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걸음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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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남한은 5일 간의 추석 연휴를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스크 착용을 비롯해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문들 닫았던 장소들도 하나, 둘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있는데요.

남한 사람과 탈북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일상 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삶을 배워가는 시간, ‘남북 생애 나눔 대화’도

3개월의 잠시 멈춤 뒤에 다시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 현장 <여기는 서울>에서 담아봤습니다.

인서트1: (현장음) 팀장님은 우리랑 같이 안 가세요?~~

이곳은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남북통합문화센터.

남한 사람들과 탈북민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곳인데요.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엔 ‘남북 생애 나눔 대화’가 펼쳐집니다.

인서트2: (이동엽) 남북 생애 나눔 대화를 운영하고 있는 이동엽 팀장이라고 합니다. 저희 남북 생애 나눔 대화는 굉장히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해요. 우리가 과연 통일이 되면 잘 살 수 있을까? 남북한이 떨어져 산 지 70년 정도가 지났는데 갑자기 만나게 되면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서 시작했는데 나오는 반응들을 보면 지금도 이런데 나중엔 더 힘들겠구나, 그러니까 지금부터 시작해보자 하는 취지에서 기획하게 된 프로그램입니다.

‘남북 생애 나눔 대화’는 지난 4월부터 시작됐지만 9회차까지 진행되고 중단됐습니다.

코로나비루스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도서관을 비롯해 관공서, 공공기관들이 잠시 문을 닫았던 바로 그 시점이죠.

석 달 만인 10월 6일…. 10회차 생애 나눔 대화가 다시 시작됐는데요.

이동엽 팀장은 감회가 남다릅니다 .

인서트3: (이동엽) 거의 반년 만에 다시 한다고 봐야 되죠. / (리포터) 왜요? / (이동엽) 느낌상.. 중간 중간에 재개를 하려다가 쉼표를 하고 더 심해지고 이런 것을 반복하면서 신청자가 모였다가 다시 모집을 했다가 또 취소되고 이런 진통들이 좀 많았죠. 저희가 1박 2일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얼굴을 맞대는 것을 최소화해달라는 (방역당국) 방침에 따라서 기획했던 것 중에 가장 큰 프로젝트였는데 그게 코로나 때문에 취소된 것이 가장 (타격이) 컸다고 봅니다. 인원수의 변화도 존재하죠. 집합금지라고 해서 몇 인 이상 모이면 안된다… 가 있었기 때문에 초기에 6명 - 8명 정도로 기획했다가 코로나 방역에 관련해서 최소 인원이 4명. 그런 인원의 감축도 코로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북 생애 나눔 대화엔 남한 사람, 탈북민 각각 두 명이 한 조가 됩니다.

가능하면 성별도 같고 연령대가 비슷한 사람들을 맞춰 짝을 지어서

최대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인서트4: (이동엽) 크게 봤을 때는 동일한 사회적 조건을 갖고 있고 출신지역이 다르다는 것 하나만 갖고 있어야지… 정말로 우리가 많이 다른가, 아니면 같은 부분이 있는가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동일한 비율로 설정하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고요. 중간에 진행자라고 하기에 애매모호해서 저희는 전문가라고 명시하고 있는데요. 참가자들만 모여 있으면 말을 잘 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전문가를 모셔요. 최소한 우리가 왜 여기에 모였는지, 모여서 뭘 할 것인지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부드럽게 흘러가게 해주는 역할을 해 오신 분들을 섭외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

이게 특별한 일은 분명 아니죠.

하지만 처음 보는 낯선 사람과 갑자기 자신의 삶을, 그것도 살아온 과정을 얘기하기란 쉽지 않겠죠?

그래서 각 자 자신의 이름 대신 별칭으로 서로를 부르고

각 조 별로 얘기를 끌어내 줄 전문가 한 명이 동석합니다.

인서트5: (조수연) 탈북자 교육, 치유 작업을 오랫동안 해 온 조수연입니다. 저는 남한의 일반인들과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게 하는 프로그램은 처음이었어요. 남한분들에게도 북한이 고향인 분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인 것 같아요. 막상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까 너무 아름다운 분들이다, 너무 좋은 분들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그 전에 가지고 있던 관념 속의 이질감이 많이 녹아 내리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특별한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에요. 내가 뭘 좋아하고 내가 어디에 가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뭔지… 뭐 이런 자기 생활 이야기… 처음 취지도 삶을 나누는 대화였기 때문에 최대한 편안하게 서로가 다가갈 수 있게 했고요.

‘남북 생애 나눔 대화’의 참가자들은

아침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반나절 가까운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는데요.

조수연 씨는 매회마다 사람들은 바뀌지만

서로에게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고 친근감을 느끼며 마무리되는 것은 모든 모임이 비슷하다고 하네요.

오늘 참가한 분들은 4,50대 여성들로 남한 사람과 탈북민 두 명씩 모두4명입니다.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진행을 해주는 조수연 씨까지 모두 5명이 함께 하는 거죠.

방역 문제로 최대인원 5명만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기 때문에 아쉽게도 참관할 수 없었는데요.

쉬는 시간, 복도로 나온 참가자들의 표정으로 분위기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눈만 보이지만 감정은 충분히 전달되더라고요.

짧은 쉬는 시간! 명찰에 ‘옥이’라는 별칭이 쓰여있는 참가자를 만나봤습니다.

인서트6: (백옥이) 안녕하세요. 저는 백옥이라고 합니다. 저는 워낙 이런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남한 분들의 생각이라든가 저희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신청하게 됐습니다. 기대를 엄청했는데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고 이 프로그램에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참가해서 프로그램이 좀 활성화 돼서 우리 남북문화 차이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밝은 색 빨간 상의를 입은 옥이 씨는 눈으로 웃어줍니다.

지금까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물었더니 아주 사소한 것을 나누는 시간이었다고 하네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가 좋아하는 장소 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곳…

인서트7: (백옥이)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딘가 했을 때 저는 고향이라고 답변을 했고요. 저희 함경북도 쪽에 칠보산이 있어요. 고향의 칠보산도 묘향산 못지 않은 명승지이거든요. 고향에 살면서 칠보산에 한 번도 못 가봤어요. 칠보산에 제일 먼저 가보고 싶어요. 빨리 통일이 돼서 고향에 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 더 간절해지네요.

옥이 씨에게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잊고 싶은 아픈 기억을 생각하게 하는 상처이기도 한데요.

하지만 이제 그런 얘기도 담담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인서트8: (백옥이) 아픈 기억.. 괜찮아요.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이런 날도 있지않습니까? 저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에 그치고 앞으로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것도 한번쯤 꺼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인서트9: (이동엽) 저희는 고향에 가고 싶으면 가면 되고 옛날 경험을 생각하고 싶으면 사진을 보거나 일기 자료를 보면 되는데 북한에서 오신 분들은 고향에 가질 못하기 때문에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그 기억이 사진이 되는 거고 얘기를 하는 것이 일기가 되기 때문에 옛날 이야기를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런 것을 공유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 이런 희망적인 사고를 최소한 한번쯤은 만들어 드린 게 아닌가 라는 생각입니다.

-Closing-

어린 시절의 추억은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이 됩니다.

우리가 추억을 공유한다는 건…

상대방의 삶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이겠죠?

옥이 씨는 생애 나눔 대화에 함께한 사람들에게

언젠가 ‘내 고향, 칠보산에 함께 가자’고 제안을 했다고 하는데요.

칠보산에서 오늘 함께 한 이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그날!

저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