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다사다난했던 2024년이 가고, 새로운 해를 맞는 날입니다. 다짐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일들을 아쉬워하며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되는데요. 익숙한 생활 방식 그대로를 유지한다면 매년 그랬던 것처럼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변화가 없으면 도약도 없겠죠? 변화를 원한다면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한데요. 탈북민들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2024년 한 해 [여기는 서울]에서는 변화를 꿈꾸는 탈북민들을 만나왔고 탈북민들이 참여하는 많은 현장을 찾았는데요. 제한된 방송 시간으로 미처 소개하지 못한 분들도 여럿 있습니다. 오늘은 그분들의 이야기를 <여기는 서울>에 담아봅니다.
[현장음] 2024 통일문화행사 청계천에서 여는 '통하나 봄' 행사는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유와 통일을 본다'를 주제로 문화예술을 통해 통일 공감대를 확산하고 북한 인권 실태를 알리며 통일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축제입니다.
유난히 햇볕이 뜨거웠던 6월, 서울 한복판 광화문 광장을 시작으로 청계천 일대에서 통일 문화 행사인 ‘통하나 봄’이 열렸는데요. 체험, 전시, 공연, 토크콘서트까지 다채롭게 구성된 프로그램들이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탈북민과 함께하는 이야기 공연인 토크콘서트를 통해 북한의 실상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한국에 정착한 지 1년도 채 안 된 20대 청년 강규리 씨가 무대에 올라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근래에 젊은 세대의 탈북이 늘면서 20~30대 북한에서 온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아지고 있는데요. 이날 강규리 씨와 비슷한 연배의 최윤서 씨도 무대에 함께 올라 진솔한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현장음-최윤서]안녕하십니까, 최윤서라고 합니다. 저는 북한의 경제 위기 시기로 알고 있는 1997년에 태어났고요. 2020년 3월까지 북한 함경북도 지역에 거주하다가 탈북해서 현재는 서울 소재 대학교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는 '탈북민의 가족'이라는 신분으로 살고 있었고요. 현재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윤서 씨와 규리 씨의 한국 정착 기간 차이는 약 4년이지만 북한의 변화는 꽤 컸습니다. 2023년 10월, 한국에 입국한 강규리 씨가 전한 북한 주민들의 어려움은 급격한 물가 상승이었는데요.
[현장음-강규리]북한에는 북한 자국 내에서 생산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물품이 다 중국에서 들어왔었는데요. 코로나 3년 기간에 물품이 하나도 못 들어왔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모든 물가가 10배씩 올랐어요.
[현장음-최윤서]환율로 얘기하는 게 가장 정확한 비유일 것 같아요. 한국 돈 1만 원이면 제가 있을 당시에는 북한 돈으로 8만 원 정도였어요. 그랬던 환율이 한 세 배 4배까지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10배라고 하면, 한국 기준으로 생각할 때는 어때요. 여러분? 물가가 올랐으면 환율도 올랐겠지 싶겠지만 그게 아니에요. 이게 불법적인 환율이다 보니까 환율이 오른다고 해서 물건이 가격이 같이 올라서 장사가 같이 활성화되는 게 아니라 환율은 환율 대로 오르고 물건 값은 물건 값대로 오르고 정부는 정부대로 통제하고 돈이 있어도 식량을 살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 된 거예요. 정말 거의 주민들을 모두 굶겨 죽이려고 작정했나 싶은...
젊은 세대라 그런지 두 청년은 드라마와 노래 등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컸는데요. 자연스럽게 한국 말투를 따라 하는 북한 청년들이 늘면서 휴대전화의 검문이 이루어지고 적발 시 휴대전화 회수는 물론 총살을 당하기도 했다는 규리 씨의 말에 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데요. 가장 충격을 받은 건 함께 무대에 오른 최윤서 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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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음-최윤서]저희 때는… (한숨) 통제해요. 하지만 그렇게 사형까지는 안 했었거든요. 이게 그만큼 해외 매체가 주민 동향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저희 때는 협박만 했어요. 너희 이렇게 하면 뭐 교도소로 보낼 것이다, 강제 노동도 시킬 것이다, 했지만 실제 하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실제로 하는 것 같네요.
