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가족 중심, 나보다는 우리가 먼저였던 한국 사회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점차 개인을 중요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로 다른 사람들의 삶은 관심 밖의 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뉴스로 전해지는 다른 나라의 소식에 대한 관심도 잠깐뿐! 그러나 예외적으로 2월1일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 대해서만큼은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에서는 온·오프라인을 통해 매일 미얀마 소식을 전하고 사회단체, 종교단체를 비롯해 대학가 등 각계각층에서는 미얀마 시민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고 있습니다. 탈북청년들, 탈북인권 단체들도 동참하고 있는데요. 지금의 미얀마 사태가 북한에도 전하는 의미가 적지 않기 때문이겠죠. <여기는 서울>에서 이 소식,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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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트1: (효과) 우리나라의 미래, 우리의 미래를 위해 좀 도와주십시요. 제발요~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제발 우리한테 큰 힘이 되어 주세요.
미얀마 양군의 한국대사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앳된 여성이 서툰 한국어로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 뒤로 수십 명의 학생들이 함께 하는데요. 한국대사관 앞에서뿐만이 아니라 각 나라의 대사관 앞에서, 또 각국에 거주하는 미얀마 청년들까지… 이들의 호소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서트2-1: (미얀마 유학생) 한국에 거주하는 미얀마인들이 군사구테타에 반대합니다!!
쿠데타 발발 이후 석 달, 지금까지 숨진 미얀마 시민은 700명이 넘습니다. 인터넷 SNS 등으로 전해지는 군부의 진압은 점점 잔인해집니다.
인서트2-2: (효과) 시위 현장+진압소리
한국 사람들에게 버마, 즉 미얀마는 1983년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1983년 10월, 전두환 전 대통령은 동남아 5개국 순방길에 올랐습니다. 이 순방의 첫 방문지는 미얀마였는데요. 이곳에서 사건이 터집니다.
사건 당일이었던 10월 9일, 전 대통령 일행은 미얀마의 독립운동가 아웅산의 묘소를 참배할 예정이었습니다. 대통령 차량의 늦은 도착에 현장에서 대기 중이던 대통령 수행원들은 2번째 예행 연습에 들어갑니다. 이때 나오는 애국가를 듣고 범인은 대통령 일행이 도착했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미리 설치했던 폭탄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현장에 있던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 등 한국의 각료와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쳤습니다.
미얀마 경찰이 현장에서 체포한 범인은 세 명! 모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적이었습니다. 자국의 독립 영웅인 아웅산 장군 묘역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킨 것에 격분한 미얀마 정부는 북한과 국교를 단절하고 대사관을 철수시켰습니다. 북한의 정권 승인도 취소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북한 당국은 정반대로 주민들에게 교양했습니다. RFA 탈북기자 김지은 씨의 말입니다.
인서트3: (북한도) 버마하면 랑군폭발사건으로 기억하죠. 버마의 랑군 폭발사건은 강연에서 들은 것 같아요. 주민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려졌는데요. 남조선이 북한을 세계적으로 테러국가로 만들기 위해서 이런 사건을 조작했다, 그래서 폭발이 일어났다… 북한에 (죄를) 덧씌운 것이라고 알고 있어요.
북한과 미얀마의 국교는 2007년에 복원됐습니다. 두 나라를 이어준 것은 무기 거래! 북한은 미얀마 군부에 지대공 미사일 등을 판매하고 땅굴 기술을 전수했습니다. 게다가 미얀마 군부의 핵개발을 도운 정황까지 포착됐습니다. 탈북민들은 이런 사실을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됐다고 하는데요. 최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며 자국민을 탄압하는 모습은 탈북민들에게 북한의 실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서트4: (무역일꾼 출신 탈북민 신용건) 첫째로는 저런 시위도 일어날 수 있구나 하는 부러움! 북한 실정과 비교해보면 ‘아! 저렇게 일어날 수 있는 것도 자유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자유, 그런 자유도 없는 국가가 북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암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부에 체포되고 총격을 당하면서도 민주화를 꿈꾸는 미얀마 사람들을 보며 한국 사람들은 광주를 연상합니다. 학생들도 미얀마를 보며 한국의 아픈 역사를 마음에 새기고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미얀마 사람들에게 연대를 표현합니다. 경상도 마산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입니다.
인서트5: (여고학생들) 예전에 5.18 민주항쟁에 민주주의를 위해서 애쓰셨던 분들이 많이 계셨기 때문에 저도 그 마음을 알아보고 싶었어요. 저희 학교로 시작해서 다른 사람들도 이 일을 좀 알게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좀 더 큰 배경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 나비효과 느낌으로 저희 작은 날갯짓이 큰바람을 일으킬 때까지 계속 말을 해 주면 언젠가는 분명 폭력이나 비폭력 이런 거에 대해서 사람들이 심각성을 인지하고…
한국에선 저마다의 방법으로 미얀마 국민을 지지하고 응원하는데요. 남북학생들이 함께 하는 연합체 ‘키메이커’ 회원들도 그 중 하나입니다. 최근 미얀마를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탈북학생 변지향 회장의 말입니다.
인서트6: (변지향) 저희 키메이커 동아리는 사회 변화와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에 관해서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활동을 하는 동아리예요. 그러다가 올해 미얀마 쿠데타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시민들이 민주화를 위해서 싸운다고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되고 저희가 이거를 하자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는 시민들을 위해 모금 캠페인을 하는 게 어떠냐 하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됐고요. 지금은 미얀마 쿠테타에 의해서 인권 침해와 억압이 자행되고 있는 시점이잖아요. 그래서 저희 키메이커 멤버들이 성금을 모아서 미얀마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를 찾아서 보내드리려고 캠페인을 하고 있고요. 참여율은 굉장히 좋은 것 같습니다.
키메이커 회원들은 미얀마를 돕자는 포스터를 한 장 만들어 인터넷을 이용해 가까운 지인들에게 전달하며 모금활동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작게 시작된 모금 운동은 회원들이 놀랄 정도로 호응이 큽니다. 기대 이상으로 함께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지향 씨는 자연스럽게 북한의 상황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인서트7: (변지향) 개인적으로 이제 시민들이 되게 용기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이제 본인들이 더 좋은 사회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이제 북한 주민들은 세계적인 정보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상황이어서 북한 시민들은 너무 봉쇄되어 있는 상황에서 살고 있잖아요. 국경 주변에서 사는 분들은 미디어를 통해서 조금 알 수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런데 아직까지는 시민들이 이런 걸 해도 되는지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 자체를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봉쇄된 사회에서 살다 보니까요.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에서 페이스북, 유튜브 같은 SNS의 역할이 큽니다. 미얀마 내부의 상황은 시민들의 SNS 계정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지고 외부에서도 SNS 를 통해 미얀마 사람들을 응원하고 다양한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평범하면서도 당연한 일들이 북한에서는 예외이기에 탈북학생들은 방법을 고민합니다. 인터넷 핸드폰이 있어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북한에 이런 소식들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죠.
인서트8: (변지향) 북한에서의 젊은 세대들은 usb나 cd 같은 거를 통해서 가끔 이제 남한 영화나 음악 같은 거를 들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가능하다면 이제 usb나 cd 를 북한에 보내서 그분들이 보고 알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losing-
미얀마의 청년들이 목숨 걸고 지키고 싶은 민주주의, 지금의 미얀마 사태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요. 북한에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렵게 민주화의 길을 향해 가는 미얀마의 이야기.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