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겨울과 함께 시작된 코로나비루스 확산으로
남한에선 세번째, 고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됐습니다.
8일부터 연말까지 학원이 문을 닫고
술집, 식당, PC 방 등의 시설도 저녁 9시에 영업을 끝내야 합니다.
방역 당국에선 특히 연말 모임을 하지 말라 당부하고 있는데요.
개인적인 식사 모임은 물론 크고 작은 행사들도 모두 취소되는 분위깁니다.
다행히 코로나비루스3차 유행이 시작되기 전
100여명의 탈북민이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현충원에 모여 봉사활동에 나섰습니다.
현충원은 독립유공자와 6.25 전쟁 참전 용사
그리고 경찰, 대통령 등 국가에 헌신한 유공자를 안장한 국립묘지인데요.
바로 이곳에서 비석닦기 봉사를 하는 겁니다.
<여기는 서울> 에선 봉사활동 현장에서 만난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세번에 걸쳐 전해드리고 있는데요.
오늘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인서트1: (현장음) 저희, 지금부터 봉사활동이 시작돼요. 조화나 이런 것들은 건드리지 마시고 마른 걸레로 묘비와 그 아래 상을 닦아 주시면 되거든요. 저희가 6번하고 7번이에요. 어르신들은 올라가기가 힘드니까 여기서부터 할 거에요. 걸레를 하나씩 드릴게요~
100여명의 탈북민들이 봉사를 하는 곳은 6묘역과 7묘역.
6.25 전쟁 전사자는 물론 70년대 순직한 장병, 경찰들이 묻힌 곳인데요.
묘는 층층이 경사져 있습니다.
이날 참가한 봉사자들의 연령대가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높은 곳은 청년들이 담당하고 낮은 곳은 어르신들이 맡습니다.
경사가 낮은 곳이든, 높은 곳이든
일단 묘비를 닦기 위해선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야 하기에 어르신들에겐 쉬운 작업은 아닌데요.
그래도 이날 봉사자 중 최고령자 83살 장춘란 할머니의 표정엔 힘든 기색이 없습니다.
인서트2: (장춘란) 어째 힘들겠어요. 이런 분들이 땅 속에 묻혀 있고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이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죠. 이 선열들의 이 묘를 닦는 것이 정말 인생이 영광스럽고 가슴도 뿌듯하고 그래요.
오늘 닦아야 할 묘비는 대략 1,700개.
적어도 한 사람이 17개의 묘비와 주변을 청소해야 합니다.
장춘란 할머니도 묘비를 닦는 손이 멈추지 않는데요. 그러면서도 마음은 먹먹합니다.
인서트3: (장춘란) 어휴.. 어찌 울먹거리지 않겠습니까! 이 아들, 딸들이 이렇게 희생을 했는데.. 우리들은 한 일도 없이 이런 좋은 날에 와서 봉사를 하면서 마음껏 살고 있는데.. 정말 가슴이 뭉클하고.. 어떻게 한 입으로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하다는 그 마음밖에 없습니다.
6.25 전쟁 전사자의 묘를 닦으며 떠오르는 건 전쟁의 기억.
이젠 많이 희미해진 옛 기억이 소환됩니다.
인서트4: (장춘란) 뒤에서 폭탄이 떨어지고 소가 날아서 죽고.. 애를 업고 나온다는 게 베개를 업고 온 이도 있지, 피난 가서 있을 곳이 없어서 소 외양간에 들어가서 소똥을 베개 삼아 한 달 반을 살았어. 저 산골에 가서... 그런 거를 생각하면 이런 훌륭한 분들이 계시기에 오늘이 있었다는 거... 생각하면서 지금 비록 나이는 있어도 앞으로 조국통일을 위해서 한 몸 이바지할까 하는 궁리… 늙은 한 몸이라도 도와주고 싶은 욕망이 있지. 그런 마음뿐이에요.
묘비의 앞면에는 소속과 지위, 이름이
뒷면에는 사망 일자와 장소가 새겨져 있습니다.
묘비의 주인의 나이가 어린 경우 봉사자들은 잠시 주춤하기도 하는데요.
75살 김도훈 할아버지가 그렇습니다.
묘비 주인이 17살이라는 걸 확인한 할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이동도 하지 않고
닦고 또 닦고… 말없이 계속 닦기만 하는데요. 할아버지에게 다가가봤습니다.
