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지난 10월 중순, RFA 서울 지국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북한 인권 단체 Liberty in North Korea, 줄여서 LINK(링크)라고 부르는 데요.
우리말로 풀어보면 ‘북한에 자유를…’ 이라는 의미입니다.
LINK에서 활동하고 있는 탈북 청년 Advocacy Fellow들이 서울 지국을 찾았습니다.
<여기는 서울>에서 이 반가운 얼굴들을 소개합니다.
인서트1: (안국역 안내 방송)
지하철 출구로 향하는 사람들…
출근 시간이 지난 평일 오전 시간엔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다들 제 갈 길을 가느라 바쁜데요. 출구 한 켠에 서서 서성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3명 이상이 모이니까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면서 서로의 근황을 챙기는데요.
바로 LINK에서 활동 중인 Advocacy Fellow들입니다.
발음도 어려운 Advocacy Fellow… 어떤 의미인지 먼저 들어볼까요?
인서트2: 안녕하세요. 저는 김다현이고 Liberty in North Korea에서 프로그램 담당자로 2년 반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단체는 북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는 세상을 꿈꾸면서 여러가지 활동과 사업을 진행하고 북한사람들과 함께 협력하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Advocacy Fellows Program 준비를 하면서 소리꾼이라고 할까. 전하는 사람들이라고 할까 저희도 되게 많이 고민을 했어요. 다른 뜻으로 오해를 살 까봐 영어단어를 이용하게 됐는데요. Advocacy라는 뜻은 ‘옹호하다, 지지하다 그리고 내가 믿는 것을 널리 말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Fellows는 ‘친구들, 동무들, 동지들’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같이 옹호하는 사람들, 친구들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에요.
우리말로는 ‘옹호하는 사람’이라고 풀어볼 수 있는데요.
이들이 옹호하고자 하는 가치는
자신의 가족, 친지, 친구, 이웃인 북한 사람들의 인권입니다.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Fellow로 활동할 수 있지만
주로 탈북 청년들이 Fellows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탈북 청년 Fellow는 2018년 1기를 시작으로 올해 3기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Fellow가 되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수입니다.
자신이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과 북한에서 자신이 보고 겪은 일들을 솔직히 밝힐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것입니다.
인서트3: (김다현) 프로그램 자체가 코로나 이전에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진행해서 총 4개월이었고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국내에 있는 게 더 안전해서 저희가 3개월짜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보통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지금 목소리를 안 내면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휴학을 하시고 아니면 하던 일도 잠깐 그만 두고 참가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프로그램은 1,2,3기 모두 8월부터 시작해서 좀 추워질 때쯤 마무리 짓고 1,2기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요번에는 한국에서 마무리 짓게 됐습니다. 사실 3~4개월이 20대초반이신 분들에게는 귀중하거든요. 그래서 되게 어려운 결정을 한다고 생각해요.
Advocacy Fellows Program 3기로 활동하는 탈북 청년은
탈북 브로커 출신의 청년사업가 하진우 씨와
한국드라마를 통해 바깥 세상에 눈을 떠 탈북했고 지금은 이미지 컨설턴트로 일하는 윤미소 씨
인서트4: 안녕하세요. 저는 함경북도에서 온 27살 하진우라고 하고요. 북한 사람들의 자유와 그리고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서 그 사람들의 인권과 탄압을 당하는 그런 실정들을 알려주고 싶어서 또 알리고 싶은 마음에 지원을 하게 됐습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양강도 혜산에서 온 윤미소라고 합니다. 편견이나 차별을 받는 게 싫어서 지금까지는 저의 신분이나 이런 부분을 너무 많이 감추고 살았고 이중인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링크의 다양한 활동들을 보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제가 이런 부분에서 선두에서 다리 역할을 하면 어떨까 싶어서 지원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에 더해 북한 출신 격투기 선수로 이름을 알린 장정혁 씨와
서강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있는 김동진 씨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인서트5: 안녕하십니까. 저는 2009년에 탈북해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격투기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장정혁입니다. 대한민국에 와서 (제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서 링크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김동진이라고 하고요. 함경북도에서 왔습니다. 작년에 우연한 계기로 링크라는 단체에서 하는 한국 대학생을 물론이고 북한 대학생, 다른 외국 대학생들이 모여서 활동하는 것을 보고.. 이게 북한의 인권을 전 세계인들이 주목하고 번지는 것을 보면서 나도 여기에 작은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 네 명의 펠로우 중 오전에 중간고사 시험이 있는 동진 씨를 빼고 역 앞에 모인 사람은 모두 3명,
LINK의 김다현 씨가 일정 공지를 시작합니다.
