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남한 정부는 5월 6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했습니다.
전염병 확산에 대한 우려로 문을 닫았던 시설들은 하나, 둘 문을 열었는데요.
그래도 여전히 건물과 상점 입구에선 한 사람씩 체온을 재고요.
인서트1-1: 열 한번 잴게요~
서로 일정 간격을 유지하도록 당부합니다.
인서트1-2: 여기 조금만 떨어져서 줄 서 주세요. 50cm 정도. / 여기 하얀 점에 서 주시고요, 간격 맞춰 서 주세요~
예전보다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많지만
두 달 만에야 가능했던 일상이기에 기꺼이 감수합니다.
인서트2: (시민) 집에서 많은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바뀌게 되면서 못했던 문화생활을 하게 돼서 좀 나아진 것 같아서 / 심적으로 조금 더 여유가 생긴 것 같고요.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지만 음식점이나 공원에 사람이 부쩍 많아진 것 같습니다. / 그동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집에서 답답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날씨도 좋고 가족들이랑 나와서 행복한 시간 보내니까 정말 좋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바뀌었지만
개인들이 지켜야할 방역 수칙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프면 3-4일은 집에 머물고 사람과 사람 간의 간격은 두 팔 간격,
30초 이상 손을 씻고 기침할 때 옷소매로 가리기,
매일 2번 이상의 환기 같은 방역 수칙도 그대로 유지됩니다.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개개인이 수칙을 잘 지켜야 하는데요.
아직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되겠지만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남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탈북민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제 막 일터로 회귀한 탈북민들, <여기는 서울>에서 만나봅니다.
인서트3: (현장음) 커피 나왔습니다.
이곳은 천안지역에 있는 한 커피집, 카페인데요.
남쪽의 흔한 커피 집과는 다른 점이 많습니다.
운영 하는 방법이 다르고 일하는 사람도 조금 특별하니까요.
인서트4: 일단 탈북민들을 위한 직업창출 공간이기도 하고요. 여기서 일을 하시려면 탈북민이셔야 하고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다음에 실무교육을 받은 다음에 그것을 이수한 분들만 여기서 일을 하실 수가 있어요.
탈북민들의 정착을 돕는 남북하나재단의 후원으로 문을 열게 된 커피 전문점 ‘낭만 카페’ 인데요.
2017년 1월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 역시 코로나 비루스의 유행과 함께 문을 닫았다가 2달 만에 영업을 재개했습니다.
다행히 매출에 크게 영향을 받는 곳은 아니라고 하네요.
인서트5: 낭만카페에선 세 분이 근무 중인데 두 분이 탈북민이세요. 여기 오셔서 이 사업에 관련돼서 자격증을 취득하셨고 여기서 배우신 거예요. 수익은 내야 하지만 시도 보조금이 있고 남북하나재단에서 주는 보조금으로 운영하다보니 매출에 영향이 있지는 않아요.
천안지역 자활자립센터 임미영 팀장의 말이었습니다.
탈북민들이 남한에 오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정착 지원기관에서 다양한 직업교육을 하는데요.
남북하나재단과 각 지자체에서는 탈북민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듭니다.
그 일을 담당하는 곳이 바로 자활자립센터입니다.
업종은 각 단체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하는데요.
재봉 공장, 반찬 가게, 빵집, 커피를 파는 찻집 등 사업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그 중 커피를 파는 찻집, 카페의 인기가 가장 높은데요.
덕분에 탈북민들은 바리스타 같은 낯선 직업을 처음 접하게 됩니다.
2013년에 탈북한 이영자 씨 입니다.
인서트6: (이영자) 저는 한국에 와서 바리스타라고 들어봤을 때 아주 신기하고 하고 싶고 그랬어요. 그런데 제가 나이도 있고 지식이 없으니까 엄두를 못 냈어요. 그런데 지인의 소개로 이런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좋은 기회여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어렵게 생각했는데 정작 실습해보고 배워보니까 아주 재미있고 이걸 정말 해야 되겠다는 신심이 더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무조건 여기에서 잘 배워서 앞으로 창업도 이걸로 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북쪽에서 듣도 보도 못한 이 직업이 쉬울 리가 없습니다.
서울 강북 지역에서 바리스타 과정을 공부 중인 김경희 씨의 말입니다.
