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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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도 쌓이면 커집니다.

코로나비루스 확산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외출을 자제하고 만남을 줄였던 사람들….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스트레스와 우울이 쌓여간다고 하소연 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우울함만 쌓이는 건 아니겠죠?

남한은 지난 12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 단계 하향 조정됐습니다.

학교의 경우 등교 인원 제한이 3분의 2로 완화됐고

과대 학교·과밀 학급이 아닌 경우엔 전교생의 매일 등교도 가능해졌습니다.

원격 수업을 받다가 오랜만에 등교를 하게 된 학생들은

학교에 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 좋다고 말하는데요.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는 작은 기쁨… 이런 것들도 모이면 커집니다.

그리고 이런 작은 기쁨들이 모여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탈북청년과 탈북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대안학교의 경우엔

학교 규모가 작다보니 일반 학교보다 빨리 일상 회복을 하고 있는데요.

<여기는 서울>에서 그 현장, 담아봤습니다.

인서트1: (현장음) 학교 종소리..

이곳은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한꿈학교’.

중국에서 입국한 탈북자녀들과 2-30대 탈북청년들이 한국 말과 남한 정규 교육 과정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7일, ‘한꿈학교’를 찾았는데요… 오후 수업이 한창입니다.

교실마다 10명 내외의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는데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익숙한 중국어로 대화를 하며 복도로 나옵니다.

한국어 대신 중국어가 더 많이 들리는 것 빼고는 평범한 학교의 일상인데요.

유독 선생님들이 쉬는 시간마다 분주하고 바빠 보이네요.

한꿈학교 4대 교장인 김영미 선생님이 그 이유를 들려줍니다.

인서트2: (김영미) 사실은 만나서 수다도 떨면서 마음을 많이 나눠야 하는데 학생들이 그동안 온라인 수업을 하느라고 그런 걸 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저희 한꿈학교에서는 영어캠프를 많이 가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학생들이 수학여행도 못 갔고 영어캠프를 한번도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도 너무 답답해 하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해서 선생님들이 회의 끝에 아침 수업을 하고 오후에 반별 자치활동을 하자.. 코로나로 조심해야 할 때라서 한꺼번에 나가기도 어느 한 장소에 놀러가기도 어려워서 저희가 반 별로 계획을 세워서 반별 친목도 다지고 선생님과 소통하는 시간도 가지려고 이런 시간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예년 이맘때면 학교마다 가을소풍이나 야외학습, 수학여행까지 다양한 바깥 활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학교 등교도 쉽지 않았으니 현장학습은 꿈도 못 꾸었고

같은 반 친구들끼리도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한꿈학교’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나마 전교생이 40명 내외라서 일반학교 학생들에 비하면 서로에 대해 잘 아는 편입니다.

그래도 선생님들은 같은 반 친구들끼리 나눌 수 있는 유대감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런 선생님들의 생각이 모여 특별 수업, 반 별 자치 모임 시간이 마련된 겁니다.

반 별 자치 모임은 정해진 내용도, 규칙도 없습니다.

각 반 선생님들이 어떤 주제로 모일지 자유롭게 정하고 준비했다고 하는데

당일까지도 학생들에겐 비밀로 했기에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들만 분주했던 겁니다.

수업하랴, 비밀리에 모임 준비하랴…

쉬는 시간에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여유조차 없는데도 선생님들의 표정은 밝습니다

유독 준비물이 많아서 다른 교직원의 도움까지 받았다는 분도 있네요.

인서트3: (박일동) 저는 한꿈학교 한국어반 담임을 맡고 있는 박일동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산으로 가서 산에서 보물찾기도 하고 맛있는 햄버거도 먹으면서 한국어로 ‘몸으로 말해요’ 게임을 하면서 즐겁게 놀려고 합니다. 행정하시는 선생님께서 거의 다 도와 주셨어요. 게임도 같이 생각해주고 피켓도 만들고 또 과자도 준비하고.. 그러면서 저희가 좀 설렜어요. 빨리 가고 싶어요~

잠시 수업이 비는 시간…

아이들 몰래 학교 근처의 뒷동산으로 가 보물을 숨겨 놓고

반 아이 인원수에 맞게 햄버거 주문까지 마친 박일동 선생님은 이제야 한숨 돌립니다.

수업하는 편이 낫지 않냐는 저의 질문에 박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네요.

