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입니다. 이번주 올해 첫 태풍인 ‘오마이스’가 지나면서 남한 전역은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비 소식과 함께 완연한 가을이 느껴지는데요. 학생들은 약 40일 간의 여름방학을 마치고 개학과 함께 새 학기를 맞이합니다. 학생들은 이번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지난 주에 이어 <여기는 서울>에서는 인터넷 만화 ‘웹툰’을 배우는 남북 청년들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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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트1: (최성국) 북한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TV나 영화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을 만화에서 정말 실감 있게 보게 됐다, 북한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간다…이런 댓글들을 보면 힘이 나죠.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한 최성국 씨는 2010년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탈북민의 남한 정착을 소재로 한 ‘로동심문’이라는 인터넷 만화, 웹툰을 연재하면서 주목받았는데요. 웹툰을 통해 탈북민과 북한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는 호응에 따라 강의 등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탈북민들의 인권개선, 교육사업과 국군포로들의 송환에 앞장서는 시민단체 물망초와도 인연이 닿았습니다.
인서트2: (최성국) 국군포로들의 아픔을 북한에서부터 알고 있었어요. 탄광이나 무슨 시골이나 이런 데 배치 받아가지고 고생하면서 살고 그래요. 특별 감시 대상이고요. (한국에 와보니) 그분들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알게 됐고 제가 강의를 할 수 있게 소개받은 거죠.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던 최성국 작가는 웹툰교실 강의를 맡게 됐고 남북 청년들을 대상으로 지난 8월 2일부터 매일 2시부터 5시까지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웹툰은 몇 컷의 그림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명확하게 담아 내야하기에 창작 능력과 함께 구성력까지 갖춰야 합니다. 전문적으로 웹툰을 그리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죠.
이번 물망초 웹툰교실은 총4주 동안만 진행되는 특강 형식의 수업입니다. 전문가를 양성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인 교육만 해도 무관한데요. 최성국 작가는 욕심을 냈습니다.
인서트3: (최성국) (웹툰을) 한마디로 말하면 본인이 보여주고자 하는 내용을 확실하게 정리해서 납득시키는 능력이에요. (학생들) 나이가 어려서 그게 좀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아주 적극적으로 정말 열심히 달라 붙어서 교육에 임해요. 그런 부분들이 너무 좋았어요. 서로 배려하려고 하고 공부하는데 몸을 아끼지 않아요. 그런 거 보면 ‘너무 좋다, 적극적으로 임하는구나’ 이런 게 느껴지는데… 이런 사람들하고 1개월 밖에 (수업을) 못 한다는 게 아쉬워요.
학생들도 수업이 끝나는 것이 아쉽기는 마찬가집니다. 탈북민이자 수강생 중 유일한 미술 전공자인 늦깎이 대학생 이예주 씨의 말입니다.
인서트4: (이예주) 큰 기대를 안 하고 (웹툰교실에) 지원했는데 지금 너무 잘 한 것 같고 너무 좋습니다. 인물을 (그려보라고) 시켰는데… 저는 사실 입시 미술학원 1년 동안 다니면서 정물만 그리다 보니 인체를 안 해봤거든요. 처음에는 조금 버거웠어요. 명색이 미대생인데 일반 사람들과 인물을 그리는데 제가 실력이 똑같은 거예요. 선생님이 정말 잘 가르쳐 주셔서 빠른 시간 안에 저도, 친구들도 재미있게 잘 따라갔고 수업도 정말 즐거웠습니다
예주 씨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미술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북한에 남은 가족의 신변 문제로 꼭꼭 숨어살다시피 했다는데요. 조용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족들을 위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서트5: (이예주) 북한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그 학력 인정을 받았고요. 학력 인정받은 걸 기초로 해서 대학 준비를 했는데 그 꿈을 포기했어요. 왜냐하면 저희 가족이 다 북송되는 바람에 많은 돈이 필요로 했거든요. 진짜 정말 공부를 하고 싶지만 내 꿈을 위해서 가족의 목숨을 포기하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꿈을 포기하고 여러가지 일을 했어요. 제 상황에 가족들을 위해서 돈은 벌어야 되고 그러다 보니까 온라인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증 과정 공부를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까 또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예주 씨는 북쪽에서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기에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사회복지사 일이 보람되고 좋았다고 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정말 뜻밖의 재능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인서트6: (이예주) 사회복지사 일을 하던 중 어르신들하고 미술 치료 프로그램이라고 이런 거 하잖아요. 근데 그걸 하는데 너무 재미 있더라고요. 그냥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그렸는데 막 옆에 선생님들이 ‘잘 한다 잘 한다’ 이렇게 칭찬을 해 주시고… 그래서 ‘나 이거 꽤 할 수 있나. 잘할 수 있을까’ 하고 그냥 입시 학원에 가서 원장님하고 상담하고 조금 배워봤는데 잘 한다고 그러고… 그래서 배우게 됐습니다.