인서트7: (김경희) 북한은 커피 문화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커피 원산지라든지 커피가 나오게 된 경위, 모든 이런 거에 대해서 이론을 배우기가 더 힘들었어요. 실기는 그런대로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배워도 외래어가 많고 종류가 다양하고 커피마다 원산지가 다 다르고 하니까 거기에서 어려움이 컸거든요. 우리에게는 너무 생소하지만 바리스타 학원도 교육비를 지원해줘서 우리가 배우게끔 국가에서 지원해줘서 도와줬으니까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겠죠. 바리스타가 생소하지만 학원도 다니고 지금 이렇게 경험을 쌓고 있는 중이거든요.
빠른 손놀림으로 커피를 만들어내는 심금화 씨도 탈북민입니다.
‘낭만 카페’가 문을 열 때부터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데요.
처음엔 한참 거리가 느껴졌던 ‘커피’가 이젠 인생이 됐습니다.
인서트8: (심금화) 저희 새터민들은 북한에서 이런걸 접해보지 못하잖아요. 커피라는 것이 새롭긴 하는데 우리가 이런 걸 하고 싶어도 하늘만 높고 땅은 없는 것처럼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그런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사실은 커피라는 걸 모르니까 ‘저게 내가 가능할까?’ 하고 보통 생각하거든요.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사업) 취지가 나오다보니까 무작정 나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뛰어 들었어요. 그런데 천안 자활에서 커피숍을 낸다는 거에요. ‘어! 우리도 할 수 있네!’ 무작정 뛰어 들었어요. 할 수 있으니까. 저는 또 그래요. 새로운 것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바리스타라는 직업에 대해 잘 몰랐어도, 커피라는 게 뭔지 몰랐어도
금화 씨가 이 일을 무작정 시작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사람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서트9: (심금화) 바리스타라면 사람들과 친근감을 느낀다고 생각해요. 제가 요양보호사도 해 봤는데요. 요양보호사도 사람들과 많이 접촉을 하지만 다양하지는 못해요. 환자 한 명을 간호하면서 병원에서 정해진 사람들만 계속 본단 말이에요. 그런데 바리스타는 범위가 넓거든요. 외국인들도 만나고 한국 사람들과 많이 친근하고 다가갈 수 있고 더 배울 수 있는 직업이 바리스타인거에요.
외국어로 된 낯선 커피와 영어로 된 수많은 커피 음료의 이름이
바리스타라는 직업의 가장 높은 장애물입니다.
그렇지만 커피를 좋아하고 이 일을 즐기면서 장애물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할 수 있겠습니다.
인서트10: (심금화) 하지만 자격증을 취득하는 게 몹시 힘든 일인줄 알았는데 하다보니까 나도 할 수 있는 거에요. 왜냐하면 처음부터 다 알 수 없어요. 한국 사람들도 처음부터 다 아는 건 없어요. 저희들 역시 같고. 대담하게 앞 길 안 재고 자격증에 도전해서.. 꼬부랑 글도 많고 사실은 영어도 몰라요. 선생님보고 한글로 번역을 해서 써주세요... 하면서 배우긴 했어요. 하다 보니까 재밌더라고요.
바리스타 자격증을 한번에 취득한 금화 씨에게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어려움을 이겨낸 금화 씨의 비법은.. 솔직함이었습니다.
인서트11: (심금화) 손님들이 보통 이렇게 주문하거든요. 핫으로 주세요, 아이스로 주세요.. 이렇게 주문한단 말이에요. 핫하고 아이스하고 생소해요. 부끄럽다기 보다 내가 모르는 것은 배워가야 한다는 취지에서 ‘네? 핫이 뭐에요?’하고 내가 손님들한테 물어봤어요. 내가 모르니까 어디서 왔냐고 묻더라고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니까 북한에서 왔다고 답했죠. 그러니까 가르쳐 주더라고요. 따뜻한 거를 핫이라하고 아이스는 차가운 거라고요. 손님들한테 배우면서 제가 하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손님들과 대화도 잘 되고 내가 모르는 것을 배워가니까 친근감도 더 느껴지고 좋더라고요.
-Closing-
어디서 왔냐는 이 질문이 탈북민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고 하는데요.
금화 씨는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남한 사람들에게 솔직하고 대담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라고 말이죠.
모르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지 않아도 되고 뭐든지 자꾸 물어볼 수 있기 때문에
남한 토박이들과 더 쉽게 가까워 질 수 있다고 말하는 금화 씨인데요.
그 작은 생각의 차이가 금화 씨의 오늘을 더 빛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코로나로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요.
금화 씨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말하네요.
심금화 씨가 전하는 희망 이야기, 다음 시간에 전해드릴게요.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