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을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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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말을 주고 받습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때로는 세 치의 혀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죠.

불교에서는 말로 짓는 죄, 구업을 경고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꺼내서 상대방에게 보여줄 수 없다면

말은 남에게 나를 전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지난 5월 13일, 서울 마곡동에

지역주민과 탈북민이 소통하는 복합문화공간 ‘남북통합문화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남북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도 마련됐는데요.

오늘 <여기는 서울>에서 소개합니다.

인서트1: (이종주-통일부 인도협력국장) 문화를 매개로 탈북민과 지역주민들이 만나는 공간으로 기획됐습니다. 탈북민과 지역 주민들이 직접 만날 수 있는 생애 나눔 대화 라든지 남북통합문화포럼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기획됩니다.

‘남북 생애 나눔 대화’는 남북 사람들이 모여 일상 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인데요.

말하자면 공식적인 ‘수다’의 장입니다.

먼저 이번 프로그램을 담당한 민간 통일운동단체,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의 신미녀 대표의 말입니다.

인서트2: (신미녀) 새조위에서 ‘남북 생애 나눔’이라는 프로그램을 맡았는데요.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세 명씩 6명이서 그냥 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겁니다. 자기 생을 나누면서 스스로 삶을 재정리 할 수 있고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화에 대한 이해, 사람에 대한 이해, 또 자기 정리! 예를 들어서 가장 기억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추억, 내가 친한 친구에 대한 추억… 이런걸 계속 얘기하다 보면 그 얘기 과정에 그 시대의 생활상, 문화가 나오잖아요. 그것을 상호간에 알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 보자는 프로그램입니다.

대화를 통해 남북 사람들이 서로의 인생을 나눠보는 자리…

취지는 좋지만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쉽지 않겠죠?

그래서 몇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인서트3: (신미녀) 개인의 신상보호 때문에 절대 이름을 쓰지 않아요. 전부다 별명을 쓰도록 돼있고요. 거기서 얘기들은 내용은 비밀로 하기 때문에 누구나 와서 편하게 일상을 이야기 하는데 청년팀, 성인팀, 노인팀 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눴어요. 일일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해요. 아침 10시에 시작해서 저녁 5시까지 하게 되죠.

한국 정착 16년차 됐다는 김미란 씨는 40대 후반으로 성인 팀에 참여했습니다.

고등학생부터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까지 네 아이를 키우는 다둥이 엄마로 살면서

속 터놓고 이야기 나눌 친구들과의 만남이 쉽지 않았는데

우연히 알게 된 이번 프로그램에 호기심으로 참여하게 됐던 겁니다.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좋은 시간이었다고 하네요.

인서트4: (김미란)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게 돼서 좋았고 재미있고 되게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북한학을 전공한다는 교수님이 한 분 계셨어요. 우리가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면 한국 분들이 잘 이해를 못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중간에서 교수님이 번역을 해준다고 해야 하나? 북한 말을 번역해주는 것처럼 이해를 시키니까 남한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어서 더 소통이 잘 됐어요.

남북은 분명 같은 말을 쓰지만 표현 방법이나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고

같은 말이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죠.

그래서 예상치 않게 통역자도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모여 앉은 6명이 하루 7시간을 함께 이야기를 하며 보냈는데요.

말문이 터지면 7시간이 어디 긴 시간인가요?

대화의 시작은 어려웠으나 그 끝에선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습니다.

인서트5: (김미란) 탈북자들끼리는 처음 만났어도 하나원 몇 기에요~ 이런 식으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트거든요. 탈북자들끼리는 처음이어도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데 한국분들의 경우엔 완전히 초면이기 때문에 처음엔 좀 그랬어요. 그런데 휴식시간없이 대화가 이어져 가는 걸 보니까 재미있게 얘기들을 많이 나눴던 같아요. 내가 이렇게 말이 많았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북한에서 있었던 얘기들도 하고 할 얘기가 은근히 많더라고요.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는 함께 웃고

고향 얘기, 남아있는 가족 이야기를 할 때엔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요.

