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 삼계탕 한 그릇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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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안전사고와 폭염 피해 예방 활동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행정 안전부에서는 20일 오전 10시를 기해 폭염 위기 경보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 단계로 격상했습니다. 낮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인 상태가 3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 ‘주의’ 수준인데, 한 단계 더 수위가 올라간 거죠.

한국에선 무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보양식을 먹곤 합니다. 여름철 중 가장 무더운 시기인 삼복! 초복, 중복, 말복에 맞춰서 말이죠. 이맘때쯤이면 더위에 취약한 어르신들을 위해 보양식 봉사를 하는 단체들이 참 많은데요. 탈북민들로 구성된 파주 여원 봉사단도 그중 하나입니다. 매년 복날을 즈음해 닭을 푹 삶아 어르신들을 한자리에 초청했는데 올해는 코로나비루스가 관건입니다.

다행히 초복을 앞둔 지난 7월 4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금보다는 조금 완화됐던 시기였기에 직접 얼굴을 보며 어르신들과 뜨끈한 삼계탕 한 그릇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인서트1: (백춘숙 회장) 여름에는 그 어느 때보다 땀을 많이 흘리잖아요. 그 여름 더위를 잘 이겨내시라고 마음이 담긴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서 이렇게 준비하게 됐어요.

그 현장 <여기는 서울>에서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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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트2: (현장음) 간사님, 아까 그 봉투 어디 있어? 작은 것. 비닐 어디 있어. 봉지! 그것 좀 줘봐요. 비닐 좀 씌우게 ~~~

이곳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인데요. 주로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 곳입니다. 단지와 단지 사이에 파란색 간이 테이블 30여 개가 죽 늘어서 있고 천막까지 쳤습니다.

주말 아침인 데다가 이날 따라 비가 내려서 지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데요. 봉사자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분주히 움직입니다. 아파트 어르신들에게 삼계탕을 대접할 테니 11시 30분까지 오시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비를 맞아가면서까지 예정대로 삼계탕 봉사를 진행한 이유는 또 있다고 하는데요. 여원봉사단 백춘숙 회장의 말입니다.

인서트3: (백춘숙 회장) 단지 내에 7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인원을 조합해 보니 한 120명 정도가 됐어요. 해서 저희가 150마리의 닭을 오늘 (준비)했고요. 그 일정을 게시판에 올렸는데 어르신들 다른 일정을 다 취소를 하고 삼계탕 드시려고 달력에다 표시하고 계실 텐데… 이거를 비가 온다고 해서 취소하면 실망하시지 않을까 (싶어서) 그 일정을 그대로를 지키느라고 오늘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준비는 봉사자 10명이 모여서 전날 미리 했답니다. 손이 많이 가는 재료 손질은 물론 불린 찹쌀과 수삼, 대추 등을 생닭 안에 넣어 닭 다리를 꼬아서 고정시켜 온 겁니다.

봉사 현장엔 간이 가스 화로가 두 구 준비됐고 그 위에 닭 4-50마리는 충분히 들어가는 대형 솥이 올라가 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닭을 삶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 봉사자들은 간이 테이블 위에 다른 음식들을 준비합니다. 수박, 바나나, 인조 고기밥에 김치 그리고 북한식 떡과 음료까지. 준비한 음식이 정말 다양하네요. 8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4명만 앉을 수 있도록 배치했고 이 때문에 봉사자들은 평소보다 2배로 움직여야 합니다. 게다가 비까지 내려서 자칫하면 미끄러질 수도 있습니다.

인서트4: (현장음) 쟁반에다 한 상에 갈 것.. 같이 담아서 가. 한 개씩 들고 다니지 말고. 길 미끄러워서 사고 날 우려가 있으니 조심들 하고! 쟁반에 다 같이 세팅을 해서~~

인서트5: (현장음 -빗소리)

야속하게도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는데요. 11시가 넘자 봉사자들이 갑자기 2인 1조로 한 팀을 이루네요. 음식이 비에 젖지 않도록 비닐로 덮은 뒤 한 사람은 우산을 들고 또 다른 사람은 쟁반을 들고 테이블로 음식을 나르기 위해서 랍니다.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약속한 시간이 다 됐습니다. 어르신들이 한 분씩 천막 쪽으로 걸어오시네요.

