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색 까마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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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세상에 수 많은 사람 중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하늘이 맺어준 깊은 인연으로 함께 할 수 있답니다.

함경도에서 살 때는 서로의 존재도 몰랐던 세 청년이 남한 땅, 그것도 같은 학교에서 비슷한 공부를 하고 있다면 이 세 사람의 인연은 보통이 아닌 거죠?

밥 밑에 가려져 그 존재를 나중에야 알 수 있는 누룽지가 자신들, 바로 탈북민들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까마치’라는 이름으로 합동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까마치는 함경도 사투리로 누룽지를 뜻한답니다.

<여기는 서울>에서 세 차례에 걸쳐 전해드리고 있는데요. 세 청년의 삼색 까마치 이야기, 오늘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인서트1-1: (현장음- 외국인) 너무 궁금해요. / (강춘혁) 저거요? 제목은 정체성의 혼동. / (외국인) 혼동, 몰라요. 정체성은 알아요. / 혼란~

전주영, 안충국, 강춘혁 세 탈북 청년 작가의 전시회장.

지난 1월 8일부터 21일까지 2주동안

세 청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10시간동안 이곳을 지켰습니다.

전시회장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서요.

전시회장이 관광지로 손꼽히는 서울의 인사동에 있다 보니 외국인들도 종종 방문하는데요.

관심을 갖고 일부러 찾아온 경우도 있습니다.

인서트1-2: (외국인) 옛날에 그렸어요? 아님 최근에… / (강춘혁) 제가 4년 전에 그린 거고요. 우리의 자화상? 현재 한국에 있는, 탈북해서 온 북한 친구들의 자화상이예요. / (외국인) 자화상? ~

외국인 관람객은 서툰 한국말을 섞어서 말하고 탈북 청년들은 서툰 영어를 섞어서 말합니다.

때론 말이 안 통해서 진땀이 나는데요. 이럴 때 유용한 게 바로 그림입니다!

전통적인 서양화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전주영 작가의 작품은 설명을 통해 이해가 깊어지고

추상화를 그리는 안충국 작가의 작품은 설명을 들으면 그림을 다시 한 번 보게 됩니다.

인물화 위주의 그림을 그리는 강춘혁 작가의 작품은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데요.

어떤 그림은 웃음도 나고 재미도 있습니다.

현실을 과장, 왜곡, 비꼬면서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는 풍자법을 즐겨 쓰기 때문입니다.

인서트2: (외국인 관람객) 정치 이야기… / (강춘혁) 네. 풍자하고. / 예~ 풍자? / (강춘혁) 갤러리 오픈이, 전시 오프닝이 1월 8일이잖아요. 이게 김정은 생일이거든요. / 아~ 오케이. 이제 이해해요. / (강춘혁) 저 밑에 욕도 있어요~

그림엔 빨간색 글씨로 ‘해피 버스데스 – 생일을 축하합니다’ 라고 써있습니다.

생일 케이크를 받은 당사자는 통통한 아이인데… 김정은 위원장과 비슷하게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니겠죠?

이 아이가 받은 생일 케이크의 장식은 절규하는 사람들의 모양이고

케이크 위에 꽂힌 촛불은 모두 십자가 모양입니다.

서양에선 묘비를 십자가 모양으로 세우곤 하죠.

세 탈북 청년들의 작품 감상을 모두 마친 파란 눈의 청년, 댄의 소감을 들어봤습니다.

인서트3: 댄이라고 합니다. 북한인권단체에서 일합니다. 호기심도 있고 궁금해서 (전시회장에) 왔습니다. 베스트라고 하면 어렵긴 하지만 저쪽에 정치테마 나오잖아요. 우리 단체와 관련된 테마가 나오니까 제 눈이 확 당겼어요. 숲은 좀 어려운 그림이에요. 그 작가한테 조금 더 듣고 싶어요. 어떤 마음으로 그렸는지 궁금해요.

댄이 말하는 ‘숲’ 그림이란 전주영 작가의 작품 ‘강 건너 마을은’ 입니다.

