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2022년이 시작된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지만 많은 사람들의 일상은 작년, 재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백신접종 등이 일상이 된 지 오래고 최소한의 만남과 제한된 외출이 일상이 됐습니다.
코로나비루스 대유행으로 벌써 3년째 전 세계가 움츠러들었는데요. 누군가는 코로나 사태가 우리 모두를 시간 부자로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기가 막힌 발상의 전환 같지만 우리는 평소에도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똑같은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진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코로나로 생겨난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각자의 결정입니다. 그 선택과 결정에 따라 한층 더 성장할 수도 있겠죠. 오늘 <여기는 서울>에서는 한국에 살고 있는 북한 청년들은 이 코로나 시기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들의 얘기를 전해드립니다.
(인터뷰)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경기대학교 외식조리학과에 재학 중인 최세은이라고 합니다. / 저는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부에 재학 중이고 26살 이성이라고 합니다.
이성 씨는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고요. 최세은 씨는 비운의 20학번입니다. 남한에서 학번은 각 학교에서 학생에게 부여하는 고유번호를 의미하지만 대학생의 경우엔 간단히 입학년도를 따서 부르죠. 코로나 비루스가 대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도 대학에 입학한 20학번은 학교도 거의 못 가보고, 학과 친구도 거의 못 사귀고 비대면 강의로만 1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런 수식어가 붙은 것인데요. 대학 생활이 아쉽기는 2,3학년을 코로나 시기에 보낸 이성 씨도 마찬가집니다.
(이성) 1년은 학교에서 학교 다니면서 오프라인 수업을 했었어요. 그런데 2학년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거의 다 온라인으로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100% 동영상 강의 위주로 했었는데 교수님들도 어떻게 하면 학생들한테 도움이 되는 강의를 할까 많이 고민하셨는지 2학기부터는 실시간 강의도 많이 됐어요. 그러면서 동영상이랑 실시간 강의를 이제 병행하면서 같이 하고 있어요.
비대면 강의는 친구들을 직접 만날 수 없다는 점 외엔 장점도 있습니다. 학교를 오가는 시간에 부족한 공부를 더 할 수 있고 강의가 동영상으로 올라와 있으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여러 번 돌려보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소조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이성 씨는 숭실대학교 내 탈북학생이 모인 소조에서 활동하는데요. 소조 활동은 낯선 남한에서 그리고 낯선 대학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큰 버팀목이자 휴식처였습니다.
(이성) 1학년 때는 저희 동아리 같은 경우도 매주 한 번씩 모여서 독서도 하고 토론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모임을 했는데요. 코로나비루스로 학교를 안 나오니까 멀리 사는 친구들이 동아리 활동 한 시간 참여하려고 학교를 올 수도 없고 자기 개인 스케줄이 있다 보니까 시간 맞추기도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동아리는 최소한으로 운영을 하고 있어요. 남북하나재단에서 지원을 해주셔서 영어 가르치는 교수님이랑 영어가 부족한 학생들끼리 매칭해서 영어 수업도 하고 미술 상담 치유 프로그램 같은 것도 해요. 학교생활 때문에 부담도 되고 공부 때문에도 스트레스 받고 이런 것들을 그림 그리고 선생님, 교수님과 얘기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그런 프로그램들을 하고 있어요.
이성 씨를 만난 장소는 학교에 있는 소조 방이었는데요. 벽에는 다양한 그림들이 붙어있었습니다. 성 씨는 학교 근처에 사는 덕분에 이 그림의 지분이 가장 많다고 웃습니다. 이렇게 미술이나 음악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며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심리 치유 프로그램은 치료의 개념보다는 마음을 보듬어 주는 데 중점을 둡니다. 최근 2~3년 사이 코로나비루스로 활동에 제약이 많아지면서 우울감을 느끼고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심리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졌는데요. 이성 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성) 집에만 있으면 무기력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받기도 했는데 나와서 그림이라도 그리고, 교수님과 얘기하면서 잘 풀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약간 '무기력한 심경을 가진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겠구나'라는 것을 이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됐어요. 대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이나 대외 활동을 하면서 그나마 다른 사람들이랑 만나고, 이런 교류가 있는데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더 많이 무기력한 감정을 느끼겠죠. 나중에 저도 사회복지 쪽으로 갔을 때 이런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싶은데요. 그럴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성 씨는 대학에서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는데요. 코로나 유행을 지나오면서 오히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을 돕는 ‘사회복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코로나 유행 속에 비대면이 당연시되면서 음식점마다 기계를 통해 주문받고… 타치폰으로 주문과 결제를 하고 생활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시대… 하지만 어르신들이나 전자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불편하기만 합니다. 이성 씨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낯설고 어려운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이런 생각들을 현장에 적용해볼 기회는 얻기 힘들어졌는데요. 아쉬움이 크다고 합니다.
(이성)대학교 생활이 가장 많이 바뀌었어요. 제가 2019년도에 1학년으로 들어와서 동아리 활동도 하고 학교에서 하는 프로그램도 하고 이러다 보니까 2020년도에 동아리 회장을 맡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서 참여하는 봉사활동이나 이런 것들도 참여하기 되게 어려워졌고 개인적으로 저는 이제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는 실습을 나가야 졸업을 할 수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실습생들도 많이 모집하지 않아서 경쟁률도 엄청 세고... 약간 그런 부분이 가장 제 삶에 많이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최세은 씨의 전공은 외식 조리학입니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비대면으로 수업하기가 상당히 힘든 전공인데요. 세은 씨는 지난 2년, 어떻게 보냈을까요?
(최세은) 한 학기는 많이 실망하고 그냥 좀 멍멍한 상태로 솔직히 보낸 것 같아요. 대학에 대한 어떤 환상 같은 게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한 학기 지나다 보니까 오히려 저같이 공부에 대해서 누구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 여기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공부했지만 저 같은 경우는 11년 만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비대면 덕분에 오히려 수업을 반복해 들을 수 있어 좋았어요. 오히려 2학기부터는 더 재미있고 자신감 있게 공부할 수 있었고요 대신 사람을 못 만나 활동을 못 하다 보니까 시야가 좁혀지는 느낌이 있긴 한데 그래도 저 같은 경우는 나름 시간을 많이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세은 씨는 1학년을 마치고 2학년 때 휴학을 결정했습니다. 학교 공부를 쉬는 대신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더 해보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최세은) 워낙 인원이 많다 보니까 반으로, ab 반으로 나눠서 실습을 진행해요. 한 학기 동안 학교 나가서 실습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학교 다니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저는 어차피 학원에 다녀야 되는 전공이어서 학원 다니면서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야되겠다 싶어서 휴학을 했습니다.
-Closing-
북한에서 초등학교만 졸업한 세은 씨는 배움에 대한 갈망이 컸습니다. 한국에 와서 중, 고등학교 과정을 단 1년 반 만에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는데 코로나로 닫힌 학교가 아쉽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원망과 아쉬움 대신 코로나로 생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했다는데요.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코로나 시대를 지나는 탈북 청년들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이경하