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기 시작하면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고 합니다. 이 질문 속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이 ‘내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가 아닐까요?
결코 가볍지 않지만 나답게, 그리고 지금보다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질문인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나를 알기 위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그 과정을 작품 속에 담아가는 작가가 있습니다.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함경도 출신의 안충국 작가인데요. 지난 시간에 이어 <여기는 서울>에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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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트1: (안충국) 저의 정체성에 대해서 계속 질문을 해요. ‘나는 누군가’라는 질문부터 왜 내가 이렇게 성장해왔고 왜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고~~
작품을 하나하나 완성해 가는 동안 안충국 작가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작품으로 표현합니다.
인서트2: (안충국) 밑바탕이 시멘트입니다. 캔버스 위에 시멘트를 올리는 이유 중에 하나가 장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고향 함경도에서 제가, 아버지랑 미장하고 창고를 지었는데요. 시멘트는 그런 아버지와의 추억거리를 담으려고 소재로 가져와서 재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못 자국이나 긁힌 자국, 철가루나 이런 것들을 좀 더 부식을 시켜서 시간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안충국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 시간, 장소 그리고 기억을 담습니다. 오래된 낙서와 녹슨 못은 시간을, 시멘트나 흙, 모래 등은 장소를 의미하죠.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기억으로 안 작가는 작품 하나하나를 완성했고 그 결과물을 사람들에게 선보였는데요.
인서트3: (안충국) 못이나 이런 것들을 가지고 상처냐 피냐… 북한에서 의미하는 뭐냐고 묻는데 이런 거는 남한에도 있고 북한에도 다 있어요. 저는 이 친구들(작품 소재)이 가지고 있는 본질과 존재를 보여주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다 보여 줍니다. 그런데 내가 돌을 가져오면… 북한에서 돌을 가져오든, 독일에서 돌을 가져오든, 제주도에서 돌을 가져오든 똑같은 의미가 항상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해석할 때... 아무리 내가 의도를 솔직히 보여주려고 노력해도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죠.
그래서 안 작가는 작품에 제목을 달지 않았습니다. 관람객들이 자신의 느낌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북한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진 않지만 ‘탈북 작가’라는 틀 안에서만 해석되는 건 원치 않는다고 말합니다.
인서트4: (안충국) 저는 탈북 작가라고 불리는 것보다는 탈북민 작가로 불리는 게 개인적으로 더 좋고요. 그런 식으로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냥 ‘탈북민 작가’라고 얘기한 이유는, 탈북 작가라고 하면 탈북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그냥 탈북을 한 안충국이라는 아이가 그냥 작업 하고 있다라는 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소개를 할 때 탈북민 작가라고 소개합니다.
우리 누구나 살면서 했던 모든 경험이 ‘나’를 만들었듯이 안충국 작가 역시 남한에서 또 북한에서의 모든 경험이 자신을 만들었고 또 작품으로 표현된다고 설명합니다. 남, 또는 북. 어느 한쪽만 본다면 그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인서트5: (안충국) 저는 탈북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고 했지, 제가 탈북한 걸 싫어하거나 그것을 표현하는 걸 싫어하거나 이런 건 아니거든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이미지 때문에 되게 엄청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는데 아는 게 없어서 못 풀어가겠더라고요. 그때 당시의 정체성과 지금의 정체성은 좀 다른데 제가 대학교 1, 2학년 때까지의 정체성은 내가 남한 사람인가 북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졌어요. 그때 당시에는 참 어렸으니까 그랬는데... 남한 사람인가 북한 사람인가라고 따지는 것 자체가 지금에 와서는 어이가 없더라고요. 그냥 나는 난데! 내가 살아오는 동안의 모든 것들이 다 나인데.. 굳이 내가 거기서 남한 사람을 따지고 북한 사람을 따지고… 정말 웃기더라고요. 제가 살아온 모든 부분을 다 사랑하기 때문에 옛날 어렸을 때 했던 졸라맨들, 탱크도 그리고 고향의 이야기들을 되게 많이 넣어요. 그렇다고 북한 사상이나 이런 것들이 나를 만들었다가 아니라 그러한 모든 것들이 모여서 남한의 경험, 북한의 경험 이런 것들이 모여서 ‘안충국’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은 이렇게 되어간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안충국’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스스로에게 남한 사람인가 북한 사람인가를 물으며 혼란스러워 했던 대학시절의 작품은 어둡고 차가운 느낌이 가득했는데요. 점차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이 견고해지면서 따뜻함이 묻어나기 시작합니다.
인서트6: (안충국) 누구랑 만나고 어디에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작업이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큰 작업을 했었는데 요즘은 작업 공간이 좁아서 이렇게 작은 작업을 많이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이런 아기자기한 아이들(작품)이 나오고 컬러 같은 경우도 약간 누군가를 만났을 때 작업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요.
단색으로 거칠고 투박하게 표현되던 그의 작품들이 조금 부드러워지고 색깔도 입혀지고 있는데요… 이런 변화에 다른 이유도 있다고 하네요.
인서트7: (안충국) 요즘은 약간 컬러가 들어가는데 아마 여자친구 때문이 아닐까…. 여자친구를 만나기 전에는 항상 무채색으로 그림이 조금 어두웠었 거든요. 그러다가 여자친구를 만나는데 여자친구가 제 작업을 그렇게 좋아하지를 않아요. 작업을 하면서 저는 항상 즐거워하는데.. 저만 즐거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여자친구는 컬러가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취향이라서 생각을 해 봤거든요. 시각적으로 일단 즐거워야 그 사람들(관람객들)도 즐겁다는 생각이 좀 들어서 요즘은 좀 더 색깔이 화사하게 들어가고 있어요. 저만 즐거운 작업이 아니라 이제 다 같이 즐거울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요즘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서 민트색이나 핑크색을 쓰고 있는데 아마 여자친구가 영향력이 좀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안 작가는 꾸준한 미술활동을 하기 위해서 부업으로 공사현장에서 일도 합니다. 힘들 법도 한데 돈도 벌고 현장에서 작품의 다양한 소재를 구할 수도 있어서 좋은 점이 훨씬 많다고 하네요. 힘든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한 안충국 작가… 그에게 미술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 집니다.
인서트8: (안충국) 가끔씩 이런 질문을 해봐요. ‘내가 만약에 미술을 안 했으면 지금까지 이렇게 성장을 해왔을까’ 라는 질문이요. 만약 미술을 안 하고 뭔가 표현을 안 했다면 ‘어쩌면 정신병에 걸렸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한에 와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림이 있었기 때문에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고 그 과정 속에서 치유가 되지 않았을까... 즐겁게 재미있게 하려고 하고, 그렇게 작업을 이끌어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과 소통을 하는 재미도 점점 커집니다. 안충국 작가는 지난 10월7일부터 17일까지 경기도 안양에서 그룹기획전을 했고 다가오는 12월에도 합동기획전이 예정돼 있습니다.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는 그가 바라는 것은 딱 한가지!
인서트9: (안충국) 저에 대해서 계속 질문을 하면서 그거를 풀어가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제 작품을 보고 스스로가 해석을 하고 그 사람들이 스스로가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저의 의미를 다 알아봐 주기를 원하는 건 제 욕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와서 내 작업을 보고 ‘이거는 나한테는 이런 느낌인 것 같아, 이거는 내가 어렸을 때 어디 길가에 지나가다 봤던 낙서 같아’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도 저는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한 거죠.
-Closing-
젊은 작가는 그림을 보는 시간이 관람객에게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바쁘고 고달픈 일상 속에서 우리가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질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