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으로 그리는 남북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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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늦잠 실컷 자기, 맛집 찾아다니기, 악기 배우기, 드라마 몰아 보기, 기차 타고 여행가기…

방학을 맞아 하고 싶은 일들이 많습니다. 매 방학마다, 하고 싶은 일의 목록에 비해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죠. <여기는 서울>, 이 시간을 통해 이번 여름 방학을 알차게 보내고 있는 탈북 대학생들의 모습을 전하고 있는데요. 오늘 소개할 학생들은 재미있는 걸 배우네요. 바로 웹툰, 인터넷 만화를 배우는 남북 청년들의 이야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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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트1: (김요나) 7월에는 토익 수업을 진행을 했고 지금 8월에는 웹툰 교실을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토익은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수업이라면 웹툰은 웹툰이라는 소재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남북 청년들 간에 교류할 수 있는 그런 수업을 마련을 하고자 기획했습니다. 북한 청년들만 모집하는 게 아니라 남한 청년들도 같이, 16세에서 35세 이하의 청년을 모집해서 웹툰을 소재로 자연스럽게…

탈북민들의 인권개선과 교육사업을 하는 시민단체 물망초에서는 방학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인터넷에 연재되는 만화 즉 웹툰을 배우는 수업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그래서 수업을 받는 사람이나 기획한 사람이나, 기대가 컸습니다. 물망초 김요나 교육 팀장의 말입니다.

인서트2: (김요나) 탈북민과 남한 사람들의 사회 통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일환으로 웹툰을 소재로 자연스럽게 만남의 장을 만들고 이 안에서 소통하고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저희의 주된 목적이고요. 북한에서 그림을 배우고 싶었는데 배우지 못했었던 친구들이 남한에 와서 그림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서 좋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전공과 상관없이 그냥 그림에 취미를 가지고 있는 다양한 학생들이 흥미를 갖고 잘 따라와주고 있습니다.

웹툰 교실은 15명의 남북 청년들을 대상으로 지난 8월 2일 시작해 27일까지 진행됩니다. 매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총 4주동안 운영되는데요. 북한 출신으로 탈북민의 남한 정착을 소재로 웹툰을 그려 주목받은 최성국 작가가 강사입니다. 2010년, 한국에 입국한 최성국 작가는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아동영화 제작사인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 원도가(애니메이터)로 활동했습니다. 한국에 와서도 만화를 그리고 있는데요. 최성국이라는 이름을 알린 건 ‘로동심문’이라는 웹툰입니다. 항상 진지하고 심각하게만 그려졌던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유쾌하게 그리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인서트3: (최성국) 제 웹툰 내용을 보면 남북한 이야기이고 정착 이야기이고 또 북한에 대해서도 보여주고… 남과 북 문화 공감을 주제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조회수도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왜 이걸 하냐고 하면 할 줄 아는 게 (웃음) 그 중 잘하는 게 이거(만화)고 또 이걸로 계속 일하다가 왔잖아요. 그래서 계속 만화를 그리는데요. 이 작업을 하다 보니 큰 의미를 찾게 됐습니다.

최 작가는 웹툰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강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는데요. 최성국 작가의 수업은 본인이 그리는 웹툰의 그림풍만큼이나 독특합니다.

인서트4: (최성국) 여기(남한 수업) 방법 말고 좀 다른 방법을 썼어요. 한마디로 북한에서 하는 방법! (웃음) / (리포터) 북한에서 하는 방법이 뭔데요? (최성국) 인권 무시하고 막 시키는 거죠. (웃음) 오늘 여기서부터 이만큼 무조건 해. 그리고 그 사람이 그린 걸 공개해요. 학생들한테 다 공개해요. 그러면 서로 다 좀 부끄럽지만 그 단계만 벗어나면 모든 학생들이 옆의 다른 애들이 그린 걸 같이 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꾸 비교하는 거죠. 자기 거하고.. 결과적으로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또 부끄러우니까 더 노력하게 되죠.

본인의 표현처럼 봐주는 것 없는 북한식 스파르타 교육! 이런 최 작가의 수업 방식은 남한 청년들에겐 어떻게 느껴질까요? 광운대학교 산업심리학과에 재학 중인 박지원 학생의 말입니다.