미란 씨의 경우 이번 남북 생애 나눔 프로그램을 통해

그동안 이해하기 힘들었던 남한 문화를 이해하게 됐고

남북의 표현방법이 다르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인서트6: (김미란) 서로 대화가 오가면서 ‘아~ 그런 거였어요?’ 이렇게 이해가 되는 거죠. 특히나 제사 부분은 내 대 까지만 제사를 지내고 다음 후대에는 제사하는 것을 별로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한국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래도 조상을 모시는 건데 대를 이어 가야 하는 부분인데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 나는 이해가 잘 안 됐거든요. 그런데 완전히 끊는 것이 아니라 방식이, 시대가 바뀌면 모든 문화가 바뀌잖아요? 그것처럼 제사 문화도 간단하게 치르고 간다는 이 얘기인거지.. 그렇게 대화가 오고 가니까 이해를 하는 거죠.

프로그램 취지가 좋아서 참여했다는63살 강명화 씨.

명화 씨는 모두 고향도 다른데, 심지어 남과 북에서 따로 자랐는데

어떻게 어린 시절은 그렇게 똑같을 수 있냐고 저에게 되묻습니다.

남학생과 손만 잡아도 임신이 되는 줄 알았다는 학창 시절 얘기에

6명 모두가 ‘나도 그랬어요’ 하며 어린 소녀처럼 웃음이 터졌다고 하는데요.

때로는 서로 알아듣지 못해서 한참을 설명하기도 했지만

결국, 서로에게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는 신나는 경험이었답니다.

인서트7: (강명화) 우리는 원족이라고 하는데 여기(남한)에서는 소통, 산보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하는 걸 보면 딱 우리처럼 수건돌리기를 하고 보물찾기를 하고.. 어쩜! 똑같은 거에요. 그렇게 (얘기)하면서 웃고 울고 이러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처음에는 북한 사람들끼리도 잘 모르고 남한 사람들은 더더욱이나 처음 보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마주 앉아서 얘기하다 보니까 엄청 가까워 보이고 마치 예전부터 알았던 사람들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모여서 얘기 마저 하자 하고 헤어졌고요. 서로 울며 웃으며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처음엔 서로의 눈치를 봤습니다.

이 얘기를 하면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뭐 이런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경계심이 스르르 풀렸습니다.

인서트8: (강명화) 처음에는 모두 젊잖은 것처럼 서로 눈치보고 얘기 안하더니 나중에는 좀 더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다, 얘기 나누는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까워졌고 점심 한끼 먹고 하다보니까 금방 친해지고 거리가 없어지더라고요. 다 묻어놓고.. 옛날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을 했었나 봐요. 그런데 얘기를 하니까 옛날 생각이 나고 마음이 찡해지면서 마음이 터졌으니까 이것도 저것도 말하고 싶은 마음? 이런 소통의 자리를 누가 생각 했는지… 정말 좋구나.. 금세 친해지고 이렇게 되는게 한 핏줄이라는 생각도 들고 나중에 생각하니까 이 말도 할걸~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명화 씨는 오랜만에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면서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렇게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도 생겼습니다.

인서트9: (강명화) 내 행복은 내가 만드는 거다. 이런 말을 어디서 들어 봤겠어요? 못 들어봤어요. 분명 조선말인데 우린 그런 단어를 할 줄도 몰랐고 쓸 줄도 몰랐고요. 그런데 이런 모임을 통해서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구나, 내가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 노력해야 되는구나를.. 이런 과정을 통해서 다 알게 되는 것 같아요.

-Closing-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나눠봤다면

이제 새로운 인생은 함께 만들어갈 수도 있겠죠.

남북생애나눔 대화가 모두의 더 행복하고 밝은 새로운 인생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