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브라보 마이 라이프] 소박한 새해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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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2023년, 순조로운 출발을 하셨나요? 새해들어 처음 인사드리네요. 새해를 축하합니다~

올해는 검은 토끼의 해라고 하는데요. 토끼처럼 영특하고 지혜롭게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살까기를 해서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게 올 한해 가장 큰 소망인데요. 식욕은 왕성한데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저한테는 쉽지 않은 도전이거든요. 걷기 운동부터 시작해서 올해는 살까기에 꼭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보려고요.

저처럼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도 저마다의 소망을 품고 2023년을 힘차게 출발합니다. <여기는 서울>, 오늘은 소박한 소망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탈북민을 만나봅니다.

(현장음) 아이고,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 안녕하세요. / 네. 좋은 아침입니다. / 우리 사장님, 가게 정리하시나 봅니다. / 네. 애들이 올 때가 돼서요. / 아무튼. 우리 사장님 아주 멋지셔~

이게 무슨 상황일까요?

실제 상황은 아니고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인데요. 지난해, 정확히는 2022년 12월 6일부터 10일까지 5일 동안 강서구에 위치한 남북통합문화센터 공연장에서 선보였던 통일강연극입니다. 제목은 ‘신 가족의 탄생’. 부제가 ‘우리는 통일가족’입니다.

탈북민 강화옥 씨도 통일강연극 무대에 올랐습니다.

(강화옥) 이번 내용은 거부감이 없이 남북한 사람들이 다 봐도 공감이 될 수 있는 내용이었거든요. 새 가족, 신 가족이라는 의미로 탈북민 여성분하고 아들, 그리고 남한 출신의 문방구 사장님하고 딸 이렇게 두 가족이 한 가족이 되는 내용들을 담았거든요. 문방구 사장님이 건물주였거든요. 주인공 북한 여자가 건물 청소하는 청소공이에요. 저는 함께 일하는 사람인데요. 그 두 분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간단히 했습니다.

화옥 씨는 영란이라는 인물로 두 주인공을 이어주는 사랑의 오작교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번 연극까지 무대에 오른 지 올해로 8년째인데요. 사실 강화옥 씨는 전문 배우가 아닙니다. 탈북민들의 정착과 교육을 지원하며 통일운동을 활발하게 펼치는 사단법인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 줄여서 ‘새조위’. 바로 이 민간단체에 소속된 직원입니다. 평범한 직원이 어떻게 무대에 서게 됐을까요?

(강화옥) 내가 올해 만 65세거든요. 이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또 대표님이 올해도 무조건 하라고 해서 하게 됐는데 너무 좋았어요. 우리 직원이 한 명이 있어야 그 연극 성원들에게 어려운 일들이 없는지, 식사도 또 애로 조건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되니까 그래서 제가 했습니다. 통일 연극을 우리 8년인가 9년 차 하고 있는데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빨리 빨리 그걸 대처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직원이 항상 한 명은 같이 해야 된다는 게 있어요. 그래서 항상 나밖에 없어요.

탈북민이 한 명이라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게 새조위의 원칙이랍니다. 통일강연극에 탈북민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거죠.

강화옥 씨는 새조위에 소속된 직원이면서 탈북민이기에 자격요건이 충분했습니다.

평소 화옥 씨는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한 새조위의 교육프로그램을 돕고 있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탈북민 전담 상담사입니다.

(강화옥) 제가 이때까지 국립의료원 북한이탈 주민 상담실 상담사로 있었는데요. 거기에 젊은 친구들이 남고 제가 새조위 사무실에 상담실장으로 들어왔다가 작년에 22년도에 남북 통화문화센터에서 ‘남북 생애 나눔 대화 프로그램’을 요청해서 그쪽에 제가 1년 동안 파견 근무를 나가 있었어요. 1월 1일부터 다시 또 여기, 종로 새조위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공연 끝난 다음에도 NGO(민간단체)는 할 일들이 많아요. 1년 치 사업을 빨리 보고하고 내년도 예산도 받아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아직까지도 바쁩니다. 1월달까지는 좀 정신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 정착한지 올해로 10년. 화옥 씨는 올해 또 혼자 새해를 맞았습니다. 정착 초기엔 신정을 지내던 북한 기억에 마음이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졌습니다. 음력설을 지내는 사람이 훨씬 많은 한국 문화에 어느새 익숙해진 것 같다는 그녀의 이야기, 좀 더 들어보시죠.