인서트5: (박지원)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기도 했던 게 말씀이 직설적이세요. 제가 그림을 되게 못 그린다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제가 미술을 해본 적이 없다고… 근데 약간 너무 아무렇지 않게 ‘그림 되게 한심하게 그려’… 이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시더라고요. 작가님은 북한 출신이고 북에서 오신 분들이 조금 직설적이다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진짜 당황 많이 했을 것 같아요. (웃음) / (리포터) 지금 수업을 어느 정도 들었죠? / (박지원) 기초 회화 수업은 끝냈고요. 클립 스튜디오라는 웹툰 편집 프로그램으로 콘티 작업하는 것까지 나갔습니다. 사실 그림 자체에 대한 기초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로 시작을 해서 어려울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생각보다도 더 어려웠고요. 콘티를 작업하는 과정에는 장면을 구성하는 능력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어려움도 느끼고 있고요~

몇 컷의 그림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명확하게 담아 내야하는 웹툰은 그림 그리는 것 외에도 많은 창작의 영역이 동원됩니다. 특히 어떤 이야기를 담을 지가 중요하겠죠. 수업에서는 자신이 웹툰으로 그리고자 하는 이야기를 서로 공유합니다. 최 작가는 특히 이 과정에서 남북 청년들의 차이를 느꼈습니다.

인서트6: (최성국) 남한 청년들은 시나리오나 주제에 대해서 발표하라고 하면 이해되기 쉽게 쭉 발표를 해요. 근데 북쪽에서 오신 분들은 왔다 갔다 하면서 하시는 분들이 좀 있어요. 뭘 말하자는 건지 잘 모르겠고 본인만 알고 표현을 잘 못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근데 남북한 청년들을 같이 합쳐서 놓으니까 이 부분을 보고 배우더라고요. 남한에서 저건 저렇게 발표하는구나, 북쪽은 스토리가 많구나. (웃음) 서로 장점들 합쳐서 하는 거죠.

최 작가는 남북 청년들이 함께 하기에 새로운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 이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도 수업을 통해 예상치 못한 것들을 배워갑니다.

인서트7: (박지원) 북에서의 빈부 격차를 꼬집고 싶다고 하시면서 스토리를 구성하셨던 분도 계셨고 보안원이랑 관련됐던 스토리를 쓴 분도 계셨고요 이런 식으로 본인들이 알리고 싶었던 내용을 많이 써주시는 분들이 좀 계셨어요. 그러면서 현실을… (북한의) 현실에 대해 알게 됐어요.

한국에 온 지 3년 됐다는 이예주 씨는 이번 웹툰 교실의 수강생 중 유일한 미술 전공자입니다. 26살, 올해 대학에 입학한 늦깎이 학생인데요. 예주 씨는 탈북 후 북한에 남은 가족의 신변 문제로 꼭꼭 숨어살다시피 했답니다. 최근 들어 조심스럽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는 예주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인서트8: (이예주) 아무래도 처음에 왔을 땐 너무 무서웠거든요. 가족도 그렇게 됐고. 그리고 제가 23년간은 북한정권에서 세뇌 당하다 보니 여기 와서 내가 이렇게 마음대로 하면 누군가 북한 정권에 고발해서 나를 어떻게 하지 않을까, 우리 가정을 어떻게 하지 않을까 이런 걱정을 많이 했는데요. 와서 한 3년 살다 보니까 이만갑에 출연하시는 분들도 있잖아요. 자기 진짜 이름을 밝히고 고향도 밝히고 이렇게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가족도 잘 살고 있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마음을 놓게 됐고 그냥 숨어서 사는 것보다는 오히려 목소리를 내서 뭔가 북한 사람들의 억울함, 억눌림~ 그런 것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북한에선 만화를 어린이들을 위한 것으로 한정 짓는 경우가 많지만 만화는, 또 웹툰은 소설이나 시, 영화, 뮤지컬 같이 한 개의 엄연한 장르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예주 씨는 웹툰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데요. 무엇이 예주 씨를 움직이게 했을까요? 다음 시간, 남은 이야기 전해드리겠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