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북한에 자유를…’ 이라는 뜻을 가진 북한 인권 단체 ‘링크’는
매년 북한 인권 문제를 알리는 공개 활동가를 Advocacy Fellow라는 이름으로 선발하고 있습니다.
올해 3기, Advocacy Fellows는 4명의 탈북 청년인데요.
이들은 대사관, 시민 단체, 국제 기구 등 다양한 곳을 방문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각 단체의 활동을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는 서울> 에선 이 청년들의 이야기를 세번에 걸쳐 전해드리는데요.
오늘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인서트1: Advocacy라는 뜻은 ‘옹호하다, 지지하다 그리고 내가 믿는 것을 널리 말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Fellows는 ‘친구들, 동무들, 동지들’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같이 옹호하는 사람들, 친구들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에요.
3기 Advocacy Fellows는 대학생 김동진 씨, 청년사업가 하진우 씨, 격투기 선수 장정혁 씨
그리고 이미지컨설턴트 윤미소 씨 입니다.
3개월 동안 활동하는 Advocacy Fellows. 이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인서트2: 국회 방문
지난 9일엔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찾았습니다.
탈북민 북한인권운동가 출신으로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국민의힘 당 비례 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지성호 의원과
‘좋은이웃론’이라는 새로운 남북 관계를 주장하며 조명을 받고 있는
시대전환 국회의원 조정훈 의원과의 면담이 예정돼 있는데요.
처음 방문하는 국회 그리고 국회의원실이 어색하긴 하지만 따뜻한 환대에 긴장은 곧 풀어집니다.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 때론 웃음소리가 커지기도 하지만
오가는 질문과 답변은 결코 가볍지 않네요.
인서트3: (조정훈) 뭐가 젤 재미있었어요? / (윤미소) 재미있다기 보다는.. / (조정훈) 의미! 미안합니다~ / (윤미소) 모든 활동들이 다 의미 있지만 저희의 아픈 얘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준다는 게 사실은 너무 힘들었어요. / (조정훈) 쉽지 않죠. / (윤미소) 네. 그리고 그런 부분들을 얘기하고 그 사람들의 반응이라든가, 이런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라는 많은 고민도 있었고요. 그런데 내가 북한사람으로서 갖고 있는 아픔은 이렇지만 북한에도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살고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까 들어달라고 얘기를 했을 때 전달이 잘 되면서 들으신 분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주시고 이러면 많은 힘이 나고 ‘내가 이걸 하는게 맞구나’ 라는 생각도 많이 갖게 되는 것 같아요. / (조정훈)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같아요~
탈북민 중엔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이 아픈 기억이고
잊고 싶고 묻어두고 싶은 과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2014년에 한국에 온 김동진 씨도 정착 초반엔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고 하는데요.
학교에 다니면서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만났던 탈북민 북한인권운동가 지성호 씨의 특강을 들었던 계기로
21살 동진 씨는 북한 인권을 알리는 청년 펠로우로 지원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국민의힘 당 비례 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지성호 의원을 직접 만나게 됐네요.
인서트4: (지성호) 중국에서 잡힌 사람들을 꺼내왔던 그 과정들이.. 아마 그런 모습들이 우리 친구들이 보기에는 다 같은 탈북자의 삶을 사니까… 인과관계들이 있는 것 같아요. / (김동진) 저희도 북한하면 일반사람들은 그냥 핵이나 김정은 이런 뉴스를 통해서만 접하는데 북한에 사람이 살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인권을 침해 받으면서 사는지는 구체적으로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걸 뉴스나 미디어를 통해서 전달하기 보다는 저희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직접 얘기를 하면서 전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북한사람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될 것 같아서 참여한 거거든요.
먼저 온 사람으로써 그리고 공부하는 사람으로써 책임감을 느꼈다면서 앞에 나서준 선배들…
그리고 함께 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곁에 있기에 동진 씨는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정치인이기 이전에 같은 탈북민인 지성호 의원의 말에 동준 씨의 눈빛이 더 빛납니다.
