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코로나비루스 3차 유행이 시작되면서 남한 정부는 방역 조치를 한층 강화했습니다.
거리두기는 격상됐고 학생들의 등교 일수, 식당 영업 시간도 다시 축소된데다가
커피점에서도 식탁과 의자를 치우고 오직 포장 구입만 가능합니다.
직장들도 재택 근무에 들어갔고 일상 생활은 다시 잠시 멈추고 있네요.
점점 추워지는 시기…
이 즈음만 되면 탈북민들의 연탄 나르기, 김장 담그기 봉사 소식을 많이 전해드렸는데요.
이 또한 코로나비루스 영향으로 많이 축소됐습니다.
다행히 지난 11월 17일, 3차 유행이 시작되기 전
100여명의 탈북민이 모여 현충원 묘비 닦기 봉사활동에 나섰습니다.
그 현장, 지난주에 이어 <여기는 서울>에서 담아봤습니다.
인서트1: (현장음) 앞으로 저희가 행사를 진행할텐데요. 가까이 좀 와주시면, 그리고 저희가 코로나 때문에 간격을 유지해야 합니다.그래서 반 보 정도, 옆 사람하고 반 보 정도만 거리를 두시고요. 앞, 뒤로도 반 보씩 거리두기 부탁드립니다. 자! 저희 비서진들은 자리 좀 잡아주세요~
탈북민 봉사 단체들과 그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리는데요.
마스크 착용은 기본이고
체온 확인과 참석자 명단 작성을 마친 사람들은
양 옆 사람 그리고 앞 뒤 사람과 거리 두기를 한 채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이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바로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 지성호 의원실의 비서진들입니다.
인서트2: (주은주) 네. 안녕하세요. 지성호 의원실의 주은주 비서입니다. 저희가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탈북자분들도 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고요. 처음에는 코로나19도 있어서 저조하게 참여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너무나 많은 분들이 신청해 주셨고 오늘 이 자리까지 와주셔서 (행사가) 커진 것 같습니다.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은
일제 강점기 시절,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법정 기념일입니다.
193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제정된 이후 올해 81번째를 맞습니다.
이 순국선열의 날이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데요.
바로 광명시 하나 향우회 총무 이인숙 씨입니다.
인서트3: 저는 광명시에 살고 있는 하나 향우회 총무 이인숙이라고 합니다. 오늘이 순국선열의 날이라고 하잖아요. 특히 오늘 제가 생일이거든요. 이 날을 한국에 와서 알았거든요. 그러니까 (생일과 순국선열의 날이) 같은 날이라고 겹치니까 너무 좋네요. 이런 날 와서 같이 봉사하니까 너무 마음도 뿌듯하고 기쁘고 행복해요.
광명 하나 향후회는 2011년에 모인 봉사 단체로
초기에는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 하나원을 수료하고 나온
같은 지역 탈북민들에게 반찬을 지원하고 도시락 배달 봉사를 했습니다.
점차 마을공동체 활동에도 참여하며 이제는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단체로 자리매김을 했는데요.
회원들 대부분은 직장생활, 자영업 등 자기 일을 하며 봉사를 병행한다고 하네요.
이인숙 씨는 이날 생일을 맞아 직장에 연차를 하루 신청했는데
현충원 봉사가 있다는 박정옥 회장의 말에 선뜻 자원하고 나섰습니다.
박정옥 회장의 말입니다.
인서트4: (박정옥) 여기 묻혀있는 선혈들의 묘비 닦는 봉사를 하지만 앞으로 남과 북이 이런 일이 없이 순조롭게 하나의 민족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런 마음으로 왔고요. 이 분들께 죄송하고요. 이 분들을 통해서 고향에 두고 온 부모, 형제를 그리면서 정착을 성공적으로 하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봉사를 하면서 더 성숙해지는 마음이 있어서 이제는 하나 향후회 6년 째 활동하고 있는데요.이분도 오늘 생일이라서 월차를 냈는데 이런 행사가 있다니까 자발적으로 오겠다 해서 같이 왔고 저도 사무실 전화를 잠깐 돌려놓고 나왔네요. 너무 보람 있어요.
