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그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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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모든 것이 시간과 함께 익숙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익숙해졌기 때문에 놓치는 것도 생기죠.

익숙해진다는 것은 편안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감정과 생각이 무뎌짐을 뜻하기 합니다.

그래서 어제의 생각을 내려놓고 오늘의 눈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죠.

우리의 눈을 새롭게 하는 방법, 그 중엔 ‘그림’도 있는데요.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그림 공모전을 진행했습니다.

그 이야기, <여기는 서울>에서 소개합니다.

인서트1: (현장음) 지금부터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 수상의 영광을 차지한 수상자 여러분께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은 1996년 5월부터 북한 인권 문제를 다뤄왔습니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인권유린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중국이나 제3국에 있는 탈북민을 구출하는 일과

탈북청소년 교육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 인권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데요.

이번에 진행한 그림 공모전도 그 중 하나입니다.

공모전 제목은 ‘국제강제실종주간 그림공모전’.

이름만 들어서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죠?

인서트2: (이지윤) 안녕하세요. 북한인권시민연합 캠페인팀에서 일하고 있는 이지윤 간사입니다. 이번 그림 공모전은 일회성인 사업인데요. ‘비자발적 실종 반대 아시아 연합’이라는 곳에서 매년5월 마지막 주를 국제강제실종주간으로 정해서 기념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주간에는 강제 실종 피해자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가족들이 얼마나 피해를 받았고 또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슬픔을 갖고 있는지를 기억하고 알리기 위해 노력하려고 만든 주간입니다. 많은 분들이 북한 정부에 의해 이루어진 강제 실종 문제에 대해서 잘 모르고 계시거든요. 이번 그림 공모전을 통해 이 문제를 좀 더 알게 되기를 바라면서 준비하게 됐어요.

강제실종이란 국가기관이나 국가의 역할을 하는 단체가

정당한 이유없이 누군가를 체포하거나 구금, 납치해 실종되는 범죄를 의미합니다.

북한에선 정치범과 그 가족이 처단되고 강제 추방 당하는 등의

국가에 의한 강제 실종 피해가 수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중엔 남한 국민도 다수 포함됩니다.

인서트3: (이지윤) 많은 분들이 모르시는 게 대한민국 국민들도 북한 정부에 의한 강제 실종의 피해자가 된 경우가 많거든요. 6.25 전쟁 중에만 약 10만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에 납치됐고 전후에도 약 3,853명이 납북되셨는데 전후납북자들은 풀려나신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여전히 516명 정도는 아직 북한에 억류되어서 생사를 모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행사는 ‘비자발적 실종 반대 아시아 연합 AFAD’과 함께 진행됐는데요.

강제실종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걸고 5월 14일부터 열흘간 공모전을 진행했습니다.

인서트4: (이지윤) 저희가 혼자 독자적으로 그림 공모전을 실시하자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강제 실종 주간을 같이 제정했던 비자발적 실종 반대 아시아연합인 AFAD와 같이 논의해서 준비하게 됐어요. 그림 공모전을 같이 준비하고 후원했던 AFAD라는 연합체는 동서남아시아에서 강제 실종을 다루고 있는 시민단체 12개가 모인 연합체에요. 그래서 강제실종주간에 올해는 어떤 활동을 할까 1~2개월 전부터 논의를 하면서 화상을 통해 그림 공모전을 개최하자라고 결정했어요. 저희 단체뿐 아니라 각국의 회원 단체들이 동시에 하기로 결정해서 그림 공모전을 실시했습니다.

12개의 나라에서 동시에 진행된 그림 공모전!

소주제 선정은 나라별로 달랐고 수상작도 12개 나라별로 선정했습니다.