윤서 씨는 북한의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하는데요. 토크콘서트의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 함께 하지만 북한의 실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무대에 올랐다고 합니다. 윤서 씨는 북한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목격했던 상황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직접 들어보시죠.
[현장음-최윤서]저는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아사자들도 실제로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21세기 아사자가 웬 말이냐 하지만 그 인간 생지옥이 바로 북한이고 현재 아사자는 존재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공부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아껴서 북한에 남은 가족과 친구를 위해 노력하는 윤서 씨와 같은 청년들을 다양한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가끔은 개인적인 얘기도 해야하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합니다. 5살이 된 딸을 위해 힘겹게 용기를 낸 청년도 있습니다. 바로 박서연 씨입니다.
[현장음-박서연]저는 한국에 온 지 5년밖에 안 됐어요. 한국에 오자마자 아기를 낳았고 얘기를 키우면서 일하면서 공부까지 하려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한 아이의 엄마이긴 하지만 95년생이에요. 저도 청년이라고 하면 청년이잖아요. 그런데 아기를 키우면서 나한테도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남들처럼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남들처럼, 직장이 화려하지도 않고요. 그렇지만 나는 지금 내가 훌륭해요. 내가 이만큼 성장했고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만으로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니까 우울증이 없어지더라고요. 나를 사랑하는 법은 몰라도 저는 그거는 알아요. 나는 지금 나 혼자서 충분히 잘 버티고 있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 서연아' 혼자 말로 위로하며 버텼고요. 그러니까 어느 순간 우울증이 있는지는 모르겠더라고요. 아직도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이겨낸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서연 씨는 지난 7월 성공적으로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의 경험담을 듣는 ‘벽을 넘은 인터뷰’ 토크콘서트에 보조 진행자로 사람들 앞에 섰는데요. 토크콘서트가 시작되면서 괜히 나왔다는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탈북 선배의 얘기를 듣고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며 ‘후회’는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현장음-박서연]좋은 말씀 많이 듣고 첫째는 나를 사랑하는 해야 되겠다는 걸 배웠어요. 그리고 생각해 보니까 내가 우울증에서 벗어났던 이유가 너무 힘들지 않아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저는 북한에서 힘들게 살았습니다. 7살부터 감자를 그냥 듬뿍 삶아가 지고 된장 하나 가지고 밭고랑을 타고 김매고 씨앗 심고 했어요. 7살 때부터요. 그런 내가 지금 여기 와서는 하나도 안 힘든데 행복에 겨워서 투정을 부린 것 아니었을까. 솔직히 북한보다는 많이 편해요. 육체가 편해요. 그래서 우리가 우울증이 오는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안 힘들기 때문에... 몸이 힘들면 머리가 힘들 시간이 없잖아요.
나고 자란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정착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고 고향에 대한 향수도 점점 짙어지고 새로운 사람,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건 어려운 일이죠. 그렇지만 분명한 건 탈북민의 상황을 이해하고 도우려는 남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겁니다. 그중의 한 사람, 남북통합문화센터 미래화합팀 이승민 팀장이 연말을 맞아 인사말을 전해왔습니다.
[인터뷰-이승민]남과 북의 지리적인 차이 또 사회 문화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지 같은 한민족 동포로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서로 간의 경험이나 시대적인 차이가 좀 달랐을 뿐이지 서로의 이해는 서로 얘기를 하다 보면 얼마든지 할 수 있거든요. 우선 올 1년 프로그램에 함께 참석해 주시고 서로 울고 웃고 또 경험에 대해서도 서로 이야기도 많이 해 주시고 따뜻한 감정을 많이 나눠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요. 지금 느꼈던 이런 감정들이 앞으로도 쭉 이어지고 더 깊게 느낄 수 있도록 더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올 한 해 정말 수고 많으셨고 내년에도 밝은 모습으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Closing Music-
청취자 여러분, 새해를 축하드립니다. [여기는 서울]은 새해에도 다양한 현장에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탈북민들의 목소리를 담아 오겠습니다.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