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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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말과 글은 개인의 삶을 바꾸고 더 나아가 역사도 바꿀 수 있습니다. 말의 힘, 글의 힘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하니까요.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탈북민들에게 영어교육을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인 TNKR - Teach North Korean Refugees는 탈북민들이 본인들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도록, 그것도 영어로 전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TNKR에서 영어를 공부하는 탈북민들은 1년에 2번 영어말하기 대회를 통해 한 자리에 모이는데요. 지난 3월 20일 토요일, 13번째 영어말하기대회가 열렸습니다. 그 현장, <여기는 서울>에서 담아봤습니다.

인서트1: (현장음) Please don't take photo~

이곳은 서울 남산 근처에 있는 대형 호텔의 연회장. 스피치대회가 펼쳐지는 곳이라 하기엔 너무도 조용합니다. 코로나비루스 여파로 참가자와 심사위원 그리고 초청된 후원자 몇 명만 함께 하기 때문인데요. 체온을 측정하고 방명록을 기록한 후에야 착석이 가능합니다.

행사가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더 조용해 집니다. 요즘 한국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행사들은 참석자 규모를 줄이고 인터넷으로도 실시간 생중계하는데요. 영어스피치대회는 사진촬영은 물론 개인 사회관계망으로도 실시간 촬영을 금지한다는 공지를 합니다. 행사가 시작된 후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기자의 출입도 통제를 하는데요. 참가한 탈북민의 얼굴공개 방지와 신변보호 그리고 심사의 공정성 때문입니다.

5분 이상 참가자들과 관련한 여러가지 전달 사항이 이어진 후에야 첫번째 발표자가 소개되네요.

인서트2: (현장음) First speaker is Joshep… (박수소리)

한국말이 아닌 영어로 말해야 하는 자리… 얼마나 떨릴까요? 발표자들은 정해진 주제로 10분간 청중들 앞에서 영어로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대회가 시작된 2015년부터 매 회 주제는 항상 다릅니다.

보통 그 해의 주제가 발표되면 참가자들은 먼저 한글로 글을 쓰고 그 글을 다듬은 후 영어로 번역을 합니다. 그리고 TNKR에서 공부를 도와주는 외국인자원봉사자들과 영어 표현을 확인하고 수정하면서 대회를 준비하죠. 이 과정이 보통 2-3 개월이 걸립니다. 또 이렇게 영어로 작성된 글을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암기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스피치대회 참가는 보통 일이 아니죠.

13번째 영어말하기대회는 2019년도에 진행했던 주제를 다시 한번 반복했다고 하는데요. 이유가 있다고 하네요. TNKR이은구 대표의 말입니다.

인서트3: (이은구) 오늘의 주제는 I'm from North korea'입니다. '나는 북한에서 왔습니다'인데 그 한 문장이 되게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안에서 본인이 북한이 고향인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참가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발표자의 삶이 녹아있습니다. 고향에서 지낸 어린 시절의 이야기, 탈북 이야기, 정착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꿈 이야기 등 자신의 삶을 통해 느끼고 알게 된 자유에 대해서, 인권에 대해서 또 정착에 대해 말하니까요. 이은구 대표는 바로 그런 점이 영어말하기대회가 열리는 이유라고 설명합니다.

인서트4: (이은구) 저는 영화 스피치 대회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게 이걸 통해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거. 또 어떤 친구들은 힐링할 수 있는 기회, 화를 분출하는 날이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그냥 영어 스피치 대회는 탈북민들을 위한 기회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싶네요.

이번 대회 참가자는 6명. 발표시간이 10분을 넘기면 평가에서 감점을 받게 된다는 규칙이 있어서인지 빠르게 진행됩니다. 예정된 시간에 참가자들의 발표가 끝나고 심사위원 세 사람은 연회장 한 켠에 마련된 대기실로 이동하는데요. 지금까지는 이렇게 심사위원의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행운권 추첨을 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지만…

인서트5: (현장음) take watch the video we've prepared for us. + 연주곡영상음

이번엔 사전에 녹화한 TNKR 회원들의 축하공연 영상으로 대신합니다.

무대 뒤에 있던 참가자들도 객석에 자리잡고 결과발표를 기다리는데요. 20여 명이 모여있는 행사장에서 들리는 소리는 축하영상에서 나오는 연주곡 소리뿐 입니다. 심사를 마친 심사위원들이 행사장에 재입장하면서 행사장은 술렁입니다. 다들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어떤 표정인지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수상자가 발표되는 순간에 긴장하고 있었겠죠? 수상자 발표도 빠르게 진행됩니다.

인서트6: (현장음) First place, In 13th English Speech Contest for Glora~~

영광의 1위는 박유성 씨에게 돌아갔습니다. 박유성 씨는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는데요. 졸업 후에 자기 왔던 탈북 경로를 되짚어 여행하면서 그 여정을 영화로 제작했습니다. 스피치 대회에서도 그 내용을 전했는데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까만 강은 다시 보니, 아름다운 관광지였답니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만들고, 풍경은 왜 다르게 느껴졌는지 유성 씨는 담담하게 영어로 자신의 생각을 전했습니다.

수상자 발표와 함께 영어말하기대회가 정리됩니다. 사회적거리두기로 뒷풀이 같은 작은 만남도 함께 하지 못했지만 참가자 몇 명과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서울의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허요셉 씨입니다. 남한에서도 흔치 않은 남자 간호사인데요. 가장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을, 13번째 영어말하기 대회의 첫번째 발표자입니다.

인서트7: 이번에 TNKR 스피치 대회에 참가하게 된 허요셉입니다. 역시 소통을 하자면 언어가 진짜 중요하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고요. 예전부터 참가하고 싶었는데 제가 3교대를 하다 보니 공부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이번에 영어 배우러 갔다가 은구 대표님이 한번 참가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참가하게 됐는데 열심히 노력 못해서 아쉬워요. 그래도 여기 참가했다는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하고 되게 뿌듯합니다.

-Closing-

요셉 씨는 한국에 정착한지 16년째지만 간호사로 근무한지는 이제 2년됐습니다. 뒤늦게 간호사가 된 자신의 이야기를, 그것도 영어로 하려니 엄청나게 힘들었다고 웃으며 말하는데요. 남한에 정착하며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던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서 용기를 냈답니다. 요셉 씨는 어떤 얘기를 전했을까요?

인서트8: (허요셉)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성이다 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고 제가 그 시험을 보면서 한 번에 된 건 아니거든요. 7전 8기 정도. 그 정도로 했거든요. 그런데 그걸 이겨내면서 그래도 매일매일 그리고 진짜 느리더라도 멈추지 말고 목표를 향해서 꾸준히 가라 쉬지 말고. 그리고 또 자신이 네가 맞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가라. 그리고 자신에 대한 확신. 그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목표가 없으면 저희가 항구로 갈 수 없듯이~~

요셉 씨의 못다한 이야기!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