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5월 4일, 남한의 코로나비루스 신규확진자는 3명으로 77일만에 최저 기록이었습니다.
신규확진자도 모두 해외에서 입국한 사람들로 한국 내 감염은 이틀 연속으로 발생하지 않았고요.
아직 완전히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남한 정부에서는 5월 6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학생들도 시간차를 두고 학년별로 등교할 예정인데요.
이제는 개개인과 사회 모두가 스스로 방역에 책임을 지는 방역 주체가 되야 하는 거죠.
일상과 방역의 조화가 성공할 수 있도록 천천히 시동을 거는 중입니다.
탈북민을 지원하고 교육하는 단체에서도 일상으로 돌아가려 준비하고 있는데요.
‘여기는 서울’에서 그들의 이야기, 담아봤습니다.
인서트1: (홍보영상) NAUH는 정기적으로 북한인권 캠페인을 하고 있고 현재(2019년)까지 약 450명의 탈북자 구출을 해 왔습니다. 남북한 청년들을 민주주의 활동가로 키우는 교육도 진행하고 있고요. 국 내외에서 활발한 증언 활동도 하고 있죠.
남북 출신 청년들이 함께 하는 단체 NAUH는
북한주민들의 인권개선을 위해 만든 단체로 2010년 4월, 첫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평범한 남북 청년들이 모여 10년동안 꾸준히 활동 중인데요.
올해는 코로나비루스 여파가 있습니다.
최시우 사무국장입니다.
인서트2: (최시우) 저희는 10년째 해왔던 거리캠페인을 못하고 있고 구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올 스톱입니다. 교육활동, 탈북 대학생이랑 일반 대학생을 교육하는 활동은 있어요. 보통 월에 1~2회씩 모여서 기본 교육도 하고 세미나도 진행하고 포럼도 진행했었고요. 올해는 3기가 새롭게 출범해서 2월부터 다시 활동하고 있고 14명 정도가 교육받고 있어요. 1,2회 교육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활동이 많았는데 올해는 거의 활동보다는 교육에 치중돼 있는 상황이죠.
해마다 4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거리로 나가 북한인권의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해왔는데요.
올해 처음,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회원들이 모일 수 없었고
또 거리에 나간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활동은 할 수 없었으니까요.
대신 소수가 모이는 교육 활동만 계속하고 있습니다.
인서트3: (최시우) 안 하려고 하다가 80% 이상의 친구들이 괜찮다고 해서 본인의 결정에 맡겼어요. 본인들의 열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민주주의를 배우고 북한을 변화하는데 앞장서겠다는 열정이 앞서서 그랬던 것 같고요. 지금까지 세번 정도 모였는데 아무 탈 없이 잘 진행됐습니다. 저희가 소독도 하고 마스크를 다 끼고 했지만 아무래도 친구들의 열의가 가장 크지 않나 생각됩니다.
민간 통일운동단체, ‘새조위’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을 줄여 ‘새조위’라고 하는데요.
탈북민 의료지원사업을 비롯해 남북주부모임, 탈북민 전문상담사 양성 등
다양한 탈북민 정착 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1988년 설립돼 올해로 32년을 맞는 ‘새조위’도 코로나는 피할 수 없었답니다.
신미녀 대표의 말입니다.
인서트4: (신미녀) 우리가 주로 하는 게 의료지원이잖아요. 부산하고 충남대 병원 같은 경우엔 철저한 관리 아래 오픈을 했었고 국립의료원과 서울의료원은 상담실 문을 한시적으로 닫았고요. 상담사들이 본부로 들어와서 전화상담을 했고 다른 것들은 거의 대면이잖아요. 상담도 나가서 해야 되고 교육도 모여서 해야 하니까 못했죠. 이제 5월부터는 시범적으로 조금씩 하려고 해요.
새조위에서는 지난 2005년부터 국립중앙의료원과 서울의료원 등
전국 4개 병원의 협조를 얻어 탈북민 의료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의료비의 80%까지 지원해주는 지원 센터는
아플 때면 탈북민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입니다.
하지만 코로나비루스 확산으로 한 때 운영을 중단했습니다.
지원센터가 입주한 공공 의료원이 코로나 의심 환자의 검사를 진행하고
코로나 감염증 환자도 입원하면서 운영 중단을 결정한 것인데요.
대신 전화 상담 센터는 최대한 운영해왔습니다.