인서트6: (현장음) 자, 할머니 열 체크하겠습니다.. 36.6! 사람 많은데 빨랑빨랑해야지. 전화번호도 있어. 거기에서 찾으세요. 한 사람은 전화번호를.. 310동 204호.. 아! 여기 있다~~

이제는 일상이 된 체온 측정이 가장 먼저 이루어지고요. 명단에 있는 분인지 아닌지 신분증을 통해 확인합니다. 이 과정을 마친 어르신만 준비된 테이블에 앉을 수 있으니까요.

인서트7: (현장음) 오세요. (체크)하신 분들은 이쪽으로… 그리고 이거를 안 받으셨죠. 갈 때 뭐 드릴 거니까 자리에 차례로 앉으세요.여기에 앉으세요. / 감사합니다~

접시에 음식을 담는 사람, 과일을 깎는 사람, 쟁반 들고 음식을 나르는 사람, 어르신들을 맞이하는 사람, 체온 측정하는 사람, 자리 안내를 하는 사람, 저 끝에서 삼계탕을 삶는 사람 등 30여 명의 봉사자들 모두가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냅니다.

2013년부터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 온 여원봉사단 봉사자들의 협동심이 진가를 발휘하는데요. 그 모습이 마냥 신기한 사람이 있습니다. 함경북도를 떠나 한국에 온 지 5년 됐다는 박봉선 씨인데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일하고 있습니다.

인서트8: (박봉선) 저희 오늘 처음 나왔거든요. 근데 일단은 이래 나와 보니까 너무 분위기가 좋고 대한민국이 정말 살기 좋다는 느낌이 와요. 저희 밑에 집 동생이 너무 나가보자 해서 그래서 제가 오늘 여기 나오게 됐어요. 저는 이런 분위기를 처음 봤어요. 일단은 서로 어울려서, 대한민국 분들하고 저희 분들하고 서로 화합하고 어울려서 이렇게 봉사활동 하는 게 너무 보기도 좋고. 그러니까 절로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웃음)

올해 58세, 봉선 씨는 한국에 도착했을 때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지 못하고 한동안 치료를 받으며 지냈다고 하는데요. 건강이 조금씩 호전되면서 주변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이웃의 탈북민 동생이 권해서 봉사활동에 처음 나왔습니다. 처음 하는 봉사인데 삼계탕 150마리를 준비해야 하는, 규모가 제법 큰 현장을 만났네요.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자리에 나오게 된 게 아니냐고 했더니 봉선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서트9: (박봉선) 어렵다기보다는 내가 이런 기회를 통해서 어쨌든 마음을 건강하게 먹으려고 사실은 이 자리에 나왔어요. 북한 사회는 일단은 이런 분위기를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고. 근데 남한 사회는 어쨌든 어르신들, 몸이 불편하신 분들에게 이렇게 자원봉사자들이 도와주고 나이든 어르신들이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너무 보기 좋아요.

봉선 씨는 서툴지만 일손을 보탭니다. 수박을 먹기 좋게 자르며 조심스럽게 저와 대화를 나눴는데요. 분주하게 움직이는 탈북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환하게 웃는 봉선 씨의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습니다.

인서트9: (현장음) 언니 더!! 김치 담아~~

어르신들이 보양식을 드시고 건강한 여름을 나기를 바라는 봉사단의 마음이 전해졌을까요? 굵은 빗줄기도 서서히 잦아듭니다. 텅 비었던 의자 위로 어르신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고 앉네요. 테이블 위에 놓인 인조고기밥과 떡을 집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여원봉사단 회원들이 다시 바빠집니다. 이제 1시간 넘게 푹 삶은 삼계탕을 드디어 선보일 때가 된 것 같네요. 다음 시간에 나머지 얘기 이어가겠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사작성: 김인선,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