예주 씨는 잘 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미술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인서트7: (이예주) 제가 미술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현재 총 한 방 쓰지 않고 북한이 배급 제도에서 시장 경제로 넘어갔잖아요. 근데 기본적인 게 한류 문화 때문에 한국 노래, 드라마 이런 것 때문에 (북한)문화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북한에서 시장 경제가 활성화된 면도 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앞으로 내가 말로만 (북한 실태를) 전하는 것보다 시각적으로 뭔가 북한 인권 관련해서 조금이라도 세계적으로 알릴 때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해서 미술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예주 씨가 이렇게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북한의 실태에 대해, 탈북민에 대해 알리는 탈북 선배들 덕분입니다. 방송을 통해 얼굴을 공개하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예주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로 북한에 대해 알리고 싶다는데요. 이번 웹툰교실에서 처음 시작해 봅니다. 북한에서 경험한 자신의 이야기를 웹툰에 담을 예정이라는데요. 어떤 이야기일까요?
인서트8: (이예주) 북한은 쌀밥 먹기를 너무 어렵잖아요. 그래서 쌀밥은 막 부의 상징이고 막 최고의 사치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 쌀밥을 먹으려면 꼭 불법적인 일을 해야 먹을 수 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쌀밥 배급을 준 적도 없는데 쌀밥을 만약에 일반 사람이 먹으면 비사회주의다, 불법이다 이러면서 막 잡아가고 이러거든요. 제가 고등학생 때 저희 아빠가 중국과 밀수를 했어요. 불법이죠. 밀수니까... 그런데 밀수를 하면서 집이 조금 풍요로워져서 쌀밥을 먹게 되는데 진짜 그 쌀밥을 먹기가 돈이 있어도 너무 어려웠어요. 쌀을 사러 돌아다니는 것도 사람들이 막 감시하고 계란을 묻어놓고 싶어서 동네를 몇 번씩 사러 돌아다니니까 사람들이 막 이상한 눈길로 보는 거예요. 저 집에 무슨 돈이 있어서 저렇게 계란을 자주 사가지? 시장에 나가면 얼굴 다 알 정도고 그러니까... 매일 가는 것도 아니고 한 3일에 한 번, 한 주일에 한 번 이렇게 사가는데도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보고 그래서 저희가 돈 벌고도 사 먹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한 번은 인민 반장하고 보안원하고 가택 수색을 하면서 돌아다니다가 저희 집 앞에서 쌀밥 냄새가 난 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옥수수밥을 해놓아 둔 걸로 바꿔치기 하긴 했는데 숟가락, 젓가락을 못 바꿔 가지고.. 그것 때문에 온 가족이 들킬 위험에 있었거든요.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심장이 할랑거려요. 여기 한국에 와서 쌀밥을 먹으면서 맨날 그 생각이 나서 그걸 가지고 지금 시나리오를 썼거든요.
-Closing-
이 이야기를 통해 북한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는 다른 수강생들의 말이 예주 씨에게 힘이 됐습니다. 그래서 더 큰 꿈이 생겼다는데요.
인서트9: (이예주) 문화 전도사가 되고 싶어요. 남북 문화 전도사!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 북한인권 관련해서 목소리를 내고, 뭔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일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번주, 웹툰 교실의 4주간의 일정이 마무리되는데요.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들을, 그들의 새로운 꿈을 응원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이현주,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