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인도의 성자 ‘라마나 라하리쉬’는 경전을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내면의 자유를 얻으려면 진지하게, 끊임없이 자신에게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물어봐야만 한다고 전하는데요. 청취자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제대로 된 나를 아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적어도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소개할 작가의 작업 역시 이런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함경도 출신의 안충국 작가인데요. <여기는 서울>에서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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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트1-1: (안충국) 그냥 가볍게 보시면 돼요. 그렇게 깊게 안 보셔도 돼요. 이따가 설명해 드릴 거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에게 다가가 편안한 마음으로 보라고 권하는 이 남자! 바로 안충국 작가입니다. 그림을 한참을 들여다보던 관람객이 안 작가에게 설명을 부탁하네요.
인서트1-2: (관객) 자, 이제 설명하시죠. 작가님! / 네, 저는 작품할 때 보면 버려지거나 생명력 없는 애들을 가져오거든요. 가져와서 이 친구들이 스스로 낼 수 있는 목소리나 존재에 대해 좀 더 얘기하고자 했는데요. 존재라는 것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사람들이 그 존재를 알았을 때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얘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멘트도 애초에 가루일 때 존재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 예쁘거나 아름답거나 부드럽지 않으니 이런 것은 잘 선택하지 않고~
안충국 작가의 작품엔 시멘트, 모래, 못, 신문, 철 가루, 종이 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합니다. 때론 거칠고 투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론 이해가 어렵지만 작품이 주는 느낌은 따뜻합니다. 대신 그림에 제목이 없습니다. ‘무제’라는 무심한 단어 뒤, 따라붙은 숫자가 그림 밑에 붙어있을 뿐입니다.
인서트2: (안충국)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완성인 게 아니라 작가와 작품이랑 관객, 이 세 가지 요소가 소통이 됐을 때 어느 정도의 작품의 완성도가 올라간다고 봐요. 그림을 그려서 딱 걸어놓고 완성이라고 하는 거는… 저는 그건 별로 좋은 개념이라고 생각 안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작품에 제목이 별로 없어요. 제목을 달면 제가 탈북자이기 때문에 (작품에 대해) 오해를 하기 쉽거든요. ‘이 사람은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구나’… 그런 오해 때문에 저는 애초에 그냥 제목 없이 작업을 던져놓고 사람들이 먼저 보고 난 다음, 제가 설명을 해드리는데요. 그림을 본 관람객들이 ‘이 사람이 이래서 이렇게 작업을 했구나’라고 나중에 생각을 하게끔…
안충국 작가는 2009년, 15살 되던 해… 한국에 먼저 정착해 있던 아버지의 권유로 탈북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기에 한국에 와서도 자연스럽게 미술을 전공하게 됐는데요. 남북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던 그에게 크게 다가온 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인서트3: (안충국) 저의 정체성에 대해서 계속 질문을 해요. ‘나는 누군가’라는 질문부터 왜 내가 이렇게 성장해왔고 왜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고, 제가 성장해 오면서 겪었던 그러한 모든 흔적이 모여서 저의 자아를 표현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학생 신분으로2015년 ‘판옵티콘을 넘어서’라는 단체전에 참여했고 지난해 1월엔 ‘까마치’라는 이름의 합동 전시회에 참여했습니다. 같은 고향, 같은 학교라는 인연으로 안 작가를 비롯한 탈북 작가 3명이 함께 한 자리였습니다.
