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우리가 내뱉는 말 한마디! 때론 큰 위로가 되기도 하고 날카로운 비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습니다. ‘행동을 할까 말까 고민이 되면 그냥 해라, 대신 말을 할까 말까 고민이 되면 그 말은 그대로 삼켜라’.
‘말’이라는 한 글자가 갖고 있는 강력한 힘을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북한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온 탈북민들입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탈북민들에게 영어교육을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인 TNKR은 Teach North Korean Refugees의 약자로 탈북민들의 영어 공부를 돕는 단체였는데요. 지난해부터는 단체명을 FSI, Freedom Speakers International로 변경해 탈북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전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영어로 말이죠.
FSI에서 주관한 14번째 탈북민 영어말하기 대회, 그 현장 <여기는 서울>에서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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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트1: (현장음) Hello everyone. My name is Ingi-Park. Welcome to FSI’s 14 English speech contest~
서울 광화문의 한 건물에 있는 강당에서 영어말하기 대회가 시작됩니다.
대회 때마다 외국인자원봉사자들과 많은 관람객이 함께 해왔지만 코로나비루스 여파로 규모가 점점 축소되네요. 이번 대회에 참석 가능한 최대 인원은 27명입니다. 대회 장소 정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은구 대표의 말입니다.
인서트2: (이은구) 코로나 때문에 장소가 다 막판에 취소가 돼서 장소 찾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학생들이 멘토들과 함께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런 준비도 다 온라인으로 했고요. 사실 직접 만나야 하는 거거든요. 결국 장소 때문에 멘토들은 초대 못 했어요. 정말 많은 대중들 앞에서 해야 하는데 그런 경험을 코로나 때문에 하지 못했다는 거… 그게 좀 아쉽죠
영어말하기대회 무대에 오르기 위해 참가자들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한글로 먼저 작성하고 그 글을 영어로 번역하는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이때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필요한데요. 영어 표현을 확인하고 원고를 수정합니다. 그리고 이런 역할을 하는 봉사자들을 이 단체에서는 ‘멘토’라 부릅니다. 멘토는 참가자들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어로 자연스럽게 읽고 외울 수 있도록 돕는데요. 그 과정이 최소 2개월에서 3개월 정도 걸립니다. 이런 멘토들이 대회에 함께 참여하지 못한 것은 본인들은 물론이고 참가자들에게도 아쉬운 일이죠.
영어말하기대회에 참가한 탈북민의 신변보호 차원에서 이 대회는 한 번도 촬영한 적이 없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집니다.
인서트3: (현장음) First! No photos. 사진 찍는 것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And inter the room~
멘토에 참가자 가족, 친구들까지 150명 이상 모였던 예전 대회에 비하면 이번 대회는 5분의 1 규모로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는 참가자들의 긴장감은 똑같습니다.
인서트4: (현장음) We have eight speakers today~~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발표 시간은 10분!
영어말하기대회에 몇 번을 참가했어도 떨리는 건 마찬가지라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도전을 반복하는 이유가 뭘까요?
인서트5: (이정철) 안녕하세요. 저는 이정철이고요. 고향은 양강도 혜산시이고 2007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제가 이번에 참가한 게 한 네 번째인데, 참가하게 된 계기는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도 있었고 또 이런 스피치 대회를 준비하다 보면 영어 공부 엄청 많이 하게 되거든요. 일단 아이디어도 구상해야 되지, 대본도 외워야 되지, 또 표현 하나하나 신경 써야 되지, 이런 과정이 사실 영어 공부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정말 효과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참여해 왔습니다. 사실 상금도 탐났고요. (웃음) 뭔가 저한테는 도전이었어요.
대회에 참가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큰 도전이겠죠. 정철 씨는 처음 영어말하기대회에 참가했을 땐 참가자 중 꼴찌를 했었다는데요. 정철 씨의 이야기… 좀 더 들어봤습니다.