(강화옥) 한국에서는 구정이라고 하는데요. 북한에서는 음력 설이라고 말하거든요. 북한에서는 신정을 기본으로 세는데 제가 한국에 와서 지낸 지 10년이 되니까 여기 문화로 따라 갔나 봐요. 솔직히 좀 피곤하기도 해서 혼자 집에 있었어요. 다만 한국 풍습이 떡국을 먹는 게 있어서 우리 대표님이 떡국을 끓여 먹으라고 나눠줬어요. 그래서 떡국만 끓여 먹고 하루 종일 잔 것 같아요. 왜 그런가 하면 이럴 때 친구들이 오라고 하는 게 저에게는 엄청 부담이거든요. 가족들이 함께 있는 데 찾아가면 그 사람들이 생활에 부담이 될 것 같아서 저는 휴가나 명절 때 절대 다른 데 안 가요. 혼자서 어디 갈 줄도 모르고요. 그래서 집에만 있었습니다.

웃으면서 말을 하지만 화옥 씨는 신 가족의 탄생이라는 통일강연극이 끝난 후부터 잠을 잘 못 자고 있다고 하는데요. 사무친 그리움 때문이었습니다. 연극에 등장하는 자녀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소식조차 알지 못하는 딸아이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으니까요.

(강화옥) 통일에 대한 연극을 하다 보니까 이번에 딸 생각이 너무 나더라고요. 제가 딸 못 찾았잖아요. 소식도 모르고요. 딸 생각이 너무 나고 죽은 아들 생각이 나고 해서 울고 싶은데 어디 가서 울 데는 없고.. 울고 싶을 때는 울 수 있는 이런 환경이 되어야 눈물이 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집에서 통곡을 하고 잠을… 어제 저녁에도 두 시간밖에 못 자고 나왔어요. 그러니까 연극의 그 여운이 더 갈 것 같아요. 북한에 있는 엄마 생각도 나고요. 저뿐만 아니라 탈북민들은 저와 다 같은 심정이라고 봅니다.

화옥 씨는 어제도 2시간 정도만 겨우 잤지만 밖에 나와 일을 하다 보면 괜찮다고 말합니다.

(강화옥) 일어날 때 막 힘들어요. 하지만 일어나서 나오면 뛰어다니고 집에 가면 씻을 생각도 못하고 노그라지고요. 그게 늘 반복되는데 그래도 행복해요. 지금 이렇게 돌아보면 나를 위해서 산 날이 단 하루도 없었던 것 같아요. 북한에서는 자식들을 위해서 살고, 여기 와서는 전전긍긍하고, 북에 두고 온 엄마 생각. 찾지 못한 딸 생각에 정신이 없었으니까요. 엄마하고 우리 동생들한테 미안해서 돈 벌면 번 대로 그냥 북한에 보내주고, 대출 받아서 보내주고 그걸 또 메꾸느라 정신없이 일을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에 걸리면서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야만 그들도 도와주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정리가 되더라고요.

마음이 정리되고 나니 평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답니다. 담장에 핀 흑장미였는데요. 매일 출퇴근 하던 길이었기에 화옥 씨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강화옥) 장미를 이렇게 손으로 쥐어봤는데 인조가 아니고 자기 거더라고요. 그게 너무 충격이었어요. 내가 여태까지 이 아름다운 것도 보지 못하고 살았구나. 그러면서 너무 너무 괴로워서 울었어요. 옛날에는 나 혼자서 이 좋은 데 와서 나 혼자서 왜 이렇게 맛있는 거 먹어야 돼? 니 이런 거 먹을 거 자격이 있어? 하면서 죄책감에만 사로잡혀 있었죠. 그랬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고 내가 여기서 더 오래 더 행복하게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까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힘든 줄 모르겠어.

-Closing Music –

강화옥 씨는 얼마전부터 인터넷 소통공간에 이런 글을 남겼답니다. ‘여기까지 잘 왔다’

그래서 2023년엔 자신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겠다는 다짐도 했다는데요. 드럼을 배우고 싶다는 꿈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새해 가장 큰 소망이자 목표가 생겼습니다.

(강화옥) 혼자서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서 부산 상담사를 만나서 밥을 먹고 다시 돌아서서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거..

10년 만에 가져본 강화옥 씨의 소박한 소망! 혼자 기차여행 다녀오기. 그 소망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