합동전시회에 함께 한 두 형은 북한의 일상과 실상 그리고 험난했던 탈북 과정을 작품에 담았는데요. 막내인 안충국 작가는 자신이 지나온 흔적과 시간을 담았습니다. 표현 방법도 달랐습니다. 형들은 인물화 위주의 사실적인 표현 그리고 전통적인 서양화 기법의 그림을 그렸다면 안 작가는 추상화로 표현했습니다. 이런 작품 활동은 졸업 후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데요. 지난 8월, 서울 종로의 작은 전시장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인서트4: (심혜진) 안녕하세요. 저는 서촌에 자리 잡고 있는 갤러리 비의 관장, 심혜진이라고 합니다. 안충국 작가의 작품은 일반적인 물감을 사용해서 터치를 한다거나 그런 작업이 아니었어요. 건축 현장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굉장히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대작도 많았고요. 반면에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있었는데 ‘낙서, 즐거움의 기록’ 이렇게 (전시회) 제목을 정해서 소소한 재미를 표현했어요. 건축 재료를 사용해서 무겁고 어두울 수 있는 분위기를 재미있는 낙서, 북에서 어렸을 때 했던 그런 낙서를 통해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작품이 재미있었고 특이하고 좋았습니다.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낙서, 즐거움의 기록’. 시멘트, 녹슨 못 사이로 오래되고 빛바랜 낙서들이 보입니다. 남한 어린이 또는 북한 어린이… 아니, 다른 나라의 아이들도 어렸을 때 한 번쯤은 해봤을 평범한 낙서들.
인서트5: (안충국) 만약에 제가 북한에서만의 성장했다면 이런 그림이 안 나올 거고 남한에서만 성장했다 해도 이런 그림이 안 나올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냥 저는 남한에서의 경험, 북한에서의 경험이 다 모여서 저라는 정체성이 탄생한 것이기 때문에… 이거 같은 경우는 북한 어린 시절의 경험을 낙서로 표현한 거고 또 이 건 제가 로또를 샀다가 안 돼서 그 종이를 붙인 건데요, 이때 제가 느꼈던 그 감정도 저 자신이고 이때 느꼈던 감정도 저 자신입니다. 특정한 한 부분이 제가 아니라 그냥 모두가 그냥 ‘나다’라고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낙서는 안 작가의 기억으로만 그린 것이 아닙니다. 같은 탈북민 친구들에게 부탁을 했다는데요.
인서트6: (안충국) 우리가 어렸을 때 성장해 오면서 낙서가 바뀌고 이럴 수가 있는데… 이거는 나쁜 것보다는 내가 봤을 때 우리가 그냥 성장하면서 순수했던 아름다움의 표시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부탁했어요. 너희가 어렸을 때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낙서를 그려달라!... 요것 같은 경우는 105번 탱크가 북에서 기록 영화에 굉장히 많이 나오거든요. 제가 정확한 의미를 몰랐는데 어제 누군가가(전시회장에) 와서 이런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전쟁이 일어났을 때 처음에 내려온 탱크가 이거라고. 제가 이걸 제가 알고 그린 건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노출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낙서나 작업들로 나올 수 있고요…
안충국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시간, 장소 그리고 기억입니다. 오래된 낙서와 녹슨 못이 시간을 상징하고 있다면 시멘트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이 시간과 장소가 담고 있는 기억이 바로 작품으로 표현되는 건데요. 안 작가의 설명 들어보시죠.
인서트7: (안충국) 밑바탕이 제가 시멘트입니다. 캔버스 위에 시멘트를 올리는 이유 중에 하나가 장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장소가 저한테 영향력이 되게 컸더라고요. 고향 함경도에서 제가, 아버지랑 미장하고 창고 짓고 이랬지만… 창고를 지은 다음에 그 위에 누군가가 와서 낙서를 하고 막 이래요. 처음에는 인위적으로 보이던 그 창고가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시간이 지나면 그게 우리 집의 일부가 되거든요. 이런 의미에서 그냥 낙서가 아니라 약간 시간이 지난 것처럼 흐릿 흐릿한 흔적을 남기려고 했고요. 시멘트는 그런 아버지와의 추억거리를 담으려고 소재로 가져와서 재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못 자국이나 긁힌 자국, 철가루나 이런 것들을 좀 더 부식을 시켜서 시간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Closing-
굳은 시멘트 위에 박혀진 녹슨 못 그리고 흐르는 녹물… 지난해 까마치 전시회에서 만난 안충국 작가의 작품은 이렇게 기억됩니다. 그리고 1년 후 다시 만난 작품에는 색깔이 입혀졌고 낙서 등 재미있는 장치들이 더해졌습니다. 젊은 작가는 이런 변화를 통해 자신을 잘 찾아가고 있을까요? 탈북 작가라는 정체성은 그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요? 다음 시간 안충국 작가의 남은 얘기, 들어봅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김인선, 에디터이현주,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