인서트5: (지성호) 우리 같은 사람들이 침묵한다면 2천5백만명은 계속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죠. 정말 싫은 과거일지라도, 아픈 과거일지라도 용기를 낸다는 것, 그래서 주변에 알린다는 것. 그것은 굉장히 큰 거잖아요. 제도를 바꿀 수 있고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북한을 바꿀 수 있는 거에요. 어떻게 용기를 내는 가에 따라서 고향에 있는 친구들의 삶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거죠.
동진 씨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숨기면 숨길수록 상처가 더 커졌는데
막상 상처를 드러내고 또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을 말이죠.
동진 씨는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중학교 시절을 보냈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북한에서 왔다는 말을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하는데요.
막상 하려니 그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친구들이 동진 씨의 까무잡잡한 피부를 보고 필리핀 사람 같다고 하는 말에
장난처럼 ‘나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어. 다른 나라인데 한 번 맞춰봐’ 라고 했다네요.
다른 수업으로 대화는 자연스럽게 끊겼지만 동진 씨의 머릿속에는 그 상황이 계속 남아있었고
하교 후 먼저 집에 가는 버스를 탄 친구를 향해
동진 씨는 핸드폰 메모장에 ‘북한’이라는 글자를 적어서 보여줬습니다.
인서트6: (김동진) 괜히 말했다.. 내일 친구 만나서 어색하면 어떻게 하나.. 고민을 엄청 했죠. 그러다가 다음날 학교에 갔죠. 그런데 그 친구는 그냥 저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줬어요. 그래서 저는 이 세 친구가 나를 이해해주는데 세상 모든 사람들이 뭐라해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국어수행평가 시간이었어요. 그때 자유주제 발표를 했었는데 제가 살던 위성사진을 찍어서 PPT를 띄어놓고 친구들에게 여기가 내가 태어난 곳이고 여기가 내가 다니던 학교고, 내가 놀던 강이랑 산이다.. 라고 얘기를 해줬어요. 그러니까 친구들이 질문들을 엄청 많이 해줬어요. 5분 발표 시간이었는데 30분 훌쩍 넘겨서 수업 끝날 때까지 저는 이야기를 계속 했어요. 그리고 제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친구들은 박수를 쳐줬어요. 그때 저는 소름이 돋았어요. 감동이었고 그리고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상처로 인한 흉터는 남아있어도
그 흉터를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기에
동진 씨는 이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지난 10월 온라인에서 진행된 일반인들과의 만남 중 동진 씨의 말입니다.
인서트7: (김동진) 제가 중학교 때 힘들었던 것은 탈북이라는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은… 탈북한 김동진은 수천 개의 김동진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러분에게는 수 천 가지 좋은 면이 많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꼭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Advocacy Fellow로 활동하는 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또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배운 네 명의 청년들!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멀리 또 크게 울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천년 동안 떨어진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깨듯이 꾸준히 한 길을 가길 희망합니다.
인서트8: (하진우) 새도 남북을 자유로이 오가는데 우리만 못 가 보잖아요. 그래서 최소한 10년 후에는 북한이 열려서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가는 그런 일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 (윤미소) 제 친구들이랑 같이 이미지를 가꿔주고 꾸며주는 행복한 우정… 그런 것을 쌓으면서 있고 싶어요. / (장정혁) 앞으로의 10년이 제가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할 것 같아요. 만약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못 된다고 해도 최소한 피해주지 말고 성실하게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Closing-
인권… 참 중요한 개념하긴 하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본인들이 생각하는 ‘인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인서트8: (하진우) 기본적으로 딱 한가지만 얘기한다면 자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윤미소) 저에게 인권이란 내 외모는 내가 결정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인권입니다. / (장정혁) 언론의 자유도 없고 말 한마디 잘못해도 큰 피해를 입으니까 목숨까지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선택이 곧 인권이라고 생각합니다.
Advocacy Fellow들이 생각하는 인권… 북한에서도 당연하게 생각되는 그날을 꿈꾸어 봅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