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일하며 자녀를 키우는 맞벌이 가정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절반 가량이 코로나비루스 여파로 심한 정신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계속된 개학 연기로 아이들은 집에 있고
코로나비루스 확산방지 차원에서 자택 근무를 하고...
감염예방을 위해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을 가급적 줄이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거죠.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지금, 남한 사회는 점점 활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탈북민들 역시 일상을 회복 중인데요.
지난 주에 이어 일터로 돌아온 탈북민들, <여기는 서울>에서 만나봅니다.
인서트1: (현장음) 커피 나왔습니다. / 7천원이고요~ / 주문하신 라떼 두잔 나왔습니다..
탈북 여성 김명화 씨와 심금화 씨가 바리스타로 일하는 커피전문점에 활기가 넘칩니다.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낯설었던 두 사람.
4년간의 경력이 쌓이면서 이제 전문가가 됐습니다.
두 사람이 바리스타로 자리잡기까지
탈북민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자활사업단의 역할이 컸는데요.
자활사업단은 남한 전역을 합쳐 총 9곳에서 운영 중입니다.
매년 공개모집을 통해 자활사업장의 사업을 선정하고
남북하나재단의 후원을 받아 사업장 운영을 돕습니다.
인서트2: (하나재단 자립지원부 담당자)북한이탈주민이 입국 초기에 겪는 여러가지 애로사항을 지원하는 것을 돕는 초기정착부터 경제적인 자립 자활에 이르기까지 저희들이 모든 것을 돕고 있습니다.
자활사업장은 반찬가게부터 재봉 공장 등 그 종목이 다양한데요.
그 중에서도 커피전문점이 인기가 많습니다.
인서트3: (하나재단 자립지원부 담당자) 안정적으로 일정기간동안 기술을 배우면서 자립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업입니다. 한 2~3년동안 안정적으로 기술을 익힌 탈북자들은 창업이나 커피숍 같은 곳에 취업을 해서 경제적 자립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탈북민들이 운영하는 자활사업장 커피전문점은 서울, 인천, 부산 등 여러 곳에 있는데요.
명화 씨와 금화 씨의 커피 전문점은 충청남도 천안에 문을 열었습니다.
충남지역에선 탈북민 바리스타들이 운영하는 유일한 커피 전문점이라고 하는데요.
집 가까이에 있는 커피집을 두고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다고 합니다.
인서트4: (김명화)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마음과 뜻이 함께 여서 너무 좋은 것 같고 / (심금화) 제가 만든 커피를 손님들이 맛있게 드실 때 그게 제일 좋더라고요.
하지만 코로나비루스는 이곳도 피해가지 않았습니다.
인서트5: (심금화) 천안도 힘들었어요. 천안(지역) 자활이라는 게 사회적 기업이잖아요. 사회적 기업이니까 시청에서 문을 닫아라 하면 닫아야 돼요.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없이 닫았어요. 닫았는데 단골손님들이 왜 문을 닫느냐고, 하면 안되느냐고.. 우리는 죄송합니다 하죠.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저희들이 문을 열 테니까 그때 방문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웃으면서 말하죠. 그 사람들이 문을 열자마자 꼭 들러 줘요.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개인이 운영하는 커피 집은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영업을 할 수 있었지만
금화 씨가 일하는 곳은 국가에서 자금을 지원받는 자활사업단에 소속된 사업장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내내 꼬박 두 달 동안 카페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두 사람, 무엇보다… 노임이 걱정이었을텐데요.
인서트6: (심금화) 월급은 줬어요. 우리가 놀고 싶어서 논 게 아니고 위에서 문을 닫아라 (했으니까요.) 한참 코로나가 발생할 때니까 사무실 직원들은 근무하고 카페는, 사업단은 다 문을 닫았어요. 어쩔 수 없어요. 다른 사업단과 달라서, 우리는 특히 사람들과 계속 대면을 해야하는 직업이다보니까 어쩔 수 없어요. 문은 닫았지만 우리는 수시로 나오면서 매장 안을 소독을 하면서 그렇게 지냈죠. 그래서 급여는 받았어요.