인서트6: (현장음) 간단하게 설명을 해드릴게요. 저희가 RFA 일정이 금요일 오후에 잡혀서 미리 얼굴을 보면서 설명을 못 드렸는데 오늘 RFA에 가서 자유아시아방송이 어떤 일을 하는지 배우는 시간을 가질 거고 국장님도 같이 나오셔서 펠로우님들 만나셔서 설명해 주신다고 했어요. 펠로우님들도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들, 말하고 싶었던 것들 정리해서 말을 해도 참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일단 우리 가죠~
일단 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 있게, 하진우 씨가 앞장섭니다.
인서트7: (현장음) 나가서 보면 있을 것 같애. / 따라 갈게요. / 길 아세요? / 알아요. 저 따라 오세요. / 벌써 잉어빵이 나왔어~
마치 가을 소풍을 나온 것 마냥 신나게 길을 걸어 도착한 RFA 방송국.
회의실에 자리잡는 순간 진지한 모습으로 자기소개를 하고 평소 궁금했던 질문들을 쏟아 냅니다.
인서트8: 회의실 현장음
궁금한 게 있는데.. 유튜브 하신다고 했는데 구독자는 몇 명 정도 되세요? / 웃음.. 만 3천명. / 뭐 유명 유튜버들에 비하면 작지만 프로그램에 따라서~~
그 사이 중간고사를 마치고 온 김동진 씨도 합류하고
북한에서도 들어봤던 RFA 방송, Fellow들은 많은 질문을 쏟아냅니다.
인서트9: 회의실 현장음
저는 브로커를 하다보니까 보위부쪽 사람들과 앉아서 얘기를 하면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이번에 자유아시아방송 듣는 누구를 잡았다.. RFA 이런 얘기는 없었어요. 자유아시아방송국. 미국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서 운영 중인지.. ~
인서트9: 저는 북한에 있을 때 탈북민들을 한국으로 보내는 탈북 브로커 일을 했는데요. 저는 북한에 있을 때 누구보다 평범한 아이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라는 사회는 저를 그렇게 평범한 아이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저희 집은 제가 13살 때 가난의 극한을 맞게 되는데요. 어떤 사람의 신고로 간첩으로 몰려서 온 가족이 김정일의 1호 방침검열 이라는 사업에 걸려서 보위부라는 기관에 2년 동안 온 가족, 친척들이 다 잡혀갔습니다. 2년동안 고문도 많이 당하고~
-Closing-
담담하면서도 또박또박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하진우 씨…
평범하길 바랬던 작은 소년은 한창 공부할 나이에 탈북 브로커라는 직업을 갖게 됐고
우여곡절 끝에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가 전하는 인생의 얘기들은 북한 실상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되고 있는데요.
앞으로 Fellow들은 활동 기간 3개월 동안
RFA 같은 방송국을 비롯해 한국에 있는 외국 대사관, 시민 단체, 국제 기구 등 다양한 곳을 찾아
관계자들을 만나며 일종의 공부를 합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위해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그 답을 찾아가는 공부인데요.
이날 청년들은 RFA방송에서 어떤 답을 찾았을까요?
Fellow들의 못다한 이야기…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