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남한에서는 코로나비루스 4차 대유행으로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서 7월 12일부터 최고 수위에 해당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불필요한 모임과 약속 등을 줄여달라고 시민들에게 요청하고 있는데요. 낮 최고 기온이 35도까지 오르는 무더위까지 겹치면서 거리는 부쩍 한산합니다.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소규모로 모임과 행사가 가능했는데요. 6.25 71주년을 즈음해 열렸던 행사 중 북한 홀로코스트 박물관추진위원회가 주최한 현장에 <여기는 서울>이 다녀왔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 ‘사랑의 선물’이 상영되고 감독과 관객들과 만나는 자리! 지난 시간에 이어 전해드립니다.
==========================================
인서트1: (관객과의 대화 중) 이 영화 같은 경우엔 실제로 북한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고요. 제가 북에서 살 때 봤던 많은 이야기 중에서 다섯 가지 정도를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준비했어요. 그 두 번째 작품이고요. 영화를 준비하게 된 이유는~
남한에서 ‘탈북민1호 감독’으로 알려진 김규민 감독의 영화 ‘사랑의 선물’에 대한 설명이 시작됩니다. 이날은 영화 상영에 이어 감독과 만남의 자리가 마련됐는데요. 2000년 탈북한 김 감독은 한양대학교에서 배우를 꿈꾸며 연극영화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동기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나눴던 대화를 통해 영화 연출을 결심했습니다.
인서트2: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뭐 우리 동네에서는 사람 잡아 먹은 것도 많았다고 그러니까 그 주변에서 술 마시면서 듣고 있던 그 동기 여자들도 있고 남자들도 있고 난리가 나더라고요. 기겁해요. 저는 그게 더 신기했어요. 이 사람들한테 놀라운 일이고 황당한 일이라는 것들을 몰랐었거든요. 그러다가 한국에서 한 2년 정도 살면서 내가 살았던 저 땅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어쩌면 인간 세상에서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이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김규민 감독의 영화는 직접 경험한 일들을 주제로 합니다. 북한 당국은 개인들이 갖고 있는 라디오를 납땜해서 고정했는데 김 감독은 호기심에 채널을 돌려봤고 우연히 한국방송을 듣게 됐습니다. 김 감독의 이 말에 관람객 중 한 사람이 질문을 던집니다.
인서트3: (관객) 처음에는 한국 라디오를 듣고 이렇게 외부 세계에 대해서 알게 됐다고 하셨는데 제가 듣기로는 북한에서 한국 라디오를 듣는 것만으로도 정치범 수용소에 가거나 수감자로 취급이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목숨을 걸고 이렇게 들으신 건지… / (김규민 감독) 그때 당시로써는 정치범수용소에 가고 이런 걸 몰랐어요. 그게 끌려갔다가 온 사람들이, 가는 사람이라든가 온 사람들이 나와서 말을 해야 아는 건데, 그런 말 하는 사람은 이미 다 잡혀갔거나 그곳에서 죽었기 때문에 말할 사람이 없잖아요. 그냥 암묵적으로 그걸 들으면 잡혀간다 정도 알고 있었죠. 근데 여기도 젊은 분들이 많이 계시지마는 하지 말라면 더 해보고 싶은 게 젊은 거 아닙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몰래(웃음) 아가씨의 목소리가 좋아서 듣다 보니까… 목숨을 건다… 그런 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김규민 감독의 솔직한 답변에 관람객들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인서트4: (관객) 영화에서 사용하는 말투가 서울 말처럼 느껴졌거든요. 그것도 의도된 연출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 (김규민 감독) 일단은 맞고요. 많은 질문 중에 하나가 또 왜 영화 속에서 북한 말을 안 썼느냐인데요, 제가 이제 한국에서 만들어진 북한관련 영화 중에 ‘국경의 남쪽’부터 ‘국제시장’까지 북한말 교육을 시켰어요. 시키다 보니까 어떤 문제가 나타나면 북한 말 때문에 연기가 안 돼요. 그런데 그런 큰 영화들은 나름대로 볼거리라도 있잖아요. 근데 이건 독립영화예요. 제 영화에서 북한말을 사용하는 것은 무리수가 있다는 판단으로 제작했는데 이게 우연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들이 대부분 다 해외에서 더 집중하다 보니까 북한말인지 한국말인지…
어설픈 북한 말투보다 배우들이 감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김 감독의 판단이었습니다. 영화 제목에 대한 질문도 이어집니다. 비극적이고 슬픈 내용인데 왜 제목이 ‘사랑의 선물’이냐는 겁니다. 김 감독은 가까운 지인과 있었던 일화를 들려주며 이번에도 유쾌하게 이야기를 시작하네요.