인서트5: (리포터) 안녕하세요? / (김도훈) 네. / (리포터) 그냥 마른 걸레로 닦아도 된다고 하던데 유독 공을 들여서 닦으세요? / (김도훈) 생수 담아서 닦습니다. 6.25 참전해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돌아가신 것 생각하면서.. 우리 탈북민들이 많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닦습니다. / (리포터) 닳겠어요. 그만 닦으셔도 될 것 같아요. / (김도훈) 힘들지 않아요. 기분이 좋습니다. 꽃도 꽂고.. 깨끗해집니다.
김도훈 할아버지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묘비를 닦습니다.
봉사자들에게 마시라고 건네준 생수도 묘비 청소에 기꺼이 사용하면서 말이죠.
할아버지가 닦은 묘비는 흙먼지 하나 없이 말끔해 졌는데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김도훈 할아버지는
땀을 닦는 건지, 눈물을 닦는 건지…
손등으로 쓱쓱 문지르며 다른 묘비 쪽으로 자리를 옮기십니다.
뒷편으로 장춘란 할머니와 나란히 묘비를 닦고 있는 최분단 할머니가 보이네요.
인서트6: (최분단) 이게 내 아들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닦았어요.) 너희들이 희생되고 너희들의 업적으로 한 일이 없는 우리들에게 행복을 주고 모두 풍요롭게 살게 해주신 이분들의 덕이라는 걸 생각해요. 진짜 고맙고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기분 좋게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는 분도 있습니다.
가을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콧노래를 하기도 하는데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이희옥 할머니입니다.
인서트7: 강서구에서 온 이희옥입니다. 77살이에요. 힘들어도 (봉사)해야죠. 작년에도 와서 꽃다발도 놓고 이거(묘비) 닦기도 했어요. 평양에도 ‘혁명열사릉’이란 게 있어요. 거기 가서도 보기도 하고 참배도 했는데 여기(현충원) 오니까 무슨 느낌이냐면, 괜히 6.25 전쟁을 일으켜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아깝게 죽었다… 아까 우리끼리도 말했지만 너무도 마음이 아파요. 뭔 전쟁을 해가지고 이게 뭐야 글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 바쳐서 이렇게 된 게 너무 가슴 아파요. 우리를 위해서 싸운 혁명열사들이 마음 편히 주무시고 우리가 후대를 이어서 통일을 앞당겨야겠다는 이런 마음이 들어요.
탈북민들이 현충원을 찾은 11월 17일은 화요일.
30대에서 50대 사이의 중, 장년층은 봉사를 위해 일부러 휴가를 내기도 했답니다.
또 지하철과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오는 번거로움도 마다치 않았네요.
인서트8: 저는 청주에서 왔어요. 청주에서 온 한일선(입니다.) 아침 9시에 버스를 타고 동서울(터미널)에서 2호선을 타고 또 바꿔 타고 9호선으로 타고 여기까지 왔어요. / (리포터) 봉사하러 오다가 죽겠어요~ (웃음) / (한일선) 그래도 우리는 그것(봉사)이 영광이니까. / 저는 인천에서 온 김향슬이라고 합니다. 저는 보험설계사에요. 오후에는 저녁시간에 재가요양보호사 (일도) 해요. 우리 보험은 화,목은 출근 안해도 되거든요. 그래서 화, 목을 이용해서 봉사 있으면 합니다. 휴일날 혼자 놀면 뭐해요? 또 음식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오늘도 카스텔라 하나 해가지고 왔거든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음식을 나눠먹고 봉사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 이야기하고 이러는 게 너무 행복해요.
직장생활이나 자영업 등 자기 일을 하면서 봉사를 병행하는 이유!
주어진 삶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국 정착 7년, 봉사활동을 한지는 이제 4년됐다는 김향슬 씨는
지금까지 여러가지 봉사를 해왔지만 현충원은 이번이 처음이라는데요.
묘비 닦는 봉사를 통해 또 다른 의미의 감사함을 배웁니다.
인서트9: (김향슬) 묘비 닦는다고 해서 왔는데.. 우리가 처음 왔으니까 현충원을 다니면서 애국열사들의 뜻에 대한 것도 알아보고 봉사를 하면 더 뜻 깊지 않겠나…
-Closing-
눈에 닿는 곳까지 묘비가 가득한 이곳에선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숙연해집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타인을 위해 몸을 던진 사람들.
이분들 덕분에 오늘이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열심히! 아름답게! 산 자의 몫을 다하겠다… 다짐해봅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