인서트6: (이정철) 그러니까 제가 많은 대중들 앞에서 얘기하는 걸 잘 못했어요. 나가면 되게 떨고 했었는데… 그런데 한 번 참여하고 나니까 이거 이왕 참여한 거 1등 한번 해봐야 되지 않겠냐… 오기가 생겼던 것 같아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왕 한 거 한 번 더 참여해서 좀 좋은 결과 만들어보자. 또 내가 발전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다음에도 성적이 안 좋았고, 그 다음에는 3등 했었나? 이렇게 순위가 좀 이렇게 바뀌어 가다가 올해에도 참여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올해는 좀 더 준비 열심히 하자. 그러니까 제가 이 대회에 참여할 때마다 ‘저번보다는 좀 더 나은 성적을 거두자’ 이게 항상 목표입니다.
그래서 정철 씨는 그 목표를 이뤘을까요? 이번 대회가 정철 씨의 네 번째 도전입니다.
인서트7: (이정철) 처음에 참여한 게 거의 2017년 그때였나? 주제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제 얘기를 했던 것보다는 좀 일반적인 얘기 그러니까 일반적인 탈북민의 삶, 이런저런 얘기를 좀 하면서 스피치 내용에 대해서 좀 고민을 많이 안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점점 이렇게 (대회 준비를) 하면서 ‘아~진정성 있게 어떤 걸 얘기하고자 한다면 내 얘기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내 얘기만큼 내가 더 잘 아는 게 없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한국에 와서 2017년도부터 살면서 지금까지 느꼈던 걸 그냥 포괄적으로 얘기했어요. 이번 제 스피치의 제목은 ‘The name of North Koreans’, ‘북한 사람의 이름’인데요. 북한을 탈출한 북한 사람들도 엄청 많잖아요. 근데 그 사람들을 보통 부르는 명칭이 탈북자, 새터민, 탈북민, 동포... 다양한데 그중에서 탈북자를 영어로 제가 번역해 봤더니 defector인 거예요. 근데 단어의 의미가 탈주자, 배반자 이런 뜻이 있어요. 그럼 나는 배반자일까요? 이걸 고민하게 된 거죠.
북한 당국도 매체를 통해 탈북민을 배반자라고 비난했는데요, 정철 씨는 마치 자신에게 하는 얘기인 것처럼 느껴져서 화가 났답니다. 그래서 정철 씨의 이번 말하기대회 제목은 ‘The name of North Koreans – 북한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인서트8-1: (현장음) Today I want to talk about the word defector~~
인서트8-2: (이정철) 제가 북한에 있을 때 저희 엄마도 근근이 밀수해서 살다시피 했었고 또 아버지는 교사였는데.. 사실 북한에서는 교사든 변호사든 의사든 아니면 저기 당 중앙위원회 위원이든 간에 공식적인 월급은 쌀 한 킬로그램도 살 수 없는 금액이니까… 그래서 저희 엄마가 밀수도 하고 하면서 중국을 왔다 갔다 하고 또 그것 때문에 북한 정부한테 잡혀 가지고 교화소도 많이 왔다 갔다 했었고… 엄마가 감옥 가면 저희 가족은 굶었고 또 엄마가 나오면 또 그나마 살 수 있었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까 제가 지금 생각하는 북한에서의 추억은 거의 배고픔밖에 없는 거예요. 나는 배고픔 때문에 떠났고 그게 가장 큰 이유인데, 아니 정말 배고파서 북한을 떠난 내가 정말 배반자인가? 기본적인 배고픔을 해결하고자 북한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대부분의 탈북민들을 북한 당국의 배반자라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저는 그걸 한번 얘기해보고 싶었고요. 거기에 대해서 과연 세계에서는 북한 정부가 저희 비난할 때 쓰는 그런 탈북자 즉 ‘디펙터’ 라는 용어를 쓰는 게 맞는지…
-Closing-
정철 씨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북한 정부와 세계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정철 씨 본인이 꼭 하고 싶은 얘기였기 때문일까요? 정철 씨는 영어말하기대회 네 번째 도전에서 당당히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아쉬움 마음이 든다고 하는데요. 정철 씨와 다른 참가자들의 못다한 이야기!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이현주,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