전시회장 입구에 가장 크게 걸려있네요.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감의 숲과 강 그리고 강 가운데쯤 서 있는 한 남자까지

누구나 그림 속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인서트4: (전주영) 여기서 살면서 힘든 거, 그런 것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장소. 그러니까 스페이스…

어두운 숲은 탈북 과정에서 겪었던 두려움과 공포,

강 가운데 서서 멀리 마을을 바라보는 남자는

남한 정착 초기 한없이 움츠러들던 작가 자신의 모습이라는 설명에 ‘댄’은 한참이나 그림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전시장을 떠나며 세 탈북 청년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서트5: (댄) 대한민국에서 파이팅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경험있는 걸 이 세상에 공유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북한에서의 기억과 경험 그리고 탈북, 정착 과정의 감정까지

모두 화폭에 담은 전주영, 안충국, 강춘혁 작가.

전시장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작품을 통해 탈북민과 북한을 좀 더 깊이 있게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하는데요.

왕십리에서 왔다는 48살, 장인영 씨입니다.

인서트6: (장인영) 친구랑 오랜만에 밥 먹고 잠시 시간이 좀 남아서, 또 여기가 무료이기도 해서 한번 들어와 봤거든요. 제가 TV에서 강춘혁 씨 저분을 봤어요. 아는 그림이 여기 있어서 보게 됐죠. / (리포터) 어떠세요? 직접 작품을 접하고 설명을 듣고 보니까.. / (장인영) 실력도 좋으신 것 같고 그쪽(북한)에서 살면서 느꼈던 의식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그림에 많이 반영된 것 같아서 되고 새롭고 잘 그리신 것 같아요. 실력이 좋으신 것 같아요. 반응도 좋은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기분이 좋네요.

작은 화폭에 담긴 흑백으로 그린 눈동자 그림은 강춘혁 작가의 작품입니다.

눈동자를 잘 들여다보면 어떤 장면을 비추고 있습니다.

총살, 구타, 손이 묶여서 줄줄이 끌려가는 사람.

그래서 눈동자는 슬프거나 놀라거나 두려워 보입니다.

그림의 제목은 잔상, 네가 본 폭력 그리고 가짜 평화 입니다.

인서트7: (강춘혁) 저는 저의 아픈 과거를 그리는 것이 아니에요. 제가 살았던 과거와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그 사회의 현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저의 아픔이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네요. 그 사회의 아픔을 얘기하는 것이라서 저렇게 계속 그리는 것이고… 왜냐면 저게 사실이니까요. 미디어에 비추는 것도 평화이니 뭐니.. 김정은도 왔다갔다 했고 평양을 많이 보여 주잖아요. 어떻게 보면 평양은 북한이 아닌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평양사람들은 또다른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고 북한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사회고, 다른 사회, 분리된 사회이고 세계에 보여주기 위한 허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그래서 제가 살았던 곳, 평양을 배제한 남은 곳의 삶이나 스토리를 계속 풀어내는 거고. 그래서 제대로 알아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또 다른 그림 속 청년은 양쪽 눈동자에 다른 국기가 비추고 있습니다.

한쪽은 태극기, 다른 한쪽은 인공기네요.

인서트8: (강춘혁) 저것은 제목이 정체성의 혼동이고요. 우리가 이 사회(남한)에 발을 들여서 한 국민으로 살고있지만 그 사회 속에서의 혼란, 나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그런 경험으로 인한 스스로의 혼란, 혼동, 정체성 이런 것들을 만든 작품이고요. 저의 자화상이라고 말씀드려도 될 것 같아요. 한쪽에는 인공기가 있고 한쪽에는 태극기가 있는데요. 저희가 양쪽 국가를 다 경험한 세대잖아요. 그렇다보니까 양국에 대한 혼란? 이런 것들을 보여주고자 만든 작품이에요.

-Closing-

가마솥, 밥을 박박 긁어내면 맨 마지막에 나오는 까마치…

내면의 까마치를 조금씩 드러낸 세 명의 작가를 시작으로 더 다양한 색깔의 까마치들이 나타나기를 바래봅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