 불리는 20-30대 청년들은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성향을 보이는데요. 이 청년들이 ‘북한인권 아젠다 발굴단’이라는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첫 만남으로 1박 2일을 함께 보냈는데요. 그 현장! <여기는 서울>에서 찾아갔습니다.
(현장음) 발굴단 소개하는 시간
이곳은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연수원입니다. 승용차를 이용해도 서울에서 1시간 이상 걸리는 곳인데요. 전날부터 내린 비가 멈추지 않아서 평소보다 이동시간이 조금 더 소요됐습니다. 게다가 이날은 5월 5일 어린이날과 주말이 이어진 황금연휴 기간이었는데요, 소중한 3일의 공휴일을 반납하고 궂은 날씨에도 산 속에 있는 연수원까지 온 이유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1박 2일간의 합숙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때문인데요. ‘북한인권 아젠다 발굴단’에 선발된 청년들과 그들을 인솔하는 관계자들이 함께합니다. 오늘이 공식적인 첫 만남이라고 하는데요. 어떤 자리일까요? 이번 행사를 주최한 통일아카데미 강신삼 대표의 설명입니다.
(강신삼 대표) 기존의 북한인권 운동이 국민들에게 비출 때 불편하고 무겁고 다가가기 쉬운 주제는 아니었어요. 이런 것들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새롭지만 불편하지 않고, 가볍지만 의미를 던져주는 아젠다를 발굴해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게 북한인권운동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북한인권 아젠다 발굴단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북한도 장마당 세대가 북한 사회 전체 인구 구성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80년생 이후를 기준으로 한다면 2025년이 되면 북한 인구의 전체의 50%가 장마당 세대들이 차지하거든요. 그래서 장마당 세대에 맞는 북한인권 아젠다를 발굴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정서적으로나 연령대가 비슷한 친구들이 고민한다면 보다 현실적인 북한인권 아젠다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북쪽에서 온 친구들, 한국에서 태어난 친구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외국 친구들을 모아놓고 이들이 주체가 돼서 새로운 ‘북한인권 아젠다’를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입니다.
‘아젠다’는 영어로 ‘의제’라는 뜻입니다. ‘북한인권 아젠다’란 북한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주요하게 논의를 할 만한 주제나 과제를 의미하는 거죠.

북한인권 아젠다 발굴단은 지난해 처음 결성됐고 올해가 2기인데요. 남북한 출신 청년들 13명씩 총 26명, 외국인 청년 6명을 합해 모두 32명입니다.
(현장음) 이번 2기는 10개 조로 나눠서 토론을 진행하고 강의를 듣고 함께 공부해 나갈 건데 조별로 한 분씩 멘토님들을 초빙했습니다. 대부분의 멘토님들이 북한에서 오신 탈북민이라 여러분들이 북한에 대해서 모르는 것, 궁금한 것이 있으면 뭐든 알려주실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얼마나 많이 묻느냐에 따라서 멘토들께 다양한 이야기들과 정보들을 얻을 수 있으니까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멘토는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조언해 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북한인권 아젠다 발굴단’ 활동에서 멘토는 청년들의 생각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지, 청년들이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정보가 사실인지 등을 알려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거죠.
(강신삼 대표) 멘토는 총 10분이고요. 멘토님들이 하는 역할은 3인 1조로 해서 구성된 1개씩의 조를 담당하는 겁니다. 북한에 대해 잘 아시는 분으로 선정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멘토단 10명 중 8명을 탈북민으로 모셨어요. 북한에 계실 때 간부 역할을 했던 분들 중 한국에서 북한 관련된 공부를 계속 하셔서 석사나 혹은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 그리고 현재 북한 인권단체에서 다양한 형태로 결합해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나머지 두 분도 한국 출신이기는 하지만 북한과 관련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일한 분들을 모셨습니다.
3명의 멘토는 이번 합숙도 참여했는데요. 1기부터 멘토 역할을 했다는 김형수 씨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한국에 정착한 지 올해로 14년 차, 생물공학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지만 ‘북한인권 아젠다 발굴단’ 청년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어떻게 해서든 만들고 있습니다.
(김형수) 여기에 참가하는 학생들 중 외국인들 봤잖아요? 미국인도 있었고 중국인도 있었는데 그런 학생들도 북한 인권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 남한 친구들. 또 북에서 온 친구들의 경우엔 북한에서 자기 부모들이 당하는 것을 직접 다 봤잖아요. 이 친구들 모두가 너무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당연히 함께해야죠. 우리(멘토)는 그렇게 품이 많이 들지 않아요. 그들(청년들)이 토의한 후 ‘우리가 이런 것을 하면 어떨까요’ 하고 물으면 좋아 보이면 좋아 보인다, 아니면 좀 다른 것을 생각해보자 하는 정도거든요. 이렇게 참여해서라도 북한 인권을 해결하려고 하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꼭 해야 되는 일처럼 생각되는 거죠. 그래서 인권 문제라고 하면 항상 관심을 두고 이렇게 참여합니다.
북한에 있을 땐 형수 씨도 인권에 대해 무지했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면서 당연히 주어지는 권리임에도 미처 알지 못했던 ‘인권’. 지금도 북한 주민들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에 인권이 무엇인지 어떻게서든 전해주고 싶다는데요. 14년 전 자신처럼 바깥세상에 대해 듣고 알게 되면 스스로 선택할 기회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형수 씨의 이야기, 좀 더 들어보시죠.
(김형수) 제가 라디오를 못 들었으면 아마 탈북하지 못했을 거예요. 북한 라디오는 외부 라디오를 못 듣게 납땜하기 때문에 북한방송밖에 못 들어요. 그런데 2003년도에 우연히 국경 지역에서, 그러니까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 지역에서는 중국하고 밀무역 거래가 하는데 그중에 들어온 것이 카세트식 라디오가 있어요. 금방 중국에서 넘어왔으니까 파장을 돌릴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외부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는데 하루 이틀 동안은 거짓말 같더라고요. 그런데 한 3-4일 지나서부터는 진짜 와 닿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들었을 겁니다. 빠지고 나니까 헤어 못 나오겠더라고요. 듣는 과정에서 한국에 대해서 잘 알게 됐고 북한이 얼마나 나쁜 제도인지 알게 됐고 북한이 인터넷을 개방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게 됐어요. 이제는 죽어도 결심한다! 밖으로 나가보자… 그 라디오가 나한테는 내 운명을 바꿔놓은 삶의 희망 등대였구나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Closing Music –
김형수 씨는 탈북을 권유하거나 조장하려는 게 절대 아니랍니다. 그저 거짓말 같았던 바깥 세상이 사실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 뿐이라는데요. 라디오가 자신의 운명을 바꿔 놓은 것처럼 말이죠.
북한인권 개선에 작게나마 힘을 보태려는 청년들과 멘토들의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