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색 까마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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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객지에서 같은 고향 사람을 만나면 처음 만난 사이라도 오랜 친구처럼 반갑습니다. 해외 여행을 갔을 때… 혹은 이민을 갔을 때..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들 반갑다고 하는데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마음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같은 고향, 같은 학교라는 인연으로 마음이 더 통했던 탈북 청년 세 사람. '까마치'라는 이름으로 합동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함경북도 사투리인 '까마치'는 서울말로 '누룽지' 인데요. 밥 밑에 가려져 그 존재를 나중에야 알 수 있는 '까마치'가 탈북민들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지은 이름입니다.

세 사람이 그림으로 전하는 까마치들의 이야기', 지난 시간에 이어 <여기는 서울>에서 전해드립니다.

인서트1: (현장음) 안녕하세요? / 어!! / 어서 오세요~~

미술 전시장이 다닥다닥 모여있는 서울의 인사동.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인사동 거리의 한 건물 3층에서 전주영, 안충국, 강춘혁 세 탈북 청년 작가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달 1월, 약 2주 동안의 시간이었는데요. 최소 하루에 100명 정도는 다녀가는 관람객들이 있기에 세 명의 작가는 하루도 빠짐없이 전시회 현장을 지켰습니다. 작품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각자의 작품을 설명해주기 위해서 말이죠.

전시회장에서 가장 먼저 관객들이 만나는 그림은 전주영 씨의 작품 '강 건너 마을은' 입니다. 일단, 화폭의 크기도 크고 강렬하고 어두운 색감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초록 넝쿨이 우거진 숲 사이로 보이는 파란 강. 그리고 강 중간엔 더 가지도 또 뒤돌아 오지도 못하고 서있는 청년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이 청년은 강 건너 검은 산에 있는 마을을 보고 있네요. 거기에 가고 싶어하는 걸까요? 전주영 작가는 숲은 탈북 과정에서 겪었던 두려움과 공포를 상징하고 강 가운데 서서 멀리 마을을 바라보는 남자는 당시 한없이 움츠러들던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인서트2: (관람객) 사람이 지금 강에 들어가 있잖아요. 이유가 있는 거에요? / (전주영) 네. 이제는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그런 곳이고. 강에 있는 이미지는 제가 지금 한국사회에서 정체성의 혼돈이라든가 아니면 저 자신이 내면이 거의 없는 껍데기랑 비슷하지 않나… 이런 개념에서 나온 이미지라서 강에서 서 있는게 좋지 않을까 해서 강에 (제 자신을) 세워 놨습니다. / (관람객) 뭔가 더 와 닿는게 있는 것 같아요. / (전주영) 감사합니다. / (관람객) 더 쓸쓸해 보인다고 그럴까? 색감도 약간~~

그렇다면 흐르는 강은 그 속을 잘 알 수 없지만 항상 변하는 남한 사회를 의미하는 걸까요? 이런 설명이 없이 그냥 그림을 보기만 해도 작가의 외로움과 쓸쓸함, 그리움은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 참여한 전주영, 안충국, 강춘혁 작가. 이 세 사람은 모두 한국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나이와 전공은 달라도 북한에서 탈북했다는 큰 공통점이 그들을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세 사람은 모두 함경도 출신인데요. 그래도 화풍은 차이가 있습니다.

강춘혁 작가는 가수이면서 그림도 그리는 재간둥이답게 인물화 위주입니다. 현대 화풍이 짙은 그의 그림은 전하는 메시지가 간결하고 정확합니다. 전주영 작가는 전통적인 서양화 기법의 그림을 그리고요. 안충국 작가의 그림은 추상화입니다.

인서트3-1: (안충국) 그냥 가볍게 보시면 돼요. 그렇게 깊게 안 보셔도 돼요. 이따가 설명해 드릴 거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에게 편하게 보라고 권하는 안충국 작가. 그림 앞에 관객은 한참을 시간을 보내고 사진도 찍어보고… 나중엔 설명을 부탁하네요.