인서트5: (김규민 감독) 그렇지 않아도 제가 영화 처음에 오픈하고 저를 잘 아는 지인이 전화가 왔어요. ‘야 니 영화 봤다.’ 그래서 ‘어. 고마워.’ 했더니 ‘속아서 봤어 이 사람아…’ (관객들 웃음) 저는 이제 북한 인권 영화만 찍는 줄 알았는데 사랑의 선물이라고 그러니까 이 친구가 ‘얘가 드디어 이제 멜로를, 북한 멜로를 찍었구나’ 해서 들어가 팝콘 한 통하고 콜라 큰 걸 사가지고 들어갔는데 하나도 못 먹고 나왔다면서 팝콘값 내놓으라고 그러더라고요. (웃음)
웃음이 사그라질 때쯤 관람객들의 시선은 김규민 감독을 향하는데요. 관람객들을 바라보며 김 감독은 영화에 답이 나온다고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인서트6: (김규민 감독) 북한에서 ‘사랑의 선물’이 뭐냐면요, 김 씨 부자가 백성들한테 내리는 그 잔칫상이라든가 하는 것을 사랑의 선물이라고 그럽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제목을 ‘사랑의 선물’이라고 했던 것은 주인공의 삶 자제, 북한 주민들의 삶 자체가 김일성, 김정은으로부터 야기된 것이거든요.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 영화의 제목을 ‘사랑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한국에 이런 영화를 찍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에 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에 왔는데 김일성이가 죽었는데 전 세계가 난리가 나더라고요. 그런데 북한에서 죽어간 그 300만의 주민들에 대해서는 ‘야 그랬대… 아유 속상하다’. 그리고 끝. 뭐 거기에 대해서 더 이상의 반응이 나올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너무 속상했어요.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나도 단순한 게 싫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영화라든가 아니면 그 전 작품도 그렇고 다음 작품도 그렇고 만드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세상에 저렇게 살다가 죽어간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통해서 항상 말씀드리는 게 그겁니다 (박수소리)
김 감독의 답변에 관객들은 박수로 화답합니다. 감독과의 대화는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어서 마무리됐는데요. 관객들은 어떤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을까요? 경기도 안양에서 온 61살 이서윤 씨입니다.
인서트7: (이서윤) 영화를 두 번째 봤는데 알면 알수록 더 죄송하고, 더 마음 아프고… 정말 자유는 소중하고 이 영화는 정말 모든 사람이 알아야 돼요. 이런 마음이 굉장히 가득한 상태에서 이걸 보니까 3년 전보다 더 마음이 좀 울컥해져요. 그런 거 모르고 있었을 때보다. 정말 김일성, 김정일이가 죽었을 때는 전 세계가 다 놀라고 이렇게 했는데 그렇게 많은, 몇 백만이 죽은 거에 대해서 사람들이 그냥 이렇게 귀로 듣고 흘려간다… 이 말씀이 되게 마음이 아파요.
인천에서 온 도현구 씨는 북한에 있을 땐 몰랐다는 탈북민들의 이야기가 늘 이해가 안 갔답니다. 하지만 지인의 추천으로 함께 한 이 자리, 김규민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그 이유를 알게 됐다고 하네요.
인서트8: (도현구) 청소년기를 겪어가면서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에 저 현실을 겪었으면 분명히 저 나라(북한)에서 살면 안 된다는 걸 알 텐데 왜 그걸 모르고 그냥 살았을까… 그게 굉장히 궁금했었어요. 17살이 되면 군대에 집어넣고 아예 생각할 여유를 안 준다는 감독님의 설명에서 답을 얻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아예 생각 자체를 못 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거잖아요.
북한의 현실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영화를 찍는다는 김규민 감독! 하지만 김 감독은 누구에겐 이 영화를 보지 말라 권하기도 합니다. 바로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탈북민들입니다.
인서트9: (김규민) 저도 그 영화를 보잖아요. 힘들어요. 왜냐하면 여기서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들이 순식간에 막 말살되는 느낌이에요 진짜로. 그러니까 지금 제가 봐도 왜 저런 삶을 살았는지 막 제가 이해 안 될 정도로.. 그러다 보니까 웬만하면 탈북민들한테는 그런 영화 보지 말고 지금의 삶에 충실해서 더 멋진 삶을 살라고 말을 하죠. 그들은 겪어 봤잖아요.
-Closing-
김 감독은 지금 카메라가 아닌 트럭 운전대를 잡고 있습니다. 매년 제작 편 수가 줄어가는 한국 영화 시장에서 인권 영화가 살아남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요. 그래도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제작비를 직접 마련하는 거죠.
인서트10: (리포터) 영화를 찍기 위해서 부업을 할 정도로 영화가 좋으세요? / (김규민) 당연히 사랑하니까 하는 거죠. (웃음) 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게.. 자기가 사랑하고 자기가 좋아하니까 그걸 위해서 희생도 하는 거죠. 이런 영화를 찍는 감독은 정말 드물잖아요. 아니,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잖아요 솔직히. 그런데 누군가는 해야 될 이야기잖아요. 거기서 살았던 나까지 침묵하게 되면은 그들에게 죄를 짓는 거 아닐까요?
우리가 김규민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 그리고 기다려야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