인서트5: (이지윤) 저희는 이번 그림 공모전에서 북한에 의한 강제 실종을 다루고 싶어서 세가지 주제로 작품 모집을 했는데요. 첫번째는 북한에 의한 강제 실종 문제의 심각성, 두번째는 강제 실종이 사라진 세상, 그리고 세번째는 가해자에 대한 책임규명 요청 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모집했어요. 강제 실종이라는 게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참가한 분들이 성인이나 대학생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참가 작품 모집이 마감된 뒤에는 외부 전문가 세분을 모셔서 심사 진행을 했는데요. 주제의 적합성이나 예술성, 독창성 이런 세가지 평가 기준으로 접수된 작품들을 심사해 주셨습니다.

1등 ‘최우수상’부터 3등 ‘장려상’까지

‘국제강제실종주간 그림 공모전’ 수상 작품이 결정됐는데요.

예정에 없던 ‘아차상’이 생겼습니다.

인서트6: (이지윤) 아차상 같은 경우에는 정해졌던 상은 아니지만 공개하지 않고 두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정한 상인데요. 붉은색을 배경으로 돌아오지 못한 납북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족을 돌려 주세요’ 이런 팻말을 들고 요구하는 모습을 그려 주셨어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내용이 극명하게 나타나서 SNS에 올리거나 홍보할 때 사용하기 좋을 것 같아서 전문가인 심사위원들이 심사해 주신 작품 이외에 사무국 실무자들이 논의해서 추가한 상입니다.

작품명 ‘사라져버린 이’는 억지로 끌려가는 청년의 모습을 통해

강제 실종에 대한 공포와 심각성을 표현해 장려상에 선정됐습니다.

우수상에 선정된 작품의 제목은 ‘지울 수 없는 것’인데요.

강제실종된 딸의 사진을 들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그림이 전체적으로 어둡고 슬픈데요. 작가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까요?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 중인 이경민 씨입니다.

인서트7: (이경민) 원래 북한에 관심이 크게 없었는데 이번 공모전에 나가면서 강제 실종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공모전에 나갈 결정을 했습니다. 단어가 좀 생소했을 뿐이지 주제를 인식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강제 실종이라는 게 가볍고 밝은 분위기가 아니니까 검은색 위주로 배경을 깔았고 가족의 분단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가 가족 중에 어머니랑 제일 친한데 어머니랑 헤어지면 얼마나 슬플까 싶어서 가족의 분단을 큰 주제로 잡고 강제 징용된 딸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마음을 상상해서 그려봤습니다.

딸과 찍은 사진이 담긴 액자를 품에 안고 있는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그 뒤로 창백한 얼굴을 한 젊은 여자가 있습니다.

경민 씨는 두 사람의 눈은 표현하지 않고 어머니와 딸의 피부색을 다르게 처리해

딸은 이승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는데요.

철조망을 건너 슬피 울고 있는 엄마를 만나러 온 딸의 모습을 통해

강제실종이라는 범죄가 한 개인뿐 아니라 그 가족 모두를 파괴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인서트8: (이경민) 제가 수상을 하게 되면서 주변에 알리다 보니 제 주변 사람들에게 ‘강제 실종’이 무엇인지 설명하게 되고 그런 사건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강제 실종에 대해 고민하고 공모전에 작품을 낸 수많은 사람들.

그들 대부분은 경민 씨처럼 이번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국제 강제 실종 주간’과 ‘강제 실종’에 대해 알게 됐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인서트9: (이지윤) 굉장히 어려운 주제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서 공모전에 참가해 주셔서 좋았고요. 앞으로도 좀 더 친근하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북한에 의한 강제 실종 문제라든가 북한의 인권침해에 대해 더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Closing-

최우수상은 ‘철장에 갇힌 새들’인데요.

그물 속에 있는 새들이 납북자들이고 그물을 움켜쥐고 있는 손은 북한을 표현했답니다.

그 아래 새장에 갇힌 사람들은 납북피해자의 가족들이고요.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인 강제 실종 피해와 피해자들의 고통.

그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작게나마 행동할 수 있도록

항상 오늘의 눈으로 이 문제를 바라봐야겠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