인서트3-1: (관객) 자, 이제 설명하시죠. 작가님! / 네. 저는 작품 할 때 보면 버려지거나 생명력 없는 애들을 가져오거든요. 가져와서 이 친구들이 스스로 낼 수 있는 목소리나 존재에 대해 좀 더 얘기하고자 했는데 존재라는 것이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사람들이 있음을 알았을 때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얘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멘트도 애초에 가루일 때 사람들이 존재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 예쁘거나 아름답거나 부드럽지 않으니 이런 것은 잘 선택하지 않고~

관객들은 시멘트, 못, 신문, 철가루 등의 소재를 굳이 선택한 작가의 의도가 이제 이해된다는 표정이네요. 안충국 작가의 작품엔 거친 시멘트가 등장하고 못이 박혀있고 녹도 쓸어 있습니다. 작품의 면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한번 더 보게 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충국 씨의 친한 친구들도 이번 전시회를 찾았는데요. 평소 알지 못했던 친구의 속마음을 그림을 통해 느낍니다.

인서트4: (안충국) 내가 태어나서 고향이 생긴 것이 아니라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도 장소성이 항상 있었단 말이야. 남과 북이 분단되기 이전에도 그 장소는 계속 있었단 말이지. 그런 히스토리를 갖고 있고 그런 흔적들이 있을 때 내가 태어나서 그런 감각들을 내가 익힌 거지. (아~) 나도 모르게. 마을이나 집에서 벽이 떨어지고 못이 박혀있고 못이 녹슬고… 처음에 벽이나 이런데 어떤 아이가 가서 낙서를 하면 그게 어색하고 인위적일지 몰라도 그게 시간이 지나고 비 맞고 이러다 보면 그게 또 그 벽의 이야기가 되더라고. 그런데 한국에 와서도 영광에 갔는데 그런 감정들을 또 느낀 거야.

2009년, 15살 되던 해 충국 씨는 먼저 한국에 정착한 아버지 권유로 탈북했습니다. 북쪽에 있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기에 한국에 와서도 미술을 공부했는데요. 가정형편으로 중도에 미술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충국 씨가 다시 그림을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늘 이끌어 주던 좋은 인연들이 있습니다. 바로 고등학교 재학시절에 만난 남한 선생님, 그리고 같은 고향 형들인 강춘혁 씨와 전주영 씨 입니다.

두 형들이 북한의 일상과 실상, 그리고 험난했던 탈북 과정을 작품에 담았다면 충국 씨는 흔적과 시간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제목은 '무제'. 작품이 표현한 흔적과 시간은 충국 씨의 고향 땅일 수도 있고 남한일 수도 있고 다른 어떤 곳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으로 장소를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인서트5: (안충국) 흔적이라는 것 자체가, 내가 탈북작가로써 탈북자라고 했을 때.. 돌을 가져오는 경우, 북한에서 돌을 가져오든, 독일에서 돌을 가져오든, 제주도에서 돌을 가져오든 똑같은 의미가 항상 되더라고. 사람들이 해석할 때. 그래서 내가 제목이 없거든. 아무리 의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해도 내 경험이랑 다른 사람이랑 경험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감정도 다 다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못이나 이런 것들을 가지고 상처냐, 피냐, 북한에서 의미하는 뭐냐고 묻는데 이런 거는 남한에도 있고 북한에도 다 있단 말이야. 나는 그런 장소성을 얘기 하는 거야.

충국 씨의 말이 점점 빨라집니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그만큼 많다는 말이겠죠?

인서트6: (안충국) 물론 이런 감정들의 모든 것은 내가 그 고향에 살았다는 것 때문에 있었던 거지만.. 그렇게 해석을 해도 나의 정체성이랑 관련이 있으니까 상관은 없지. 그리고 사람들이 봤을 때, 형의 감정이랑 내 감정이 다르잖아. 형이 그냥 봤을 때 이게 무엇인 것 같다.. 하거나 이상하네 하고 지나간다면 형의 경험이나 형의 감정을 작업의 일환으로 사용하고 싶었어. 그리고 작업의 완성도를 올린다는 것은 나랑 작품이랑 관객, 세 개가 소통이 잘 됐을 때 작품의 완성도가 올라간다고 생각해. 작품을 걸었다고 해서 완성이 아니라 형이 와서 느끼고, 다른 사람이 와서 느끼고,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 사람의 감정이잖아~

강춘혁, 전주영, 안충국… 이 세 사람의 그림이 삼인삼색이듯 이들의 그림을 보는 관객들의 감상 역시 모두 다릅니다. 그래도 중요한 건 작품들을 보고 우리가 어떤 감정을 함께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Closing-

인서트7: (남한 관객) 이런 활동들,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고향이나 체제에 관련해서 담고 있는데 이런 작품활동을 하시는 게 대단한 것 같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어요.

함경북도 세 남자의 작품 전시회 '까마치'의 남은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도 계속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