인서트4: (박일동) 그래도 야외에 나가서 아이들도 몸으로 부딪치고 그런 활동을 통해서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게임에서 동물이나 과일이나 운동 그런 것들을 몸으로 말해서 그걸 아이들이 맞춰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한국어에도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아요. / (리포터) 야외에서 보물찾기를 하게 된다는 걸 반 아이들이 알아요? / (박일동) 아직 얘기 안했어요. 비밀이에요. 왜냐하면 그냥 서프라이즈 개념으로 조금 있다 얘기하려고요.

말하자면 반 별 자치 모임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깜짝 선물이네요.

학교 측에서 모든 것을 각 반 선생님들의 판단에 맡긴 만큼

2시반 이후 수업시간부터는 선생님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박일동 선생님은 쉬는 시간.. 여기 저기 흩어져있는 한국어 반 학생들을 불러 한 자리에 모이게 합니다.

인서트5: (현장음) 여러분 앉으세요! 코로나 때문에 못 나갔는데 올해 처음으로 산에 등산을 갑니다. 얕은 산이지만… 그래서 거기서 즐겁게 게임도 하고 신바우~ 보물찾기도 하고.. 즐겁게 놀 거니까 기대하면서 갑시다. / (학생) 영민이가 말하는데.. 삽! 삽도 가져가요? / (선생님) 삽을 왜 가져가요? / (학생) 보물 찾으니까요~

보물을 찾기 위해 ‘삽’을 챙겨가야 한다는 학생의 말에 선생님은 적지 않게 당황스럽습니다.

표정과 말투가 너무도 진지해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저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습니다.

몰래 감춘 어떤 물건을 찾아내는 과정을 즐기는 놀이가 보물찾기인데요.

학생들은 땅 속 깊숙이 선생님이 보물을 숨겨놓았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선생님은 손과 눈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아이들을 안심시킵니다.

인서트6: (현장음) 그런데 오늘은 아마 찾기 쉬울 거야. 어떤 보물인지 우리가 찾아봅시다~ / 네. / 그리고 거기 가서 저녁으로 햄버거도 먹을 거에요. 그리고 거기서 헤어질 거에요. 그런데 중요한 거! 지금 의정부에 코로나가 심해졌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이 손 세정제도 가져갈 거에요. 끝나고 나서도 손 씻고 위생 철저히 합시다~ / 가까워요? / 걸어서 15분.. 알았죠? 자… 그럼 출발할까요? / 와~

한국어 반 학생들 중 가장 어린 친구가 14살, 가장 나이 많은 친구가 21살이라고 하는데요.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들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기대와 설레임이 가득한 표정들입니다.

15분 거리에 있는 뒷동산엔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고, 누가 찾을까요?

너무도 궁금하고 따라가고 싶었는데요. 교장 선생님께서 조용히 만류하시더라고요.

혹시나 학생들이 저의 동행을 불편해 했을까요?

인서트7: (김영미) 학생들이 사실은… 꺼려하는 것은 아니고 외부에서 인터뷰도 하고 학생들은 잘 따라줬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한번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우선은 학생들끼리 같이 했으면 하는 게 있고... 이렇게 반 별 자치모임으로 나가는 게 없었던 것 같아요. 단체로 수학여행은 갔지만 저희가 한 반이 많지 않거든요. 제일 많은 반이 10명이에요. 그 반 친구들이 친목을 다지려고 하는데 그렇게 동행하는 거랑, 신경을 써야하는 부분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도 새로 오셔서 담임을 맡은 선생님들이 계세요. 그래서 학생 하고 좀 더 다정한 시간, 친목의 시간을 1초라도 더 갖고 싶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의 마음, 신난 학생들의 표정…

도저히 뒷동산까지 따라갈 수가 없네요.

인서트8: (현장음- 리포터) 선생님,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같이 쫓아가서 보물을 찾고 싶은데.. 안타까워라. 잘 다녀오세요. 감사합니다~

-Closing-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돌아보면 주위에 작은 행복들이 많이 널려 있다고 하니 그저 찾기만 하면 되는 거죠.

소소한 행복에서 큰 기쁨 얻기!

쉽지 않겠지만… 그게 바로 보물찾기가 아닐까요?

한글반이 떠나는 모습을 뒤로 다시 서둘러 학교로 향해 봅니다.

반 별 자치 모임을 준비중인 중등반, 고등반의 모습은 다음 시간에 전해드릴게요.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