인서트5: (신미녀) 저희한테 전화해서 언제부터 가도 되냐고 묻는 경우가 많았어요. 어른신들의 경우 참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비교적 젊은 분들은 미쳐버릴 것 같다는 얘기를 했어요. 집에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 앉아서 TV 보는 것도 힘들고 TV에서 계속 그런 것만 나오니까 굉장히 무섭고 두렵고 공포증에 시달린다, 어떤 분은 상상 코로나인 것 같다고… 그런 얘기까지 나왔어요. 굉장히 정서적으로 힘들어 했고요. 우리 탈북민 사회에서도 이런저런 일들이 너무 많았는데 그렇지만 저희도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전화 붙들고 한시간, 두시간 이야기하고 그렇게 전화로만 하고 못 했었죠.
코로나비루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겼는데요.
‘코로나비루스의 이름과 우울한 기분을 뜻하는 영어단어 ‘블루(blue)’를 합친 말입니다.
가능한 집에 머물며 사람들과의 교류가 거의 단절되면서 외로움이나 무력감을 느끼고
자신도 전염될지 모른다는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인데요.
‘코로나 블루’는 탈북민만의 문제가 아니고
코로나가 유행하는 거의 모든 국가의 시민들이 비슷한 증상을 호소합니다.
물론 개인마다 증상의 차이는 있습니다.
인서트6: (시민 인터뷰) 가슴이 답답하고 밤에 잠을 잘 못 자고 자다가도 깨고. 집에만 머물러야 하고 그러다 보니까 제가 느끼기에 우울증 같은. / 점점 갈수록 몸이 안 좋아지는 느낌이고 무기력해지고 하고 싶은 게 사라지는 것 같아요, 집에만 있으니까..
전문가들은 막연한 불안감을 갖기보다 일상생활을 규칙적으로 유지해야
정신도 건강해 질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인서트7: (전문가) 먹고 자고의 리듬을 유지해라, 심리적인 방역은 내 몸과 마음에 생리 리듬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부터 와요. 그것부터 하시라는 거예요. 두번째! 활동량을 유지해라. 집안에만 있는 시간이 길지만 집안에서도 최소한 움직이시고 하루에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는 마스크 쓰고 나와서 신체운동량을 유지하는.. 생체리듬을 유지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되거든요.
탈북민들의 사정은 잘 알고 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지켜야 빨리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기에
새조위의 활동 역시 잠시 멈춤을 선택했는데요.
이런 노력으로 남한 사회에서 코로나비루스의 유행은 안정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새조위도 4월 말부터 조심스럽게 활동을 재개하고 있습니다.
인서트8: (신미녀) 저희도 이제 대면을 천천히 하고 있어요. 그것도 다수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세 명씩! 또 철두철미하게 소독도 해야죠. 마스크도 하고 이렇게 하면서 6월달부터 정상적으로 (활동)하려고 계획을 잡고 있어요.
잠정 중단했던 탈북민 의료지원센터 상담실 운영은 5월 말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아직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자리는 조심스럽기에
우선은 소수 인원으로 제한할 예정인데요.
5월부터 야심차게 시작하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인서트9: (신미녀) 남북 통합문화센터라고 마곡동에 생겼어요. 거기에 여러가지 문화프로그램이 많은데 새조위에서 ‘남북 생애 나눔’이라는 프로그램을 맡았는데요.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세 명씩 6명이서 그냥 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겁니다. 자기 생을 나누면서 스스로 삶을 재정리 할 수 있고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화에 대한 이해, 사람에 대한 이해, 또 자기정리! 예를 들어서 가장 기억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추억, 내가 친한 친구에 대한 추억… 이런걸 계속 얘기하다 보면 그 얘기 과정에 그 시대의 생활상, 문화가 나오잖아요. 그것을 상호간에 알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 보자는 프로그램입니다.
대화를 통해 남북 사람들이 서로의 인생을 나눠보는 자리인데요.
코로나로 인해 잠시 멈췄다가 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인서트10: (신미녀) 얘기하는데 눈빛도 봐야하고 표정도 봐야 하고 그 사람의 얘기도 잘 들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다수가 하는 것은 무리죠. 4명씩 해서 8명이 하기로 했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한 명씩 줄여서 6명이 하게 되죠. 뜻이 좋으니까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일 해야죠.
-Closing-
코로나비루스로 어쩔 수 없이 잠시 활동을 멈췄던 탈북민 지원단체들.
5월이 되면서 서서히 다시 뛸 준비 중입니다.
탈북민들도 잃어버렸던 일상을 되찾을 수 있겠죠.
그리고 그들의 일상 속으로 <여기는 서울>도 곧 찾아가겠습니다.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