처음엔 잠깐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 좋았는데 그것도 잠시…
카페 문을 닫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이 그리웠다고 합니다.
인서트7: (심금화) 우리한테 돈도 중요하지만 손님들을 문 앞에서 보내는 것이 속상하더라고요. 왜? 우리를 믿고 우리 카페를 찾아 주셨는데 돈이 다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파는 커피는 2천원 밖에 안해요. 테이크아웃을 하면 1,800원이에요. 돈이 문제가 아니거든요. 매장을 찾아주는 손님들한테 미안하더라고요. (다시) 문을 여니까 손님들이 왜 문을 닫았었냐고, 왔는데 문을 닫아서 섭섭했다고 그러는데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수익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익에 따라 자신의 수입이 달라지니까요.
하지만 자활사업단의 경우 수익보다는 자립이 먼저입니다.
정부의 지원금으로 탈북민들에게 안정적인 급여를 제공하고
이 기간 동안에 탈북민들이 기술을 배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사업의 취지입니다.
그래서 탈북민 여럿이 함께 일하는 사업장도 있는데요.
서울 시흥에서 아기용품이나 인형 등 봉제 작업을 하는 자활사업장이 그 중 한곳입니다.
강유진 대표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인서트8: (강유진) 여기는 남북하나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자활사업장 이예요. 여기서 저희 탈북민들이 봉제 기술 습득 훈련을 해서 취업도 하고 창업도 할 수 있는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 자활 사업장입니다. 어르신들도 있고 4-50대, 그러니까 취업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 있잖아요. 자격증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취업이 불가능한 애기 엄마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거예요.
강유진 대표는 2006년에 탈북해 2008년에 남한 땅을 밟았는데요.
탈북 후 중국에서 지낸 2년 동안 봉제 일을 배웠던 경험을 살려 사업단을 꾸렸습니다.
인서트9: (강유진) 이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랑 노하우를 가지고 우리 북한이탈주민, 탈북여성들과 함께 하자라는 마음에서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더니 남북하나재단에서 보고 검토한 결과 강 대표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오라고 해서 발표했어요. 탈북 여성들은 진짜 섬세 하거든요. 그래서 그 적성을 살리는 방법은 봉제 기술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봉제를 하게 됐어요.
시흥 자활사업장에서는 다양한 제품을 만들면서 꾸준히 수익을 올렸습니다.
남북하나재단의 지 -12원금 외에 이익 창출을 하면서
더 많은 탈북민들의 일자리를 만들었고 봉제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기본 노임에 이익금에서 나오는 추가 급여도 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비루스의 여파를 톡톡히 받았는데요.
하청을 주던 회사가 줄었고 문을 닫는 곳도 생기면서 정부 지원금 외에 급여를 만들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유진 씨는 몇몇 직원들에게 공장에 그만 나오라고 해야하는 상황을 맞게 됐습니다.
그만둔 직원들의 생계비 걱정에 막막했지만 최근에 숨통이 트이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로 정부의 재난기본소득 지원입니다.
인서트10: (강유진) 수급비로 유지하고 살고 이번에 100만원씩 줬잖아요. 코로나 비용으로. 그거 다 탔다고 해요. 코로나 때문에 직격탄을 맞았고 힘들어요. / (리포터) 희망이 없는 것 같아요? / (강유진) 희망은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 이렇게 살라는 법 있나요? 그래서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어요. 다들 강대표는 잘 될거야 옆에서 그렇게 해요.
-Closing-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지금, 모두 좋은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돌아갈 일자리가 없어졌고 누군가는 노임이 줄었고
누군가는 다시 사업체를 일으켜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탈북민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그들의 말처럼
완전한 일상으로의 회복을 희망하겠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