국립현충원에는 독립유공자와 6.25 전쟁 참전 용사
그리고 경찰과 대통령 등 국가에 헌신한 유공자가 안장돼 있습니다.
총 56 묘역, 5만 기의 묘가 빼곡히 차 있는 현충원에서
이날 탈북민 봉사자들이 묘비를 닦을 구역은 6, 7 묘역입니다.
인서트5: (현장음) 저희, 지금부터 봉사활동이 시작돼요. 조화나 이런 것들은 건드리지 마시고 마른 걸레로 묘비와 그 아래 상을 닦아 주시면 되거든요. 그런데 여기가 층층으로 되어 있잖아요? 저희가 6번하고 7번이에요. 그래서 본인이 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위로 올라 가시고 7번! 어르신들은 올라가기가 힘드니까 여기서부터 할 거에요. 자! 그래서 대학생, 저쪽 위로! 걸레를 하나씩 드릴게요~
6묘역은 6.25 전쟁 전후와 70년대 전사자와 순직자를 모시기 위해 조성된 곳으로
총 834기의 묘가 안장돼 있습니다.
7묘역은 장병묘역으로 조성됐지만 일부 경찰관 묘역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곳으로
총 864위가 안장돼 있는데요.
100여명의 봉사자들이 약 1,700개의 묘비와 주변을 청소해야 하는 거죠.
하지만 7,80대 어르신들이 많기 때문에 층층이 경사진 묘비 청소가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인서트6: (현장음) 마른 걸레로 닦아야 돼요? / 자! 한 줄씩~ / 저 위로 올라가요?
경사진 묘역 중 높은 곳은 청년들이 담당하고
어르신들은 좀 덜 올라가도 되는 구역을 맡기로 했는데요.
걸레를 받아 들고 굳이 올라가시는 어르신이 계십니다.
평양 출신의 올해 71살된 한정옥 할머니입니다.
인서트7: (한정옥)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올라가봐야.. / (리포터) 힘드실 것 같아요. 어르신들이 오시기엔.. / (한정옥) 우리 참전들이, 용사들이 어떻게.. 묘지에 어떻게 안치됐는가 보고.. 어디 있는가 보고.. 또 이 자리가 훌륭한 자리지 않습니까? 우리가 싸우진 못해도 올라와서 다 돌아봐야 되잖아요. 그러잖아요.. (헉헉..)
가뿐 숨을 내쉬며 힘겹게 올라간 할머니는
허리 한번 잠시 펴더니 자리에 앉아 묘비를 닦기 시작합니다.
인서트8: (리포터) 지금 거의 등산 수준으로 (올라왔어요.) 어떠세요, 지금? / (한정옥) 너무 좋아요. 힘들지도 않고 우리 애국선열들이 묻어있는 이곳을 바라보면…우리가 여태까지 산 것도 다 이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오늘날의 행복을 찾았다고 말하고 싶고요. 둘러보니까 감회도 새롭고 대한민국을 위해 열심히 싸우고 애국선열들이 피 흘린 그런 곳을 바라보니까 우리도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살고 나라를 위해 희생은 못할망정 봉사를 많이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묘비를 닦다보면 묘비에 새겨진 이름에 자연스럽게 눈이 갑니다.
앞면에는 소속과 지위, 이름이
뒷면에는 사망 일자와 장소가 새겨져 있습니다.
너무 일찍,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
누군가의 아들이자 또 누군가의 아버지였을 사람들의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인서트9: 우리 자식 같은 분도 있고 아버지 같은 분들도 있고.. 많겠는데 (직접) 보니까 눈물이 나네요. 여기를 오니까요. 북한에 있는 자식들 생각도 나고 여기 묻힌 사람들도 다 제 동생 같고 아들 같은 분들이 묻혀 있겠는데.. 정말 가슴이 아프네요.
-Closing-
한정옥 할머니는 이번에만 벌써 세번째 현충원 봉사라고 합니다.
올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는데요. 오늘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인서트10: 나이가 드니까 감회도 새롭고 조국이 빨리 통일이 되는데 통일도 안되고 그러니까..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 열사들처럼 우리도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
못다한 탈북민들의 현충원 봉사 이야기! 다음 시간에도 계속 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